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여성들의 예비할머니 프로젝트① 나이 듦을 고민하다

나이 듦과 주거 불안을 고민하는 2030 여성들이 모여 생각했다. ‘늙어가고 아파지고 정착할 장소와 관계가 필요해질 우리, 어쩌면 “생활공동체”가 필요한 건 아닐까?’ 우리는 생활공동체를 고민하며 ‘가족’, ‘나이 듦’, ‘주거’에 관한 공부를 함께 했다. 또, 이미 생활공동체가 삶의 일부가 된 사람들을 찾아가서 궁금한 걸 묻고 대화를 나누어 보자고 기획했다. 이른바 〈예비할머니 프로젝트〉다. 어떤 이들과, 어떤 동네에서, 어떤 연대와 돌봄의 관계를 맺으며 나이들 것인가? 작년부터 느리지만 꾸준하게, 20명 남짓한 청년 여성들이 1년간 만들어 온 ‘예비할머니 질문’들을 살며시 소개한다. [기획의 말]
 
나는 왜 ‘할머니’ 되는 것을 걱정하는가?
 
“그래도 결국엔 피 나눈 가족이 최고야.” “아플 땐 가족밖에 없어.”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는 말이겠지만, 때로 누군가를 작아지게 만드는 이런 말들 사이에서 나와 같은 사람들은 길을 잃는다. ‘젊은 여자’가 나이 들어 ‘할머니’가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토록 당연한 순리에 두려움이 붙는다. 예비할머니들이 수십 년 뒤에나 펼쳐질 ‘노후’를 생각했을 때 벌써부터 막막한 이유도 이 언저리에 있다. ‘나이 듦’이 내포하는 ‘취약성’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취약해진 개인이 기댈 곳은 가족, 특히 혼인과 혈연으로 이어진 ‘정상가족’으로 국한되어 있다. 다시 말해, ‘정상가족’ 바깥에서 무방비하게 취약해진 개인은 안전하고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낙관하기 어려운 질서가 뿌리깊다. 가족구성권연구소에서 펴낸 책 『가족 신분 사회』(2025)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족이 짊어져야 하는 복지의 책임과 역할이 과도한 사회에서, 가족을 벗어난 개인의 기본적인 생존과 돌봄은 불안정하고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
 
‘가족’이 대체 뭐길래? 예비할머니 프로젝트에 모인 17명의 2030여성들은 ‘가족이 필요한 순간’을 곱씹어 보기로 했다. 우리는 집안일이 벅찰 때부터 급하게 돈 필요할 때, 집 구하기나 장례 등 큰일이 닥쳤을 때, 갑자기 아프거나 몸을 가누기 힘들 때, 백수가 되었을 때 ‘가족’에게 기댄다(또는 기댈 수 있길 기대한다). 나만의 공간도 필요하지만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을 때, 오늘 있었던 일 얘기하고 싶을 때도 ‘가족’이 있어서 좋다고 느낀다(또는 그런 가족이 있다면 좋겠다고 느낀다).
 
또, 같이 살면서 정서적, 물리적 안정감을 느꼈을 때 이런 ‘가족’이 계속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고, 반대로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이 아닌 채로 원가족 안에 있을 때는 ‘다른 가족’이 필요하다는 마음을 품는다. 가족이 필요한 순간이란 즉, 빌붙을 수 있는 장소와 관계가 필요할 때를 의미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상가족’에 갇히지 않아도 괜찮은, ‘돌봄’을 주고받으며 ‘생활’이 서로 연결된 ‘공동체’ 자체다. 『가족 신분 사회』에서는 다음과 같이 생활공동체를 소개한다. “다양한 가족 형태는 민법상 가족의 범주를 넘어 (…) ‘이성애 핵가족의 전형적인 틀’을 벗어나는 ‘생활공동체’를 포괄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생활’과 연결되는 화두가 바로 가족 간의 ‘돌봄’이다.” 책은 이어서 묻고 제안한다. “서로를 돌보고, 위기의 순간에 뒤를 맡기며, 행복한 시간을 함께 나누고픈 상호의존의 관계를 누구와 맺을 것인가? 나는 그러한 관계를 누구와 맺고 있는가? 시설과 가족을 넘어서 이 질문을 상상할 때, 우리 사회에 더 폭넓은 시민적 유대 관계가 자리할 것이다.”
 
