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강경해진 이란 군부, ‘휴전 합의’ 원하는 이란 외교부 무시하고 하룻밤새 발표 뒤집어
이란 군부는 이번 전쟁서 핵무기보다 강력한 ‘해협 봉쇄’ 위력 확인
트럼프의 과장 발표와 “휴전 합의 때까지 봉쇄” 압박도 이란 군부 자극

17일 밤(이하 한국시간) 압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호르무즈 해협의 완전 개방”을 트위터로 발표했다. 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거의 즉각적으로 “환영” 의사를 밝히며 “전세계에도 위대하고 탁월한 날”이라고 했다. 그러나 다음날 18일 오전 인도 국적의 선박 2척이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이란혁명수비대(IRGC) 고속정의 공격을 받기까지는 하루가 채 안 걸렸다.
왜 이렇게 사태가 진전됐을까. 이란 전문가들은 미 언론에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 사후(死後) 더욱 세력이 커진 이란혁명수비대와 같은 이란 군부와 상대적으로 실용적인 외무장관이 충돌했고, 또 ‘희망 사항’을 종종 ‘합의’로 발표하는 트럼프의 과장도 이란 군부를 자극하는 데 한몫을 했다고 말했다.
압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17일 밤 8시45분 소셜미디어 X에 “(이스라엘의) 레바논 휴전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모든 상선의 통항은 남은 휴전 기간 완전히 개방된다”고 썼다. 이란이 본격적인 휴전 협상의 기본 전제로 제시했던 레바논 헤즈볼라에 대한 이스라엘 공격이 중단됨에 따라, 8일부터 시작한 ‘2주간’ 잠정 휴전 기한(21일)까지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한다는 것이었다.
비교적 실용주의적 협상가인 아라그치의 발표는 2주 잠정 휴전 기간이 줄어드는 시점에서, 미국 측이 ‘레바논 휴전’을 이스라엘로 받아낸 만큼 이란도 앞으로의 협상에 열려 있다는 ‘신호’였다.
트럼프는 즉각 환영했다. 1시간 15분 뒤에 트루스 소셜에 “이란이 방금 완전히 열렸다. 땡큐”라고 했고, 이어 “이란은 우리 요구를 거의 다 수용했다”고 했다. 다음날 새벽(한국시간)에는 “(해협은) 비즈니스와 완전 통항 준비가 됐다. 전세계를 위해서도 위대하고 탁월한 날이다. 합의에 거의 가까웠다”고 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언급한 ‘합의’는 양측이 앞으로 60일간의 휴전 협상에서 다루게 될 이슈들을 어떻게 풀어갈 것이냐에 대한 기본합의틀(MOU)을 말하는 것이지, 영구 휴전 합의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 비축분의 위치 확인과 불능화 처리 ▲이란의 핵프로그램 허용 여부 및 기간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 해제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통과세 요구 ▲미사일 제한 ▲헤즈볼라ㆍ후티ㆍ하마스 등 중동의 이란 대리세력과 지역 안보 문제 등의 이슈다. 이 문제들의 협상 틀에 대해서도 양측은 아직 합의하지 못했는데, 트럼프는 특유의 과장 화법으로 이란이 미국 요구를 거의 다 수용했고 이제 호르무즈 해협은 영구 개방된 것처럼 얘기했다.
그러나 안보 전문가들은 앞으로 이 문제들을 세부사항까지 정밀하게 합의하기에는 두 달도 부족하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또 다뤄야 할 문제들의 성격상 각각 진전 속도가 다르다고 한다. 트럼프가 비판하는 오바마의 이란 핵합의(JCPOA)는 2년이 넘게 걸렸다.
그러면서도 트럼프는 “해협 봉쇄는 휴전 합의가 서명되기까지 계속된다”고 했다. 곧 미 중부사령부는 “봉쇄는 대통령이 종료를 지시할 때까지 유지된다”고 발표했다. 결국 같은 날, 해협 개방 환영과 봉쇄 유지 메시지가 함께 나왔다.
