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되는 이야기] 당신이 하고 싶은 그 이야기, 해도 됩니다둘째 조카가 예닐곱 살이었을 때, 함께 유원지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아이와 화장실에서 손을 씻는데, 비슷한 또래의 다른 아이가 조카에게 물을 뿌리고 지나갔다. 조카는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어 서 있을 뿐, 화를 내지 않았다. 올라오는 감정을 꾹 누르는 모습이었다. 내가 안고 달래준 뒤 아이는 곧 기분이 풀렸지만, 나는 걱정이 되었다. 마음이 상해도 구석에서 얼굴만 일그러뜨릴 뿐 항변하지 않는 모습을 전에도 몇 번 보았기 때문이다. 부정적 감정을 삭히는 게 몸에 배어 부당한 일을 겪어도 참는 사람으로 자라는 건 아닐까. 나는 아이에게 눈을 맞추고 말했다. “누가 너를 힘들게 하면 그 사람한테 말해야 돼. 화가 날 땐 참지 말고 화를 내도 돼. 알았지?” 너는 그렇게 자라지 않기를
사실 이전에도 둘째 조카를 보며 걱정스러운 마음이 든 적이 있었다. 아이가 다섯 살 때 내 옆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흥얼거리며 크레파스를 고르다가 이렇게 말했다.“핑크색 골라야지. 나는 여자니까!” 분홍색을 좋아하는 것은 취향일 수도 있지만, ‘여자이기 때문에 분홍색을 골라야 한다’는 생각은 성 역할 고정관념으로 이어지기 쉬워 바로잡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고모 역할에 익숙지 않았고, 오빠네 부부의 자녀교육에 대해 참견하게 되는 것 같아서 그냥 지나가고 말았다. 그게 오래 아쉬웠다. 세 번째로 마음에 걸리는 일이 생겼을 때는 오빠에게 나의 염려를 털어놓고 상의했다. 놀이터에서 아이가 탄 그네를 밀어주다 힘에 부쳐 옆에 있던 오빠에게 대신 밀어달라고 하니, 아이가 이렇게 외쳤던 것이다.“고모는 여자라 힘이 없어!” 여자와 남자의 평균적 신체 능력에 격차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전에 느낀 찜찜함 때문에 아이의 머릿속에 ‘여자 = 힘이 없다’라는 공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조카가 나처럼 ‘고분고분한 소녀’의 모습을 학습하지 않기를 바랐다. 평소 주변 상황 파악이 빠르고 타인의 기분을 잘 알아차리는 아이였다. 나는 내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기보다 상대의 만족과 관계 안정을 우선시하며 자란 내 모습을 그 애에게 겹쳐 보고 있었다. 혹시 나처럼 성폭력을 겪으며 자신을 잘 방어하지 못하고 많은 상처를 안게 되는 건 아닌지 두려웠다. 나는 성폭력 교육에 대한 동화책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오빠에게 연락해, 아이가 이미 성폭력 예방 동화책을 가지고 있거나 관련 교육을 받았는지 확인했다. 오빠는 자신을 지키는 일에 대해서는 집에서도 가르쳤고 유치원에서도 배울 거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 말을 들으니 ‘내 세대랑 환경이 다르긴 하지.’라는 생각이 들어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후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성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인데, 왜 나는 남자인 첫째 조카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고 둘째 조카의 교육만 신경 쓴 것일까. 더욱이 아동성폭력 가해자의 99%가 남성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첫째 아이에 대한 교육 역시 중요하다. 혹시 내가 무의식에서 나의 부모 세대처럼 성폭력을 ‘여자가 조심해야 할 일’로 여긴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깊이 생각해 보니, 첫째 아이는 내게 성별 고정관념에 대해 염려될 만한 표현을 한 적이 없었다. 