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우리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있을까? 』 저자 캔디2022년 6월, “예상치 못했던 파트너 돌봄이 나에게 왔다”(https://ildaro.com/9366)라는 제목으로 ‘동성 파트너를 간병하며 경험하고 배운 것들’에 관한 글을 기고해 SNS상에서 큰 호응을 얻었던 캔디 씨가 관련 책을 집필했다. 올해 2월 출간된 『우리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있을까? - 사랑과 돌봄에 관한 퀴어한 참조』는 열두 해를 함께 한 동성 파트너의 투병과 죽음, 장례 그리고 이후의 삶에 대한 캔디 작가의 솔직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동성 파트너 관계, 투병과 간병, 파트너의 죽음, 장례, 이후 새롭게 시작하는 사랑... 그 어떤 것도 쉬운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꺼냄으로써 누군가에게는 길잡이가, 누군가에겐 따끔한 회초리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최근 그는 오랫동안 몸 담았던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를 나와서 ‘큐라이프 협동조합’의 활동가가 됐다. 누구나 자신답게, 존중 받으며 나이 들어갈 수 있도록 돌봄과 배움, 사람 사이의 연결을 만들고 키워가는 협동조합을 목표로 하는 큐라이프는 지난 3월 말 창립총회을 열어 그 시작을 알린 상황이다. 최근 몇 년간의 강렬한 경험이 작가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 걸까? 캔디 작가가 살고 있는 동네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동성 파트너 간병과 죽음, 장례를 겪은 경험을 책으로 쓰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이후 출간까지 시간이 좀 걸렸는데요, 소감이 어떤가요? 사람들이 책을 읽을까 봐, 또 반대로 안 읽을까 봐 무섭다는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들어요. 신곡이 나온 연예인처럼 매일매일 검색하는 게 스스로 좀 부끄럽기도 하고요.(웃음) -집필 과정이 길어지면서, 책에 담으려고 했던 내용이 좀 달라졌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돌봄과 장례의 과정 자체를 사람들과 공유하려고 했고 그 마음은 변함없었어요. 다만, 책 쓰는 과정이 길어지면서 제가 새로운 연애를 하고 결혼식까지 하게 되었어요. 파트너를 보내고 1년 만에 새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산다는 내용을 책에 쓰면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고민하게 되었죠. 또, 법이나 제도가 없어서 불행해진 성소수자 서사를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과, 사실 그런 불행 서사를 내세우는 게 나라는 사람과 맞지 않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정말 복잡한 마음이 왔다 갔다 했던 거 같아요. -
책엔 동성 파트너의 간병, 돌봄을 하며 여러 부분에서 장벽에 부딪힌 경험이 담겨있는데요. ‘동성 파트너’이기 때문에 어려웠던 점은 또 어떤 게 있었나요? 나와 력사의 커밍아웃 정도가 달랐던 점이요. 력사는 자신의 성정체성이 드러나는 걸 극도로 꺼려하는 사람이어서 직장이나 학교 친구들과의 교류와 나와의 생활, ‘이쪽’ 활동을 철저히 분리했어요. 내가 무지개 굿즈 같은 걸 하고 다니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고요. 력사가 왜 그렇게 해야 했는지 너무 잘 알았지만, 그게 저에겐 힘들었다는 것도 사실이었어요. 책을 쓸 때도 력사가 어떤 사람인지 쓸 수 없는 부분도 많았죠. 그가 무엇을 좋아했고 어떤 일을 했으며 어떤 공부를 했는지도요. 력사 장례식 때도 그랬어요. 파트너의 직장 동료, 학교 친구들을 내가 모른다는 점이... 참 그랬죠. 력사가 왜 그렇게 자신을 숨길 수 밖에 없었는지 알죠. 그가 불안해 하고 걱정했던 것들을 이해하지만... 서운하진 않았어요. 아니, 서운하기도 했죠. 정확하게 말하자면 ‘서운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라는 말이 맞는 거 같아요. 친구 중에 이성애 커플인데 결혼은 하지 않은 이가 있어요. 10년 넘게 같이 살고 있고 양쪽 가족도 다 알긴 해요. 근데 한 분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거에요. 그때 어땠냐고 물어봤거든요. 파트너로서의 일은 다 하는데 인정은 못 받는 위치라고 하더라고요. 사위 같은 거지만 결국 사위는 아닌 거죠. 이성애 커플이어도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어서 좀 인상적이었어요. -력사님과의 관계에서 돌봄과 장례를 겪으며, ‘공동체’ 커뮤니티의 중요성도 언급하셨어요. 친구들이 캔디 님에게 중요한 버팀목이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요. 많은 이들이 그런 커뮤니티를 원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기도 하죠. 나이 들수록 커뮤니티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앨라이(Ally, 퀴어의 연대자) 친구도, 비혼인 친구도 좋죠. 하지만 때때로 이들은 내가 고민하는 것에 이해는 하지만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어떤 공통점이 있는, 삶의 결이 맞는 사람들을 찾게 되는 이유죠. 