‘누구’와 함께, 어떤 ‘동네’에서 늙어가고 싶은가?
 

‘누구와, 어떻게’ 나이 들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자연스럽게 ‘어디서’ 나이 들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탁자 두 개만한 밭뙈기를 원하는 예비할머니가 있다. 음식점을 운영하긴 하는데 하루 4시간만 열고픈 예비할머니가 있다. 일 없이 은퇴하겠다는 예비할머니가 있고, 또래 할머니와 어울릴만한 노인일자리에 취직하겠다는 예비할머니도 있다. 자가를 갖고 싶은 예비할머니도 있고, 50년 또는 영구 공공임대를 노리는 예비할머니도 있다. 많은 돈을 상상하는 예비할머니도 있고, 가난을 생각하는 예비할머니도 있다.
 
이토록 다양한 삶을 상상하는 우리가 각자 또는 함께 어울려 살고 싶은 공동체란, 구체적인 물리적 장소와 관계로 구현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느 땅 위에서 어떻게 실천되고 있을지 알아보는 것 또한 우리에게 좋은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었다.
 
페미니즘 ‘책방’, 페미니즘 ‘의료사회적협동조합’, 페미니즘 ‘커뮤니티 공간/카페’ 등이 지역사회 안에 자리잡은 동네들을 함께 탐방하면서 지난 여름과 가을을 보냈다. 구체적인 장소를 경험해보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각자의 미래 계획 안에 공동체적 삶의 요소들을 자연스럽게 포함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이것이 막연한 상상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에서 지금 구현되고 있는 일상이자 얼마든지 낙관할 수 있는 구체적 삶의 장면으로 다가온 것만으로도 마음이 벅차 올랐다.
 
할머니가 된 내가 어떤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면 좋을지를 ‘함께’ 그려나가는 것은, 나와 우리의 불안을 ‘함께’ 해소시켜주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어쩌면 우리에겐 아주 대단한 전략이 필요한 게 아니라, 서로 무언가를 함께 꾸준히 하며 서로의 일상에 엮여 드는 관계와 시간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구체적으로 우리의 미래를 상상하고 계획해볼수록, ‘예비할머니’들의 상상은 더 가까운 현실이 될 것임을 느꼈다. ‘정상가족’ 너머의 삶을 함께 시작할 용기를 모으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예비할머니들의 더 구체적인 작전들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나눴다.
 
은평구 ‘살림’ 의료협동조합, 전주 비혼여성공동체 ‘비비’의 사례
 
어떤 어른이 내게 말했다. “나이 들면 손주 보는 재미로 사는 거야.”
그러나 나는 이제 안다. 손주 보는 재미‘만’ 추구하는 삶은 우리에게 없는 선택지다. 게다가 우리에겐 이미 대단한 (예비)할머니들이 있다. 2030 여성들이 가진 노후에 대한 두려움을 뒤집어 내는 관계와 실천들이 이미 지역곳곳에 있다. 〈예비할머니 프로젝트〉를 통해 대표적으로 찾아간 곳은 ‘살림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과 ‘비혼여성공동체 비비’이다.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살림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살림’)은 “건강하게 살고 싶다.” “믿을 수 있는 의료기관이 있으면 좋겠다.” “아플 때 좋은 돌봄을 받고 싶다.” “병들고 장애가 있더라도 존엄을 잃지 않고 살고 싶다.” “끝까지 나답게 살다가 아는 얼굴들 사이에서 죽고 싶다.”와 같은 공통의 필요와 바람을 가지고 지역주민들이 만든 협동조합이다. 다른 말로 설명하면, 살림은 “여성주의 건강관을 기반으로 지역주민들이 협동하여 의료·복지·돌봄 기관을 만들고 운영하는 곳”이다.
 