또 둘째 아이가 이 사회의 여성으로 살아가며 다 피하기 어려울 성차별과 성폭력 피해 경험에서, 적어도 자신의 태도를 원인 삼는 생각이나 ‘잘 대응하지 못했다’는 자책만은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니 내 마음은 둘째 조카만이 아니라, 어릴 적의 나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주변에서 비슷한 고통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음으로써 내가 어렵게 지나온 과정을 헛되지 않게 만들고 싶었다. 그것은 나 자신을 치유하는 일과 이어져 있었다. 달라진 원가족의 모습 둘째 아이는 밝고 해맑기 이를 데 없지만, 그 애도 주변과 사회로부터 크고 작은 상처를 입으며 살아갈 것이다. 그 때문에 빛나는 웃음에서 진정성이 점점 사라진다고 해도, 그것은 그 아이가 스스로 겪고 치유해 나가야 할 일임을 안다. 다만 나와 같은 어른이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여성인 나 스스로가 어떤 상황에서도 의견을 분명히 얘기하고 가족 안에서 마땅한 대우를 받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 사이, 원가족 안에서 내가 받아온 대우는 상당히 달라졌다. 나는 ‘저것 좀 가져와라.’라며 내게 습관적 명령을 하는 오빠에게, ‘부탁하는 말로 바꾸지 않으면 하지 않겠다.’라고 단호한 어조로 맞받았다. 어린 조카들 앞에서였다. 아이들에게 ‘장남은 더 나은 대우를 받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와 오빠에게 나를 능력 없는 존재로 깎아내리는 말 습관을 고치도록 거듭 요구했다. 지난한 과정이었지만 가족들은 점차 바뀌었다. 후에 오빠는 내 글을 읽고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엄마가 너를 그렇게 대하길래 나도 생각 없이 그런 거야.” 하지만 가장 다행인 것은, 가족 안에서 ‘엄마에 대한 존중’을 이끌어낸 것이다. 3년 전, 추석 연휴이자 엄마의 생일이던 날, 나는 본가에 엄마와 오빠, 조카들과 함께 있었다. 전부터 엄마 생일이라는 개념은 명절에 묻혀 흐지부지 사라지기 일쑤였다. 그때 나는 조카들과 놀아주느라 상차림을 돕지 못했지만, 적어도 상을 차려준 사람이자 그날의 주인공인 엄마가 자리에 앉아 숟가락을 뜨는 게 가족 식사의 시작이 되길 바랐다. 하지만 어서 앉아서 같이 먹자는 내 말에도 엄마는 여전히 주방을 오가며 “나 신경 쓰지 말고 먼저들 먹어.”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오빠와 두 조카, 나까지 식탁에 앉아 의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엄마는 “나는 서서 먹어도 돼.”하면서 정말로 서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에 충격을 받았지만, 오빠는 엄마 옆에 아무렇지 않게 앉아 있었다.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올랐고, 울면서 오빠에게 소리를 질렀다. 엄마의 돌봄노동은 식구들에게 당연했고, ‘잘 먹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라는 인사조차 없었다. 나 자신을 포함해 거기에 익숙해져 있는 가족들에게 화가 났다. 내가 어릴 적 이혼한 뒤 거의 혼자 생계와 돌봄을 책임져온 엄마가 왜 이런 대접을 받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자 엄마는 “엄마 괜찮으니까 울지 말어.”라고 하면서도 눈물을 닦았다. 내가 아이들 앞에서 소리를 지른 것은 분명 잘한 일이 아니었지만, 적어도 할머니가 식구들에게 밥을 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집안에서 존중받아야 할 사람들이 남자만은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지난 설에 본가를 방문했을 때는 크게 놀랐다. 오빠는 내게 앉아서 쉬라고 한 뒤 엄마와 함께 밥상을 차렸다. 식사를 시작할 때는 엄마가 먼저 수저를 들기를 기다렸고, 아이들에게 “이 음식들 누가 해주신 거지?”라고 물은 뒤 “할머니, 잘 먹겠습니다.”라고 인사하도록 가르쳤다. 집안 분위기는 내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달라져 있었다. 3년 전 나 말고는 아무도 기이함을 느끼지 못하던 밥상의 풍경이 떠올라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건 정말 자랑스러워해도 될 일이라고. 가족들의 변화를 본 뒤 우리 집으로 돌아와 누운 밤, 나는 문득 양손을 들어 내 머리와 어깨, 양팔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너 참 잘해왔어. 