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투자자 조모(34)씨는 이달 초 국내시장 복귀계좌(RIA)에 가입한 뒤 보유 중이던 애플 주식을 팔았다. 조씨는 “나중에 이익의 22%를 세금으로 떼인다고 생각하면 아까워서 한숨부터 나왔는데, RIA로 100% 감면받았다”며 “환율이 높은 지금이 환차익 효과에 절세 혜택까지 받을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중동 전쟁 여파로 달러 가치가 오르면서 달러 기준 35%였던 조씨의 해외주식 수익률은 원화 기준 45%까지 높아졌다.
정부가 해외주식에 묶인 외화를 국내로 되돌리기 위해 내놓은 RIA는 지난해 12월 23일까지 보유했던 해외주식을 전용 계좌로 옮겨 판 뒤, 이 돈으로 국내 주식에 재투자하면 양도소득세를 감면해주는 제도다. 복귀 시점이 빠를수록 혜택이 크다. 5월 31일까지 복귀하면 100%, 7월 말까지는 80%, 연말까지는 50%를 공제받을 수 있다.
100% 공제 시한이 다가오면서 RIA 가입이 빠르게 늘고 있다. 1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16일 기준 RIA 누적 가입 계좌 수는 14만3455좌로 나타났다. 출시 첫날인 지난달 23일과 비교하면 8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누적 잔고는 519억원에서 8815억원으로 17배 늘었다.
시장에서는 중동 전쟁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오른 점도 RIA 확대에 우호적으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쟁이 마무리되면 환율이 다시 하락할 수 있다는 기대 속에, 환율이 높은 시점에 해외주식을 매도하면 환차익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올해 1440원대로 출발한 원·달러 환율 주간 종가는 중동 사태 이후 여러 차례 1500원을 넘어섰다.
국내 증시 활황에 미국 주식 투자 열기가 한풀 꺾인 영향도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순매수 금액은 올해 1월 50억 달러에서 2월 39억5000만 달러, 3월 16억900만 달러로 줄었고, 4월에는 15억 달러 순매도로 전환했다. 해외 주식을 사려면 먼저 달러로 환전해야 하는데, 높은 원·달러 환율에 따른 환전 부담도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신한투자증권이 RIA 계좌 내역을 분석한 결과, 지난달 23일 출시 이후 이달 10일까지 가장 많이 매도한 해외 종목은 엔비디아였다. 전체 해외주식 매도의 20.7%를 차지했다. 이어 애플(6.8%), 테슬라(6.4%), 알파벳A(6.4%) 순이었다. 반면 국내 주식 매수 상위 종목은 삼성전자(15.6%), SK하이닉스(13.8%), KODEX200(3.7%), 현대차(3.6%) 순이었다. 미국 빅테크 종목에서 차익을 실현한 자금이 국내 반도체 대형주와 지수 추종 상장지수펀드(ETF)로 옮겨가는 흐름이 뚜렷했다.
다만 대규모 자금이 본격적으로 국내 증시로 복귀하고 있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현재 RIA 계좌당 평균 잔고는 약 614만원으로, 납입 한도 5000만원의 12% 수준에 그친다. 이달 들어 미국 증시가 강세를 보이는 만큼, 자금 이동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제도상 올해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다른 계좌에서 해외 주식을 다시 사들이면 그만큼 세제 혜택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개인투자자 이모(29)씨는 “국내 증시는 왠지 고점 같고 미국 증시는 이제 오르기 시작하는 것 같은데, 1년 동안 미국 주식을 아예 못 산다고 생각하면 옮기기가 망설여진다”고 말했다.
최규호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말 기준 개인투자자의 해외주식 보유 잔액이 약 255조원인 점을 감안하면, 현재까지 유입된 자금은 약 0.4%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국 주식이 미국 등 해외 주식의 상승률을 상회하면서 최근 4개월간 해외 주식 자금 이탈 규모는 17조원으로 추정된다”며 “코스피가 글로벌 증시에서 수익성 대비 가장 낮은 밸류에이션을 기록하고 있는 만큼 수익률 격차가 확대될수록 연내 자금 유입이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