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예술의 ‘경계’에서 이야기를 열다』 제작한 이토 하루나 기고

노골적으로 배외주의를 드러내며 더욱 우경화되는 일본의 정치 현황 속에서,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의 올해 신년호 1면을 장식한 것은 정유경 작가의 〈오무라 도자기〉(OMURA-Yaki, 大村焼き) 작품 이미지다.
 
자이니치(在日)코리안 3세 예술가 정유경 씨의 이 작품은 뿌리 깊은 일본의 배외주의, 식민지주의 역사를 보여준다. 〈페민〉은 “우리 사회가 붕괴되기 전에”라는 의미심장한 말로 외국인혐오와 인종차별, 그리고 군사주의에 경종을 울리는 신년호 기획을 내놓았다.
 
〈오무라 도자기〉 작품은 2차 세계대전 말기에 아리타(有田) 등 도자기 산지에서 만들어진 ‘도제 수류탄’의 형태를 본 따, 아리타 도자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아리타 도자기는 임진왜란 시기 도요토미 히데요시 군이 조선을 침공했을 때 연행해온 조선인 도공들이 창시했다고 알려져 있다. 또, 작품 제목에서 ‘오무라’(大村)는 나가사키현 오무라시에 있는 ‘오무라입국자수용소’를 가리킨다. 1950년 ‘불법입국자’로 분류된 조선인을 조선반도로 강제송환하기 위한 목적 등으로 만들어진 장소이며, 현재는 출입국관리센터가 되었다.
 
작년 11월, 일본에서 정유경 작가의 〈오무라 도자기〉를 소재로 책 『전쟁과 예술의 ‘경계’에서 이야기를 열다-아리타·오무라·조선과 탈식민지화』가 출간되었다. 출판사인 하나타바책방 대표 이토 하루나(伊藤春奈) 씨에게 이 책의 의미에 관한 글을 기고받았다. [편집자 주]
 
 
정유경 작가가 ‘오무라 도자기’를 통해 던지는 질문
 
하나타바책방(花束書房)에서 출간한 『전쟁과 예술의 ‘경계’에서 이야기를 열다-아리타·오무라·조선과 탈식민지화』는 〈오무라 도자기〉라는 작품이 기점이 된 책이다. 이 작품을 제작한 자이니치코리안 3세 예술가 정유경(チョン·ユギョン) 씨, 그리고 한일관계사 등을 연구하는 야마구치 유카(山口祐香) 씨의 대담과 에세이 등을 모은 것이다.
 
2017년 정유경 작가는 창작의 거점을 한국으로 옮겼지만, 한국으로 이주하기 얼마 전 해외 출장에 불리한 ‘조선 국적’(일제강점기 일본으로 이주한 조선인들과 그 후예들이 대한민국이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적을 선택하지 않고, 일본에 귀화하지도 않은 경우 갖게 되는 행정상의 적. 관련 기사: ‘조선적(籍)’자의 변치 않은 현실 https://ildaro.com/4400)에서 ‘한국 국적’으로 전환하는 등 국가가 자의적으로 긋는 경계선의 폭력성을 체감했다.
 
이후 한국에서 예술 활동을 하던 그는 한국 병무청으로부터 “3년 이상 한국에 거주할 경우 징병 대상이 된다”는 서면 통보를 받고, 어쩔 수 없이 일본으로 돌아왔다. (한국의 법과 제도는 재일조선인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고려가 없다. 작가는 일본에서 조선학교에 다니며 북한에 친화적인 교육을 받고 자랐는데, 대한민국은 그의 체류 조건으로 북한과의 전쟁을 대비하는 군 복무 의무를 부여한 것이다. 관련 기사: “꽝! 균열의 양쪽을 응시하는 힘” https://ildaro.com/10353)
 

정유경 작가는 일련의 개인적인 경험까지 포함해 100년 이상 이어진 일본의 식민지주의, 재일조선인이 당하는 차별, 남북 분단으로 인한 갈등, 자신에게 덮쳐온 한국전쟁의 여파 등. 일본 사회에서는 이야기되지 않는 역사의 과제를 작은 〈오무라 도자기〉에 집약시켰다.
 
임진왜란 시기 조선에서 돌아온 무사가 호랑이를 풀어놓은 데에서 오무라 지역 일대가 ‘호코바루’(放虎原, 호랑이가 풀린 마을이라는 뜻)라 불렸던 것도, 당시 연행되어 온 조선인 도공들로 인해 ‘아리타 도자기’가 처음 만들어진 배경도, 그저 일본에서는 ‘흥미로운 역사거리’로만 소비된다. 이런 사회에서 정유경 작가는 회화 작품 등을 포함한 〈오무라 도자기〉 연작을 통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작가는 후쿠오카를 거점으로 창작을 하는데, 도자 작품인 〈오무라 도자기〉는 아리타에 체류하며 완성했다고 한다.
 
조선인의 ‘이동’ 역사와 자의적으로 그어진 ‘경계’ 사이
 
내가 처음 〈오무라 도자기〉를 알게 된 건, 우연히 소셜미디어를 통해서였다. 작품의 모습과 함께, 작품의 개념을 설명하는 다음과 같은 글을 보고 가슴이 뜨거워졌던 기억이 있다.
 