성소수자 커뮤니티 사이트에 ‘그동안 잘 살았고, 학벌도 좋고, 직업고 좋은데, 40대가 되니까 만날 사람이 없다. 친구를 찾고 싶은데 너무 어렵다’는 이야기가 종종 올라와요. 내가 파트너랑 헤어지거나 파트너가 죽어서 슬픈데, ‘너 갑자기 왜 울어? 왜 슬퍼해?’ 하는 사람만 주변에 있으면 너무 괴롭잖아요. 내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해줄 사람이 필요하죠. 그런 친구들, 커뮤니티를 갖기 위해선 사실 노력이 필요한 거 같아요. 요즘 사람들이 생각보다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 더 그런 거 같은데요. 온라인으로 적당히 교류하고 실제로 만나지 않거나, 깊은 관계를 맺고 싶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나마 다같이 만나도 감자튀김 먹으면서 피상적인 말만 나누다 헤어지죠. 그건 노력하고 싶지 않은 거고, 갈등을 경험하고 싶지 않은 거고, 귀찮아지고 싶지 않은 거에요. 하지만, 그걸 감수해야 얻을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정말 필요한 순간에 그 커뮤니티가 나에게 큰 힘이 될 거니까요. -
이제 ‘큐라이프 협동조합’의 활동가가 되셨는데요. 캔디 님의 일련의 경험이 협동조합을 만드는데 영향을 줬을까요? 아무래도 그렇죠. 협동조합에 들어간다는 건 믿을만한 사람들이 있는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거고, 나 혼자 있을 때 10을 노력해야 한다면 협동조합 안에선 8정도만 노력해도 무언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잖아요. ‘함께’ 하니까요. 또, 내가 무서울 땐 다른 조합원들 등 뒤에 숨어있을 수도 있고, 그들에게서 힘을 받을 수도 있고 내가 힘을 줄 수도 있고요. 돈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외로움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이건 사실 퀴어가 아니어도 마찬가지고요. 돌봄을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고 할 때 내가 조금이라도 아는 관계망, 그러니까 협동조합 안에서 무언가 할 수 있다면 조금 더 쉬워질 거라고 생각해요. -책에서 “난 운이 좋았다”는 말이 몇번 언급되는데 공감이 됐어요. 저도 그런 표현을 쓰거든요. 운이 좋았으니까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지금 이렇게 살아있고, 이 자리에 있는 거니까요. 력사 장례식 때도 도와주는 친구들이 있었고, 많은 것에서 도움을 얻었죠. 하지만 모두가 그런 행운을 누리진 못하잖아요. 그렇게 좋은 친구가 없으면, 당연한 권리를 획득하거나 소소한 위로조차 누리기 힘들다는 사실, 즉 “운이 좋아야만” 한다는 현실이 좀 비참하고 속상했던 게 솔직한 마음이에요. 여전히 주변엔 “파트너가 죽었는데 그 과정에서 나를 사람으로 취급해 주지도 않더라, 20~30년을 같이 살았고 (파트너의) 조카들도 ‘이모’라고 불렀는데 막상 파트너가 죽으니까 내용증명부터 보내더라...” 등의 이야기가 들리잖아요. 그럴 때마다 그 사람들이 그 순간 혼자였다는 사실에 너무 화가 나요. 하지만, 그들에게 모두 투사가 되라고 할 순 없잖아요. 어쩌면 그냥 다 포기하고 잊는 게 편안한 삶을 보내는 방법일 수도 있고요.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그래서 큐라이프를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큐라이프 홍보하면서 쓰는 문구가 “혼자 하면 불안이지만, 함께 하면 대안이 된다”거든요. 사람들이 누군가의 삶을 보고 ‘아, 저렇게 하면 되는구나. 저렇게 친구를 만들면 되는구나. 어떤 서류를 준비하면 되는구나. 어떤 기술이 필요하구나...’ 등의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퀴어 친화적인 공간도 더 많이 만들고 싶고요. 책에도 썼지만, 지금의 파트너(책에선 ‘오쓰’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와 혼인신고를 하러 갔을 때 구청 직원한테서 굉장히 좋은 인상을 받았어요. 그 직원도 분명 동성 커플의 혼인신고를 받아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걸 오히려 창피해하고 미안해 하는 모습을 봤을 때 뭔가 위안이 됐어요. 그런 태도가 너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당장 혼인평등권이 마련되지 않더라도, 담당 공무원들이 많은 동성파트너가 존재하고 그들이 파트너로서 혼인신고를 하고 싶어한다는 걸 ‘교육’받는다면, 인식이 많이 달라질 거라 생각해요. 그런 부분도 큐라이프를 통해 해나가고 싶어요. -작년에 ‘큐라이프’ 프로젝트로 일본, 대만, 필리핀을 방문해 각 나라 퀴어들의 돌봄과 나이듦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잖아요.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대만 타이베이의 노인센터에서 “성소수자인 노인이 방문할 것을 대비해” 준비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아직 센터에 성소수자 노인은 없지만, 언젠가 올지 모르는 일을 준비한다는 거요. 그리고 성소수자 단체와 협업하면서 센터 내 노인들과 관계망을 만들었다는 점도 흥미로운 부분이있어요. 필리핀의 퀘존(Quezon) 시에선 2023년부터 필리핀 지방정부 최초로 “Right to Care Card”라는 제도를 도입했대요. 일종의 파트너십 같은 거죠. 