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전 | 한양대 의대 교수“함께 건강을!” 지난 7일, 제78주년 세계 보건의 날, ‘세계보건기구’가 내놓은 선언의 제목이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의 신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지금, ‘함께’라는 글귀가 눈에 밟힌다. 이번 선언문 중 특별히 강조하는 단어가 ‘원헬스’(One Health)다. 이것은 에볼라, 조류독감, 코로나19처럼 인간과 동물 모두를 감염시킬 수 있는 질병과 항생제 내성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의학, 수의학, 환경과학 등 여러 분야가 함께 협력하는 방식을 말한다. 같은 날, 주요 7개국(G7) 의장국인 프랑스 정부는 국제 원헬스 정상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원헬스는 ‘하나’의 건강이란 뜻이지만, 흥미롭게도 여기서 ‘원’은 우리말로 ‘동그라미’라는 ‘원’과 발음이 같다. 더욱이 ‘원헬스’는 인간과 동물의 질병을 따로 보는 협소한 접근법을 넘어, 더 큰 원을 그리고 그 안에 인간, 동물, 환경을 함께 넣어 다루려는, 전세계 보건의료인의 오랜 노력이 집약된 개념이자 실천 방식이니, 실로 우연이 겹친 셈이다. 실제로, 78년 전 세계보건기구는 건강을 “단순히 질병이나 장애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완전히 온존(well-being)한 상태”로 정의했다. 이는 기존의 정의보다 훨씬 큰 동그라미를 그린 것이다. 더욱이 자유주의 진영이 반대했던, ‘사회적 온존’을 건강의 정의에 포함했다. 또한, 세균이나 유전자 같은 생물학적 요인만을 건강의 결정인자로 보는 좁은 관점을 비판하고, 생활습관, 물리적, 사회적 환경, 보건 의료 제도에 더해 경제, 노동, 교육, 문화까지, 다층적 요인들을 모두 건강의 결정인자로 봐야 한다는 이론을 확고히 했다. 이른바 ‘더 큰 동그라미 그리기 프로젝트’를 위해 노력해온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원의 크기가 여전히 작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겐 더 큰 동그라미, 즉 ‘큰 원헬스’가 필요하다. 그 원 안에 담아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첫째, ‘완벽함’을 지향하는 우생학적 건강 개념의 경계를 허물고, 질병, 장애 등의 불완전성을 인간과 모든 존재의 본질로 여기는 더 큰 개념으로 확장해야 한다. 둘째,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온존이라는 건강의 정의에 ‘영적’ 온존도 포함해야 한다. ‘영적’이란 종교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약은 고사하고 식량도, 땔감도 떨어진 가난한 나라 진료소에서 고열의 어린이 곁을 밤새워 지키는 ‘마음’, 부자 나라의 비싼 첨단 장비와 기술로 대체할 수 없는 ‘정성’이라는 영성도 건강의 결정인자에 포함해야 한다. 셋째, 평화도 그 동그라미 안에 들어가야 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사망한 미나브의 168명, 가자지구의 2만1천명 어린이들에게 “건강해지려면 양치질을 잘해야 한다”는 소리만 하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넷째, 밉든 좋든, 남한, 북한, 팔레스타인, 중국, 우크라이나, 이란, 러시아, 미국, 이스라엘 사람이 모두 공존 운명이라는 하나의 원 안에 들어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우리는 그 원 안에 인간, 동물, 식물뿐만 아니라 흙, 물, 공기, 불과 같은 비생물적, 비감각적 존재들의 온존까지 포함해야 한다. 어떤 이들이 ‘큰 원헬스’를 ‘행성 건강’이라 부르는 이유다. 실제로 우리는 신선한 흙, 물, 공기, 불 없이 생존할 수 없다. 2500년 전 그리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의 말대로라면, 인간과 만물은 모두 이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1978년 알마아타에 모인 세계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전 지구적 구호를 “모든 이의 건강을!”(Health for ALL)로 정했다. 지금 상황에서 보면, 이것이야말로 ‘큰 원헬스’의 구호인 셈이다. 다만, “모든 존재의 건강을!”로 새롭게 번역돼야 한다.
‘큰 원헬스로 전환하자’라는 말이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하고 한가한 소리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소원이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 온존’이 아니던가? 더욱이 지금의 전쟁, 기후위기, 환경오염, 감염병 유행, 이에 더해 최근 다시 전세계에 만연하고 있는 혐오는 인공지능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 것이 바로 그 과학이다. 또한 우리가 너무나 작은 동그라미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존재의 온존을 지향하는 ‘큰 원헬스’야말로 인류 생존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의 열쇠인 셈이다.
잠시 일을 멈추고 손바닥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려보자. 그 원 안에 무엇을 넣을 것인가? 선택은 자유지만, 그것이 지구라는 행성과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큰 원헬스’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