“400년 이상 전부터 이어져 온 조선인의 ‘이동’을 다시 생각하고, 자의적으로 그어지는 경계선에 질문을 던지는, 현 시점에는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도자기.”
 
그로부터 얼마 후에 정유경 작가와 야마구치 유카 씨의 대담을 듣게 되었다. 야마구치 유카 씨는 아리타 출신으로, 어머니 쪽이 조선 혈통이다. 가족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오무라출입국수용소, 아리타 도자기 제작의 역사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그러한 배경도 야마구치 씨가 연구자가 된 이유의 일부가 됐다.
 
이 두 사람이 만난 사실에 우선 놀랐고, 규슈 각지의 식문화와 그릇 등 일상적인 것들을 통해 조선반도와의 연관성을 생각하는 야마구치 씨의 글에도 매료되었다. 연구자와 생활인의 관점이 절묘하게 섞인 넓은 품, 개인사와 수백 년에 걸친 조선과 일본의 역사를 엮는 경지, 거기에 지역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일상의 유머까지 담겨 있었다.
 
정유경 씨과 야마구치 유카 씨의 대담에서 각자 자신과 연관된 역사에 대해 깊이 고민해온 흔적을 엿볼 수 있었고, 〈오무라 도자기〉 작품해설에서는 사람의 무의식에 작동해 무언가를 열어젖히는 듯한 힘을 느꼈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개인의 절실한 이야기, 그리고 지역의 발자취에서 역사적 과제를 생각하게 하는 힌트가 가득하다고도 느꼈다.
 
일본 사회에서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정유경 씨의 이야기를, 첫 대면인 야마구치 씨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마지막에는 캐치볼을 주고받는 듯한 장면이 전개되며 정 작가의 말이 훅 열리는 장면도 봤다.(책의 제목-전쟁과 예술의 ‘경계’에서 이야기를 열다-는 그때의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대화’가 억압이 되기도 하는 지금, 둘의 솔직한 대화에서 순순히 희망을 느꼈다.

 
페미니즘을 통해 배운 것 - 나와 사회와 역사의 ‘연결’을 깨닫고,
나의 ‘위치’를 확인하며 새로운 ‘언어’를 만드는 일
 
책 부제(아리타·오무라·조선과 탈식민지화)의 지명에도 많은 의미를 담았다. 그 땅에서 살고자 모색하거나, 혹은 그것을 실현하지 못했던 조선인과 그 역사를 망각하지 않는 것, 오무라수용소와 출입국관리로 이어져 온 조선인/외국인 학대와 폭력, 그와 연속선상의 경찰 권력, 돌연 ‘경계선’을 긋는 국가, 눈곱만큼도 역사에서 배우려 하지 않는 배외주의에 휩쓸리는 ‘국민’, 그들의 근원에 있는 ‘식민지주의’를 묻고 싶었다.
 
문제가 너무나 뿌리 깊어 설명이 길어지고야 마는 책이지만, 모든 것을 새겨넣고 싶어 제목에 전부 담아버렸다. 복잡한 역사는 복잡한 대로 알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고, 생각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나의 바람이 패키지에 담긴 데는 멋진 디자인의 힘이 크다. 미야코시 사토코 씨가 북디자인을 맡아주었다. 미야코시 씨에 따르면, 아리타 도자기가 도자기 흙에서 만들어지니, 꺼칠한 질감의 표지에서 광택이 있는 커버를 향해 도자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표현했다. 가공되지 않은 투박한 표지의 질감에 이 책의 주제를 노이즈처럼 울려 퍼지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니 기쁠 따름이다. 정형에서 벗어난 미묘한 판형과 한 손에 잡히는 사이즈는 ‘질문을 던지는’ 오무라 도자기를 떠올리게 한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오무라 도자기〉 작품의 배경을 생각해 보니, 이것이 내가 페미니즘에서 얻은 여정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사회, 나아가 시대와 역사의 연결을 깨닫고, 내가 서 있는 위치를 확인하면서 언어를 만들어내는 경험. 내가 페미니즘을 통해 배운 것이다. 한편으로는 일본의 ‘전전/전후’라는 고정화된 서사, 비대해져버린 전후민주주의 ‘신화’, 그것을 일부 페미니스트를 포함한 자유주의자들이 이끌어왔다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은 보다 깊어졌다.
 
사실 한마디로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전쟁과 예술의 ‘경계’에서 이야기를 열다-아리타·오무라·조선과 탈식민지화』는 읽으면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당신이 몰랐던 역사와 만나게 된다면, 관련된 책을 더 찾아 읽어보거나 그 의문을 누군가에게 전하며 사유를 열어나가길 바란다. 그러다보면 분명, 왜 일본이 지금 같은 모습이 되어버렸는지, 그 이유를 일부 들여다볼 수 있을 테니. [번역-고주영]
 
-〈일다〉와 제휴 관계인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 기사를 번역, 편집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