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센터친구의 눈으로 본 ‘계절노동’

한국에 사는 A가 있다. 오랫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그는 어느 날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서 광고 하나를 보게 된다. “서울시가 연결해주는 해외 일자리 프로그램.” 시청에서 설명회를 연다는 말에 A는 그 자리에 가본다. 설명은 솔깃하다. 한국보다 최저임금이 두 배 높은 나라에서 5개월에서 8개월 정도 일하고 돌아올 수 있고, 숙식도 제공된다. 언어를 몰라도 되는 단순 노동이며, 이미 다녀온 한국인도 많다고 한다. A에게는 부양해야 할 가족도 있다. 그는 결국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현지에 도착하자 상황은 달라진다. 함께 온 관계자는 여권을 맡기라고 요구한다. 행정비용을 이유로 돈을 빌리게 하고, 그 대출금은 매달 임금의 3분의 1씩 공제된다. 일을 중간에 그만두면 이탈보증금과 벌금을 내야 하고, 가족은 이탈 방지 보증인이 된다. 계약을 어기면 민형사 소송까지 들어올 수 있다는 말이 따라붙는다. 이미 한국을 떠났고, 돌아갈 돈도, 여권도 없다. 그저 정해진 기간을 버티고 돌아가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처럼 보인다.
 
이 상황을 두고, 처음에 “자발적으로 갔다”는 이유만으로 자유로운 노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한국에 온 외국인 계절노동자들이 실제로 마주한 현실이다.
 
계절노동자 제도 설계와 현실의 간극, 왜?
 
외국인 계절근로비자(E-8)는 단기 인력이 필요한 농어촌에 최대 8개월간 외국인을 고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자이다. 고용노동부가 아닌 법무부가 관할하며, 일손이 필요한 한국의 농어촌 기초지방자체단체가 필리핀·베트남 등 인력을 보낼 수 있는 외국 지자체와 업무협약(MOU)를 맺어 운영된다. 외국 지자체에 거주하는 주민을 계절노동자로 초청하고, 고용주에게 배정하여 일하게 하는 방식이다.
 
제도상 핵심 원칙은 명확하다. 노동자의 모집과 송출, 배정 전 과정은 공공기관이 담당해야 하며, 사적 중개나 알선, 수수료 수취는 엄격히 금지된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거리가 멀다. 지방자치단체의 인력과 관리 역량이 부족한 틈을 타 이른바 ‘브로커’들이 제도 전반에 개입하고 있다. 이들이 노동자 모집부터 입국, 사업장 배정, 통장 개설, 보험 가입, 비자 업무까지 사실상 전 과정을 장악한 상태다. 공공이 통제해야 할 영역이 민간 브로커로 대체되면서, 제도 설계 취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인신매매 피해자로 인정된 필리핀 계절노동자를 인터뷰하면서 자세한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브로커들은 필리핀에서 계절노동자 설명회를 열어 사람들을 모았다. 주 5일, 하루 약 8시간 일하면 월 2백만 원 이상의 월급을 벌 수 있다고 홍보했다. 필리핀의 경우, 한국의 최저임금만 받아도 자국 대비 약 4배의 소득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이는 큰 기회이자 생계유지 수단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계절노동자로 선발되어 출국하는 때부터, 착취는 시작되었다.

 
브로커들은 서류 처리·행정 비용 명목으로 빚을 지게 하고, 월급에서 75만 원씩 3개월간 공제한다. 합법적 직업소개소도 임금의 1% 이하, 1회 소개비만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명백한 불법적 이익 취득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사업장 이탈을 막는다는 이유로 여권을 빼앗고, 이탈 방지 보증금을 요구하고, 가족과 친인척을 이탈 방지 보증인으로 세웠다. 만약 사업장을 이탈하면 본인 및 보증인에게 각각 100만 페소(약 2,5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되고, 이름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한국 또는 필리핀에 갈 수 없게 되고, 민형사 소송이 벌어질 것이라고 협박했다.
 
노동환경 역시 열악했다. 계절노동자들은 휴식일 없이 12시간씩 일했고,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급여를 받았다. 숙소는 CCTV로 통제되기도 했다. 이를 견디다 못해 도망간 노동자가 나오자, 브로커는 다른 계절노동자들에게 이탈한 자들을 잡아 오면 현상금을 주겠다고 했고, 필리핀에 있는 이탈자의 집을 찾아가 보증금을 요구하기도 했다.
 
