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주 예성부터 던까지…
문화 유산, 무형 유산에 '집중조명'
"대세보다 가치" 스타들의 자발적 행보'전통문화'라고 하면 고리타분하고 박물관에나 박제된 유물로 인식되던 시대는 지났다. 최근 K팝 아티스트들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우리 국가유산을 재해석하고 소개하는 방식이 한층 깊고 정교해져 MZ세대의 지지를 얻고 있다. 궁궐과 한복이라는 시각적 미학을 넘어, 이제는 대중의 시선이 닿지 않던 무형유산의 장인들과 전승 위기 문제까지 스타들의 목소리로 전해지며 '힙(Hip)'한 가치 이음이 시작됐다.
슈퍼주니어 예성, 가수 던 등 K팝 아티스트들이 자발적으로 국가유산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이들은 자극적인 콘텐츠가 범람하는 유튜브 생태계에서 '문화유산'이라는 다소 무거운 소재를 본인만의 감성으로 풀어내며 공공 콘텐츠의 담론이 '권위적 지식 전달'에서 '참여형 공감'으로 진화하고 있다.
◆ "예술가의 성대로 걷는 고궁"…예성이 그려낸 디지털 문화교류 모델
슈퍼주니어 예성은 국가유산채널과 협업한 '예성의 국가유산 산책'을 통해 국가유산을 '타자의 문화'가 아닌 '공감 가능한 문화'로 전환하는 '문화중개자(Cultural Mediator)'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2023년 10월 창덕궁 편을 시작으로 방영된 이 프로그램은 K팝 스타의 글로벌 팬덤 자본과 국가유산의 전통 정서를 결합한 새로운 모델로 평가받는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가유산채널은 전체 운영 예산 약 36억 원 중 40%에 달하는 15억 원을 '글로벌 타깃 콘텐츠 제작'에 투입했다. 이는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등으로 촉발된 K-콘텐츠의 성공을 국가유산이라는 공공 영역으로 확장하려는 전략적 선택이다.
단순히 자막을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예성처럼 미술·사진·건축 등 문화예술에 조예가 깊은 아티스트를 기용해 유튜브 알고리즘과 팬덤의 구전(口傳)을 결합했다. 예성은 본인의 유튜브 채널 '예세이(Yessay)'와 인스타그램(팔로워 약 627만 명)을 통해 글로벌 팬들을 자연스럽게 국가유산의 세계로 유입시켰다.
'예성의 국가유산 산책' 12편에 달린 유효 댓글 3922건을 분석한 결과, 외국인 이용자 댓글이 2,734건으로 무려 69.7%를 차지했다. 언어 역시 영어, 중국어, 일본어뿐 아니라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아랍어 등 7개 언어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특히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지역 시청자가 전체의 33.3%를 차지하며 'K-팝 영향권' 내에서의 국가유산 확산 효과를 입증했다.
김한태 국가유산진흥원 헤리티지미디어팀장은 "예성은 아티스트 본인이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공적인 영역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다는 점에 의미가 크다"며 "스타에 대한 호감도로 유입됐으나 결과적으로 한국 문화외교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밝혔다.
이어 "댓글을 보면 '삼국유사를 읽어봐야겠다'는 일본 시청자도 있을 만큼 파급력이 대단하다"며 "프리젠터의 영향력 덕분에 우리 문화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있으며, '한국에 가면 꼭 가보겠다'는 실질적인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예세이'와의 협업 성과 자료에 따르면, 콘텐츠가 단순 시청을 넘어 실제 한국 방문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속속 확인되고 있다. 일본, 중국, 동남아 지역 팬들은 X(구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영상 속 촬영 장소 정보를 공유하고 직접 방문한 인증샷을 게시하며 국가유산에 대한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현재까지 총 23편이 제작된 '예성의 국가유산 산책'은 매년 시즌제로 제작된다. 올해 역시 해외편을 포함해 총 8편이 제작될 예정이며, 오는 4월 22일 제24편 '한강' 편을 시작으로 새로운 여정의 방영을 앞두고 있다.
◆ "전승자 0.25%의 현실"…던이 던진 무형유산의 화두 '가치 이음'
가수 던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무형유산의 단절'이라는 지점을 파고들었다. 그는 최근 유튜브 콘텐츠 '가치 이음'을 통해 한국 부채의 거장 이광구 장인을 만났다.
던은 "무형문화재의 현 상황이 좋지 않더라. 후계자가 없는 곳이 80%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살리기까지는 힘들더라도 '알리기'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콘텐츠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영상 속에서 던은 장인과의 인터뷰를 통해 "전통 이수자가 0.25%밖에 되지 않는 현실"을 짚어내며, 젊은 층이 우리 유산을 소장하고 관심을 가질 때 자연스럽게 후계자가 생겨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했다. 장인의 아내는 "배우고자 하는 분들이 한 명이라도 더 와줬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해당 영상이 공개된 후 이광구 장인의 손녀는 "무형문화재를 알리는 프로젝트의 첫 시작으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소개해 주셔서 감동했다"며 "영상을 기획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누리꾼들 역시 "던의 행보가 마치 다큐멘터리 PD 급이다", "이런 것이 진정한 선한 영향력"이라며 뜨거운 응원을 보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단순히 연예인의 홍보 활동을 넘어, 세대적 특성과 K컬처의 위상이 맞물린 결과라고 분석한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전반적으로 Z세대는 남다른 특징이 있다. X세대가 상품과 소비를 접한 뒤 자랑하기 바빠 트렌드를 쫓아다녔다면, Z세대는 자신이 중심이 되어 트렌드를 직접 만든다"고 짚었다. 이어 "이들은 낡았다거나 예전 것이라는 편견이 없다. 문화유산 자체의 의미를 중시하기 때문에 K팝 스타들이 전통문화를 이야기할 때 그것이 '옛날 것'인지보다 그 안에 담긴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 점들이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라고 평했다.
또한 김 평론가는 아티스트의 정체성 확립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K팝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다들 그 근원인 우리의 뿌리와 정체성에 대해 궁금해한다. 이를 전통문화 유산으로 풀어낼 때 K팝 브랜드가 지닌 가치는 더욱 깊어진다"며 "아티스트 입장에서도 홀로 명성을 얻기보다 한국이라는 나라와 공동체에 대한 의식이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사회적 책임감을 증명하는 계기가 된다"고 부연했다.
연예계 관계자들 역시 이 같은 흐름이 스타 개인의 브랜딩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고 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아티스트의 개인적 취향과 예술에 대한 갈증이 공공 콘텐츠의 니즈와 맞아떨어지며 시너지를 내는 모양새"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홍보 관점에서도 가수라는 본업을 넘어 알고리즘을 통해 의외의 면모가 노출되는 것은 브랜딩에 상당히 긍정적"이라며 "대중에게 익숙한 기존 이미지에서 탈피해 '깊이 있는 활동을 하는 예술가'라는 인상을 심어줌으로써 아티스트의 수명을 늘리는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국가유산청 관계자 또한 "유행이 빠르게 변하는 시점에 스타들이 직접 제작하는 깊이 있는 콘텐츠는 정책적으로 매우 귀중한 자산"이라며 "전통문화에 무지한 세대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는 동시에, 소멸 위기에 처한 무형유산 전승자에게는 커다란 위로와 실질적인 홍보 기회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