사실 많은 이들이 ‘아픈 몸’을 응당 당사자 개인과 가족이 책임져야 한다고 여긴다. 그게 아니라고 말하는 세상을 경험해볼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 살림 견학은 예비할머니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경험이었다. 취약해진 몸을 시설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일상이 될 수 있는 곳이 여기 있다. 살림을 알아간 시간은 예비할머니들이 “안전하게 나이 들고 서로 돌보는 지역 공동체”의 가능성을 긍정할 수 있는 경험이었고, 구체적인 실체를 체감하는 시간이 됐다.

 
한편, 30대에 만나 20년 넘게 이어져 온 여성들의 생활공동체가 있다면? 우리는 전북 전주에 위치한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도 방문했다. 이제 50대가 된 비비 멤버들은 ‘여성주거공동체 비비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며 ‘주거’의 중요성과 집단적인 주거실천 사례를 함께 알아볼 수 있었다. 서로가 주체적으로 돌봄을 주고받을 수 있는 비비의 주거공동체 실천이 멋지게 구현되길 바라면서, 우리의 바람 역시 이와 같다는 것을 확인했다.
 
30대 때부터 50대 현재까지 이어져 온 ‘비혼여성공동체 비비’의 공동체 경험은 이제 겨우 ‘예비할머니 모임’ 활동을 한 지 1년차인 우리들이 좀더 가볍고 자유롭게 마음가짐을 다질 수 있는 소중한 계기이기도 했다. 내가 상상하는 미래가 누군가의 현재일 때, 우리는 좀더 자신 있게 기대하고 낙관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다양한 생활공동체를 형성하고 서로가 관계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미래를 상상하며 즐거운 마음을 나눌 수 있어 든든했다.
 
“내 바람은 너희랑 같은 동네 사는 할머니가 되는 거야”
 
우리는 예비할머니 모임을 가지며 주고받은 질문과 대화들을 엮어서, 〈예비할머니 작전노트〉를 만들었다. 작전노트를 통해 1)나이 듦과 함께 누리고 싶은 존엄한 삶의 조건들을 살피고, 2)누구와 생활공동체를 함께 할 것인지, 3)이들을 어디서 어떻게 꼬실 것인지, 4)이들과 어디서 모여 살 것인지, 5)어떤 가족을 만들고 싶은지 상상해볼 수 있길 바랐다.
 
노후를 생각하며 마냥 외롭지만은 않을 수 있음에 안도하는 마음, 여전히 막연하지만 혼자만의 고민은 아니라는 확인을 주고받는 관계, ‘정상가족’ 질서 바깥에서도 주거 불안과 나이 듦에 따르는 두려움을 걷어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의 근거를 확인하는 과정. 이것은 더 많은 ‘예비할머니’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삶의 장면들이기도 하다.
 
서로가 서로의 가능성이 되어주는 관계 네트워크는 더 확장될 필요가 있다. 이미 이런 마음을 확인한 20명 남짓의 예비할머니들이 2026년을 함께 맞이했다. 즐겁고 안전하게, 나이 드는 서로를 환대하는 생활공동체를 꿈꾸며 말이다. 올해도 예비할머니들이 모여서 가족, 돌봄, 주거와 동네, 공동체 문화 등 ‘노후’를 둘러싼 질문과 고민을 해소할 좋은 답들은 찾아가는 과정은 계속된다. 그 길을 함께 가보자고, 온갖 공동체를 함께 고민해보자고 소문 내고 싶다. 바로 오늘 지금 여기에서부터!
 
[필자 소개] 호랑집사. 가난한 페미니스트로 나이 든다는 건 뭘까? 가임기는 끝날 테고 몸은 취약해질 테고 주거는 쭉 불안할 텐데. 두려움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와 노후를 낙관할 수 있는 증거들을 얻기 위해 예비할머니 모임을 구상하고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