단순 노동 문제가 아니다, 취약성 이용한 인신매매 구조
 
일부 수사기관은 이것을 단순 임금체불이나 열악한 노동환경 문제로 한정하여 바라본다. 브로커는 주선, 관리만 했을 뿐이고, 돈을 적게 주고 열악한 노동환경을 만든 건 사업주가 아니냐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문제의 본질을 놓치는 해석이다. 브로커의 개입은 단순한 중개가 아니다. 그들은 노동자를 통제 가능한 상태로 만들어, 구조적으로 착취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했다.
 
국제사회는 이미 인신매매의 개념을 확장해왔다. 인신매매는 기존처럼 사람을 사고 파는 행위가 아니라, ‘착취’를 목적으로 사람을 ‘모집, 수송 또는 제공 받는 행위’로 새롭게 정의된다. 여기서 착취란, 성매매, 기타 형태의 성적 착취, 강제노동 및 서비스, 노예 및 노예와 유사한 관행, 노역, 장기 적출 등 힘의 불균형을 이용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부려먹거나 이득을 취하는 것이다. 결국, 사람을 강제로 잡아 와서 억지로 가두는 행위에서 더 나아가, 상대의 취약성을 이용하여 착취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취약하다는 건 무엇일까? 불안정한 체류자격, 낮은 경제적 지위, 언어와 문화의 장벽은 이주노동자를 취약하게 만든다. 취약하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 정교하게 짜둔 착취의 구조가 있을 때, 그것이 착취인 줄 알든 모르든 그것에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임금 격차와 빈부격차가 지속되는 한, 더 나은 소득을 기대하며 국경을 넘는 이주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취약한 위치에 놓인 사람들은 반복적으로 동일한 구조에 편입된다.
 
누군가는 “뭔가 이상한 걸 알았으면 오지 말았어야지”, “결국 자기 선택인데 이제 와서 피해받은 것처럼 구네.”라고 말한다. 결국 그래서 돈을 벌었으니 된 것 아니냐는 정서, 네가 스스로 선택한 일이니 네가 감당하라는 논리다. 이러한 시각은 그 선택이 이루어지는 조건을 외면한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서의 결정, 정보의 비대칭 속에서 이루어진 선택이 과연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인신매매방지법은 분명히 말한다. 피해자가 착취에 동의했더라도 인신매매 범죄 성립 여부에는 영향이 없다. 취약한 조건에 있는 사람의 ‘선택’은 진정한 의미의 자발적 선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브로커를 처벌해야 하는 이유
 
우리가 브로커 처벌에 힘쓰는 이유는 분명하다. 브로커의 적극적 개입이 사람을 착취하기 쉬운 조건 자체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여권 압수, 채무 부과, 가족 보증, 현상금 추적—이 모든 장치는 노동자가 스스로 상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설계된 통제 수단이다. 사업주의 저임금 착취가 가능한 것은, 바로 이 구조가 먼저 노동자의 선택지를 봉쇄해놓았기 때문이다.
 
계절노동자 제도 자체가 문제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농어촌의 인력난은 현실이고, 국가 간 노동 이동 역시 불가피하다. 그러나 제도의 공공성이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때, 브로커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착취 구조를 만든다. 제도의 이름이 ‘계절노동’이라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 인신매매의 정의에 부합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인신매매라고 불러야 한다.
 
이름을 정확히 부르는 것이 출발점이다. 인신매매, 착취라고 불러야 수사가 시작된다. 계절노동자들이 인신매매 피해자로 확인되었음에도, 수사기관은 여전히 “노동자들이 설명을 듣고 동의했다”는 이유로 노동력 착취 약취·유인을 부정한다. 전국의 농어촌에서 피해가 확인되고 있어 큰 틀의 공조가 필요함에도, 관할을 이유로 수사가 미뤄지고 있다. 그 사이 계절노동자 제도는 더 확대되어 시행되고 있다.
 
[필자 소개] 정효주. ‘이주민센터 친구’에서 상근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계절노동자 인신매매 피해 고소대리인단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