한편, 이란 군부는 아라그치 외무장관의 일방적인 트윗과 트럼프의 ‘과대 발표’ ‘계속 봉쇄 조치’에 자극받았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의 “해협 완전 개방” 메시지 뒤에, 같은 날 밤(한국시간) 이란혁명수비대 해군 고속정은 해상 무선 방송에서 “우리는 어떤 바보(idiot)의 트윗이 아니라, 우리 지도자 이맘 하메네이[모흐타바]의 지시에 따라서만 해협을 개방한다”고 밝혔다.
이란최고국가안보위원회는 다음날 18일 오전 “미국과 이스라엘이 레바논 휴전을 수용함에 따라 조건부로 17일 해협을 개방했지만, 미국이 (잠정) 휴전 합의를 위반하고 계속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므로, 호르무즈 해협 통제는 이전 상태로 돌아갔고, 무장 병력이 다시 엄격하게 관리ㆍ통제한다. 해협으로 접근하는 배는 적과 협조하는 것을 간주해 공격하겠다”고 발표했다.
곧 2척의 인도 유조선과 벌크 운송선이 이란군 고속정의 공격을 받았다는 영국 해상무역운영센터(UKMTO)의 사건 보고서가 나왔다. 19일 현재 호르무즈 해협은 다시 폐쇄됐다.
이란의 이런 상반된 신호 발신으로, 전쟁 시작한 이래 지난 7주 간 계속 영향력이 커진 이란 군부와 정치 지도부간 균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는 또 트럼프와 ‘실용적인’ 이란 협상팀이 앞으로 협상에서 어떤 유연성을 보이든지, 이란 군부가 지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워싱턴 DC의 싱크탱크인 윌슨 센터의 이란 전문가인 모하메드 아메르시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서방은 이란을 명확한 지휘 체계를 갖춘 나라로 보고 외무부와 협상하고 위에서 결정하면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일이 닥치면 총과 드론, 고속정을 가진 쪽이 내부 논쟁에서 이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아라그치 외무장관의 “해협 개방” 트윗을, 즉각 같은 날 밤에 이란혁명수비대 해군 소속이라는 인물이 해상 방송에서 “우리는 어떤 바보의 트윗을 따르지 않는다”고 반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곧 나온, 이란혁명수비대와 관계가 깊은 타스님 통신은 외무장관이 소셜미디어로 정책을 발표한 것을 놓고 “외교부는 이러한 방식의 소통을 재고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란의 강경파 의원들은 아라그치의 발언이 유가를 안정시켜 미국에 선물을 줬다며, 그의 해임을 요구했다.
워싱턴의 싱크탱크 퀸시 연구소의 부소장 트리타 파르시는 “미국과의 합의에 반대하는 강경 저항파의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에, 국제위기그룹(ICG)의 이란 프로젝트 책임자인 알리 바에즈는 “완전 개방을 환영하면서도, 계속 봉쇄하겠다”는 미국 측 입장이 이란 군부의 반발을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미 국방정보국은 16일 미 하원 군사위원회 보고에서 이란 군부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막대한 공격에도, 여전히 수천 발의 탄도 미사일과 드론을 분산 배치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전문가들은 심각한 타격을 입은 이란 군부는 이런 무기를 기반으로 어떤 형식으로든 보복을 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이란 군부는 또 이번 전쟁에서 ‘핵무기’보다도 더 강력한 억지력을 띠고 세계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카드의 위력을 직접 확인했다.
게다가, 작년 6월 미국의 이란 핵시설 타격 작전인 ‘한밤중의 망치’ 작전 이후에도 ‘호르무즈 봉쇄’는 반대했던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도 이제 사라졌다. 알리 하메네이는 해협을 봉쇄했다가 전세계를 적으로 만드는 상황을 우려했다. 테네시대의 이란 전문가 사이드 골카르는 “주요 중재자가 사라지고 서로 다른 파벌 간 싸움이 시작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