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면적' 스마트 콩 농장 연내 구축
가깝고 대규모 농업 가능하지만
수익 낮아 과거 진출기업 줄철수
풀무원, 로봇 등 데이터농업 승부수
"수입 콩나물콩 50% 대체 목표"‘눈물의 땅.’
국내 식품 기업은 오랫동안 러시아 극동 연해주 지역을 이렇게 불렀다. 1990년대부터 토종 기업이 부푼 꿈을 안고 진출했지만 뚜렷한 성과 없이 줄줄이 철수하며 잔혹사만 남겼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에 유독 척박했던 이 땅에서 풀무원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인공지능(AI) 등 첨단 농업 기술을 앞세워 여의도 면적 규모의 콩 생산 기지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1세대 기업의 패착을 딛고 ‘K농업’ 성공 사례를 써 내려갈지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콩 자급률 높일 ‘시험대’
19일 업계에 따르면 풀무원은 연내 연해주에 300만㎡ 규모 농장을 짓고 롯데상사와 협력해 콩나물 콩 및 가공용 콩 재배를 추진한다. 콩나물 콩의 해외 공급 불안정성을 줄이기 위한 결정이다.
풀무원 관계자는 “원료 구매 기준에 부합하는 품질과 단가, 공급 안정성을 확보해 수입 콩나물 콩의 대체 가능성을 검증할 예정”이라며 “중장기적 목표는 풀무원 전체 수입 콩나물 콩의 50%를 대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콩 자급률은 매년 오르고 있지만 해외 의존 비율이 여전히 40%에 달한다. 풀무원은 2000년대 초부터 중국 지린성 대산농장에서 콩을 들여오다가 500억원대 법적 리스크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후 캐나다 등으로 수입국을 다변화했지만 여전히 원료 공급 리스크가 크다.
연해주는 한국의 농업 서사가 오랫동안 쌓인 지역이기도 하다. 1860년대 함경도 기근으로 농민들이 두만강을 건너 척박한 황무지를 개간해 벼농사에 성공한 게 시작이었다. 한·러 수교 이후엔 1992년 고려합섬을 필두로 새마을운동중앙회, 대순진리회(아그로상생), 대상 등이 앞다퉈 ‘북방농업’에 뛰어들었다. 현대중공업은 2003년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회장의 유지에 따라 현지 농장을 사들였다. 풀무원 관계자는 “국내와 지리적으로 인접해 물류 효율성이 높고 대규모 농업이 가능한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연해주 땅을 갈던 1세대 기업은 상당수가 중도 하차했다. 대규모 영농 관련 노하우와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연해주 사업의 수익성이 불투명한 가운데 그룹 차원의 구조조정에 나서며 2018년 롯데상사에 농장을 매각했다. 대상도 연해주 사업권을 정리했다. 아직 연해주 농장을 유지하고 있는 유니베라(옛 남양알로에) 관계자는 “오너의 의지가 강력해 철수하진 않겠지만 수익성이 높지 않아 활용법을 고심 중”이라고 했다.
◇‘데이터 농업’으로 리스크 통제
풀무원의 새 도전은 국내 기업의 과거 패착을 딛고 해외 대규모 농업의 물꼬를 트기 위한 실험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새 무기는 첨단 농업기술이다. 풀무원은 2024년부터 시험 재배를 통해 연해주형 생육·환경 데이터를 축적했다. 이를 기반으로 농림 인공위성을 활용해 생산량 예측 모델을 도입하기로 했다. 별도의 현장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아도 넓은 면적의 작황 분석이 가능하다. 위성의 특정 파장을 통해 토양 수분과 작물 생육 상태를 분석하고 농작업 종류도 결정할 수 있다.
국내 농기계 스타트업 긴트 등과 협력해 자율주행 농기계 기술도 테스트한다. 회사 관계자는 “연해주는 땅이 넓어 자율주행 기술을 적용하기가 한국보다 훨씬 용이하다”고 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현지의 돌발적인 정책 변화와 물류 변수를 얼마나 유연하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라며 “수입 의존도가 높은 전략 작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할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