이 카드를 가진 커플은 파트너의 의료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보호자로서 결정을 할 수 있대요. 사실 필리핀이 소위 ‘잘 사는’ 나라는 아니고 복지 시스템이 잘 마련된 곳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퀴어들이 함께 살아낼 방법을 많이 고민하더라고요. 커뮤니티 내에서 노후 인식 조사를 할 때도, 문맹인 사람들은 일단 글부터 가르치고, 또 핸드폰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성소수자 관련 용어도 알려주면서 조사를 진행했다는 이야기는 놀라웠어요. 단지 조사만 하고 끝이 아니라, 조사하는 과정 속에서 계속 연결지점을 만들었다는 게 대단하다 싶더라고요. 큐라이프 활동에서도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일부터 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도 하게 됐어요. 일본과 대만에서 모두 ‘부모 돌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비혼 1인가구가 부모 돌봄을 하는 것과 성소수자가 부모 돌봄을 하는 건 분명 차이가 있어요. 어느 날 엄마를 모시고 와야 하는데, 엄마는 내가 혼자 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파트너와 20년째 같이 살고 있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파트너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성소수자로서 돌봄을 한다는 건 분명 다른 점이 있다는 걸 절감하는 순간이 올 거라 생각해요.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함께 툭 터놓고 이야기할 공간이 필요할 거에요. -누군가는 캔디 님이 겪은 것과 유사한 일들을 겪고, ‘그냥 다 잊자’ 이러고 새 출발을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그 경험을 토대로 배운 걸 공유하고 함께 고민하는 활동을 하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기본적으로 사람에게 필요한 걸 돕고 연결하고 싶은 오지랖?!(웃음)인 거 같아요. 호기심과 애정이기도 하고요. 이 책을 쓴 계기를 굳이 나누자면 1/3은 오지랖이고, 1/3은 활동가로서의 직업병, 1/3은 전 파트너에 대한 애증과 내 이야기를 쏟아내며 자랑도 하고 위로도 받고 싶은, ‘관종’같은 개인적 욕망인 것 같아요. 그리고… 많이 봤기 때문이에요. 파트너의 장례식도, 장지도 못 가본 사람이나, 많은 퀴어가 죽어가는 걸 봤으니까요. 동시에 퀴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도 봤죠. 그 모든 장면이 나에겐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지난 일들을 겪으며 캔디라는 사람이 변한 부분이 있다면요? 부당한 것들을 더 이상 참지 않게 되었고, 현실적인 법제도가 내 근본적인 욕망과 직결된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어요. 력사의 장례를 치르고 유품을 정리하면서 ‘운이 좋아서’ 할 수 있는 게 있었지만, 사실 법적 권리가 없으면 고인의 물건 하나 지킬 수 없다는 걸 경험했으니까요. 단지 예쁜 드레스 입고 축하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가족들이 나를 받아들이는 것, 아니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성소수자임을) 인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결혼이라는 걸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도 작성해 놨지만 사실 지금 상황에선 와이프인 ‘오쓰’는 그걸 확인하지도 못해요. 직계가족이 아니면 안 되거든요. 그래서 결혼식을 하고, 혼인신고를 하는 등의 행동을 한 거에요. 가족들이 오쓰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귀를 기울여야만 하는 사람이어야 하니까요. 그걸 인지시키기 위해서 한 거죠. 그런 게 변화된 점이에요. -앞으로 또 하고 싶은 활동은 무엇인가요? 오쓰와 함께 ‘퀴어 동네 이장’이라는 이름의 팟캐스트를 한 3번 정도 했는데,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이번엔 뉴스레터를 발행해 보려고 하고요. 거창한 영향력이 있는 사람보단 주변 사람들에게 필요한 인연이나 정보를 연결해 주는 ‘홍반장’ 같은 역할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퀴어가 질병이나 생활고 등 남들도 겪는 불안 외에,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겪는 추가적인 불안 없이 남들만큼 ‘슴슴하게’ 살 수 있도록, 그런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고 싶어요. -이 책을 어떤 분들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나요? 솔직히 모든 사람이 다 읽었으면 좋겠어요.(웃음) 성소수자 당사자에겐 공감과 레퍼런스가 되길 바라고, 무엇보다 성소수자 이슈에 관심 없는 비-당사자들이 책을 읽고 충격을 받았으면 해요.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그들과 동등한 권리를 갖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위험하고 불안해지는지 그 현실을 보여주고 싶어요. 우리의 절박함을 꼭 알아줬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