[지역 기자의 시선]
대청소를 했던 날이었다. 낡은 서랍 속에서 오래된 꽃모양 명찰을 발견했다. 코팅지 속 그 종이에는 '과학자'라는 장래희망이 쓰여 있었다. 아마도 유치원 때나 초등학교 저학년 때 만든 것 같다. 스스로를 '극' 문과 체질이라 자부하는 내가 과학자를 꿈꿨던 때도 있었다니. 어릴 때는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참 궁금했나 보다. 하늘은 왜 파랗고, 비는 왜 여름에 쏟아지는지. 그런 원초적인 호기심을 늘 품고 있는 어린아이였을 테다. 그 수많은 궁금증은 과학 교과서 앞에서 점차 차갑게 식었다. 어느새부터인가 과학은 학교에서 억지로 만나는 껄끄러운 녀석이 됐다.
그랬던 내가 요즘 퇴근 후 낙으로 삼는 것이 유튜브 과학 교양 콘텐츠다. 특히 성균관대 물리학과 김범준 교수가 출연하는 영상을 즐겨 본다. 평생 인연이 없을 줄 알았던 물리학을 이토록 친근하게 풀어주다니. 무엇보다 뭔가를 설명할 때 짓는 그 천진난만한 표정이 좋다. '어른도 저렇게 순수하게 학문을 좋아할 수 있구나' 하는 마음이랄까. 요즘은 이렇게 어려운 과학 지식을 대중의 언어로 풀어주는 노련한 연구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한다. 이들을 '과학 커뮤니케이터'라고 부른다. 이들 덕분에 나는 양자역학을 이해해보려는 도전을 할 수 있었다. '어렴풋이 이해했다'는 행복한 착각에 잠깐 빠져보기도 했다.
지역 뉴스도 과학과 비슷한 면이 있다. 과학 지식은 어렵고 낯설어서 멀리하게 된다고들 한다. 아마도 누군가 맥락을 잘 짚어주면 생각보다 훨씬 가깝게 느껴질 텐데,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한 탓일 것이다. 지역 뉴스도 그렇다. 뉴스는 시간과 분량의 제약 탓에 '새 정보' 중심으로 작성되고, 이전 맥락은 독자가 이미 안다고 가정한 채 생략될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언론에게 '헌 정보'인 것이 지역민에게는 '처음 듣는 이야기'가 되기 일쑤다. 더욱이 지역 뉴스는 서울 뉴스에 비해 접할 기회 자체가 현저히 적다. 뉴스를 봐야 맥락이 쌓이는데, 볼 기회가 없으니 맥락이 쌓일 리 없다. 정보는 지역민에게 닿지 못한 채 적체된다. 입문서도 읽지 않은 독자에게 전공서적을 권하는데, 책이 팔릴 리가 있겠나.
일례로 경남 창원시에는 수년째 텅 빈 건물로 방치된 창원SM타운이 있다. 800억 원을 들여 지은 건물이다. 지역 언론에서는 햇수로 10년째 이 사안을 다뤄왔다. 그런데 유튜브에서 이 사안의 맥락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콘텐츠를 만들었더니, 베스트 댓글은 놀랍게도 "창원에 이런 게 있었음?"이었다.
지역 언론에도 커뮤니케이터가 필요하다. 매일 쏟아내는 기사와 리포팅만으로는 대중과 소통하기 어렵다. 웹툰이 영화가 되고, 소설이 드라마가 되듯, 기사도 또 다른 대중 콘텐츠로 얼마든지 재탄생할 수 있다. 아마도 지역 언론 종사자들도 기존의 형식을 타파해야 한다는 데 공감할 테다. 그럼에도 관행적인 생산 방식을 깨기 어려운 이유는 공고한 출입처 시스템 때문일 거라 짐작한다. 출입처 기자들은 각자 맡은 기관으로 출근해 감시·견제하는 역할에 집중한다. 그 효율성은 무시할 수 없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지역 뉴스의 대중화라는 과제를 풀기 어렵다.
나는 출입처가 없는 기자다. 수년째 유튜브를 매개로 대중을 만나고 있다. 오직 하나의 철칙이 있다. 이른바 '중앙 이슈'를 다루지 말자는 것. 그 대신 경남 곳곳에서 세금이 낭비되는 현장을 찾아가 대중에게 알리는 데 집중한다. 그 내용은 이미 지역 언론이 수년, 혹은 십수 년간 다뤄온 것들이다. 그것을 내 식대로 소화해 대중에게 알기 쉽게 전달하려 한다.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라면 좀 망가지는 것도 감수한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는 주목받기 훨씬 전부터 과학을 쉬지 않고 설파했다고 한다. 그는 한 TV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물이 없을 때도 노를 젓고 있었다. 그러다 물이 들어오니까 앞으로 가더라."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노 젓기다. 지역 언론의 보도가 언젠가 제 가치를 찾으리라는 믿음은 확고하다. 내가 노를 꽉 잡고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