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순천향대학 초빙교수(국가유산청 정책자문위원)
지난 주말, 국가유산청 관계자들과 가마쿠라 고토쿠인(高德院)을 다녀왔다. 고토쿠인은 일본 3대 대불 중 하나인 아미타여래를 모신 사찰이다. 이곳에는 한때 조선 왕실 사당으로 추정되는 관월당(觀月堂)이 있었다. 고토쿠인은 지난해 5월 사토 다카오(佐藤孝雄) 주지가 관월당을 반환하면서 주목받은 곳이다. 우리 언론은 이를 ‘100년 만의 귀환’이라며 반겼다.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간 관월당은 우여곡절 끝에 고토쿠인에 자리 잡았고, 대불과 함께 100년 넘게 가마쿠라를 상징하는 유산으로 존재해 왔다.
숙소가 있는 도쿄 미나토에서 가마쿠라까지는 약 60km. 편도 1차로 도로는 주말 정체로 더뎠지만, 뜻깊은 현장을 찾는 길이라는 생각에 마음은 가벼웠다. 관광객으로 붐비는 고토쿠인에서 이제 관월당은 사라지고 빈터만 남았다. 정면 3칸 맞배지붕 건물은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그 자리는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을 남겼다. 사토 주지는 “한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으로 반환을 결단했고, 해체·운송 비용에 더해 연구 기금 1억 엔(10억 원)까지 기부했다. 국가유산청과 한국전통문화대학은 이곳에서 기부 협약을 체결했다.
게이오대 교수이기도 한 그는 이번 결정을 “양국 화해와 신뢰 구축을 위한 것”이라 설명했다. 사토 주지는 홋카이도 아이누와 아메리카 원주민, 호주 아보리진 연구 경험을 언급하며 문화유산 복원이 신뢰 회복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불행한 과거 위에서 미래 세대가 학술교류로 새로운 신뢰를 쌓길 바란다”는 그의 말은 단순한 기증 이상 울림을 남겼다. 허민 국가유산청장 역시 “문화유산을 통해 협력 가능성을 보여준 상징적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번 사례는 유물 반환 이상 의미를 갖는다. 국가 간 갈등이 아닌 개인의 자발적 결단으로 이뤄진 ‘민간 외교형 반환’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문화유산을 둘러싼 갈등을 신뢰와 공감으로 전환한 사례다. 국가유산청은 이를 계기로 일본 사찰과 대학, 박물관과 네트워크를 확대해 자발적 반환을 이끄는 전략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이는 외교 갈등을 줄이면서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는 현실적 접근이다.
관월당은 또 하나 전환점을 제시한다. 그동안 환수 정책이 불상과 서화 같은 ‘유물’ 중심이었다면, 이번 사례는 건축물 자체가 돌아온 드문 경우다. 앞으로는 건축물과 정원, 공간까지 포함하는 입체적 환수 정책으로 나아가야 한다. 문화유산을 ‘점’이 아닌 ‘공간’으로 보는 시각 전환이 요구된다. 나아가 관월당 유랑사는 1910년 경복궁 건물 경매라는 식민지 수탈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해외 반출 궁궐 건축물에 대한 전수 조사와 체계적 연구가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 반환의 역사적 의미가 온전히 완성된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문화재를 공공재가 아닌 재테크 수단으로 여기는 시선이 여전히 존재한다. 훈민정음 해례 상주본은 그 단적인 사례다. 천문학적 금액 요구 속에 지금까지 행방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올해 2월 미국에서는 조선 후기 문집 책판이 자발적으로 기증됐다.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인식의 격차를 분명하게 드러낸 사례다. 일부 고미술 시장의 음성적 거래 역시 불편한 지점이다. 공익과 사익이 충돌할 때 어떤 기준을 세울 것인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문화유산은 개인 소유물이 아니라 후손에게 물려줄 공공재라는 인식이다.
국외 소재 우리 문화유산은 29개국 25만 점에 달한다. 일본(43.1%), 미국(26.9%), 독일(6.2%)에 광범위하게 분포해 있다. 모든 것을 돈으로 되찾는 방식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국가유산청은 불법 반출 유산은 단호히 환수하고, 합법 반출 유산은 현지 활용과 협력을 병행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제 여기에 민간 협력과 국제 네트워크를 결합한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
고토쿠인을 출발해 도쿄로 돌아오는 밤길, 사토 주지의 결단이 계속 떠올랐다. 그의 학자적 양심과 종교인으로서 신념은 감동적이지만, 그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오모테산토 힐즈 인근 네즈(根津) 미술관처럼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곳 또한 조선 범종과 석물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결국 필요한 것은 선의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설득과 전략, 그리고 원칙이다. 문화유산을 되찾는 일은 감정이 아니라 정책의 영역이다. 관월당의 귀환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