너 진짜 장해.’ 어려서부터 내가 ‘말 잘 듣는 소녀’의 역할을 하며 살아오는 데 큰 영향을 미친 원가족을 내 힘으로 바꾸어냈다는 것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지난 3년의 여러 장면이 머릿속에 천천히 흘렀다. 성폭력에 대한 대응을 고민하고 연습하던 밤들, 꾸준히 해온 심리상담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들,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과의 다양한 집단상담·사이코드라마·캠프, 온라인으로 나눈 대화, 성폭력과 페미니즘에 대한 책을 읽으며 ‘숨이 쉬어진다’고 느끼던 시간, 내 이야기를 써나가며 얻은 용기. 여기까지 걸어온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이제 겨우 성폭력 트라우마에서 벗어난 내가 세상에 만들어갈 수 있는 변화는 먼지보다 작을지도 모른다.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친구가 자신을 성희롱한 민원인을 계속 마주했을 때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같이 그 민원인을 욕해주고 그 기관의 성폭력 대응 매뉴얼에 대해 묻는 일밖에는 없었다. 그저 확실한 것은, 살면서 겪어온 많은 성폭력을 들여다보고, 대응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지나오며 내 안에서 무언가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이제 나는 ‘구조’를 본다. 나를 비롯한 내 주변 여성들이 어째서 엄격한 자기검열과 무력감을 갖게 되었는지, 내가 분노하고 원망했던 남성들의 언행이 어디에 기인한 것인지 안다. 과거 나의 남성 친구들이 페미니즘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했던 말들 속에 어떤 모순과 기만이 숨어 있었는지도 밝혀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직장에서도 내게 자연스레 반말을 섞는 남성에게 존댓말을 요구하고, 여러 번 잘못을 하고도 아무 일 없듯 넘기는 남성에게는 왜 사과하지 않는지 차분히 묻는다. 그리고, 글을 쓴다. 과거라면 나를 잠 못 들게 했을 일들에 대해 ‘또 쓸 만한 에피소드가 생겼군.’하고 반색하기도 한다. 지금의 나는 누군가 앗아갈 수 없는 힘이 나에게 있음을 믿는다. 이제는 안다. 조카의 말 한마디를 그렇게 신경 썼던 것은 단지 내 가족을 지키자는 마음이 아니라, 내가 지나온 부정의한 세계를 다음 세대에 그대로 넘기지 않으려는 마음이었다. ‘이 뒤는 없나요?’
이 연재를 시작하기 전, 몇 편인가 쓰다 마무리 짓지 않은 채로 두던 개인 매거진의 발행 글에 누군가 그렇게 댓글을 달았다. 3년 전의 글, 그것도 어설프기 그지없는 글을 읽어주고 필요로 하는 이가 있다는 게 신기하고 고마웠다. 나는 ‘아직은 없지만, 이어가 보겠다.’라고 답했었다. 그렇게 일단 던져놓은 말이 14화의 칼럼 연재가 되었다. 페미니스트 시인 뮤리엘 루카이저(Muriel Rukeyser)는 ‘여성이 자기 삶에 대해 진실을 털어놓는다면 세상은 터져버릴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이것만은 단언할 수 있다. 당신이 자신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면, 적어도 당신을 구속하던 당신 안의 무언가는 깨지고 터질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이 뒤는 없나요?’라고 물어주는 사람이 된다면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자유가 우리 자신, 나아가 다른 누군가의 아픔을 덜어줄 것이다. 세상이 심어놓은 우리 안의 두려움과 불안은 우리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자. 당신이 하고 싶은 그 이야기는 분명히, ‘해도 되는 이야기’이다. [끝] [필자 소개] 민바람. 자신의 경험으로 사회 구조를 비추는 글을 쓴다. 퀴어, 여성, 신경다양성, 빈곤, 지역 문제의 교차성 탐구에 관심이 많다. 『나는 ADHD 노동자입니다』(2025년 재출간), 『낱말의 장면들』(2023) 등을 출간 후, 퀴어 소설을 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