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은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이다. 정부가 정한 동정과 시혜의 ‘장애인의 날’을 거부하고, 장애인의 헌법적 권리인 인권과 평등을 촉구하는 날이다. 2002년 장애인 이동권·탈시설 운동이 본격화하며 시작된 행사가 올해로 스물다섯번째를 맞았다. 그러나 장애인들의 오랜 숙원인 ‘탈시설’ 성적표를 들여다보면, 여전히 장애인 인권을 논하기 민망한 수준이다.
19일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 4년간 정부의 자립지원 시범사업에 참여한 장애인은 전국 481명에 불과했다. 2023년 기준 1529개 시설 거주 장애인 2만7325명의 1.76%다. 정부가 2021년 8월 ‘장애인 탈시설 로드맵’을 발표하고, 내년 3월부터는 ‘장애인자립지원법’을 시행하기로 했지만, 시범사업은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그사이 장애인 거주시설 내 인권침해는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 달에는 인천 강화군 중증장애인 시설 ‘색동원’ 원장이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성적 학대를 저지른 혐의로 구속되는 ‘인천판 도가니’ 사건이 벌어졌다. 더욱이 피해자 중 일부는 과거 인권침해 사건이 발생했던 다른 시설에서 색동원으로 전원을 왔다가 피해를 겪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피해자들을 또 다른 시설로 옮기는 ‘시설 뺑뺑이’ 대책을 내놔 반발을 사고 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UNCRPD)은 장애인을 독립된 주체로 인정하고 지역사회 내 주거와 맞춤형 서비스 지원을 통해 다른 사람과 동등한 삶을 보장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국제적인 흐름도 시설 중심에서 탈시설로 옮겨간 지 오래다. 서울시가 2023년 탈시설 장애인 487명을 조사한 결과, 삶의 만족도가 5점 만점에 4.31로 높게 나타났다. 그럼에도 장애인과 가족들이 선뜻 시설 퇴소와 자립을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는 명료하다. 시설에 입소하기 전, 장애에 따른 어려움을 오롯이 감당해야 했던 이들에게 정부의 자립 지원책이 미덥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자립 1.76%’라는 초라한 성적표와 장애인 및 가족들의 뿌리 깊은 불신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법 시행까지 남은 1년, 개인별 특성에 맞춘 전담 인력과 활동 보조 서비스를 획기적으로 확충해 탈시설 실행 의지를 증명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장애인들이 두려움 없이 지역사회로 첫발을 내디딜 수 있도록, 강요된 집단생활에서 벗어나 원하는 곳에 살며 원하는 것을 먹고 입는 자기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