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정 | 작가·‘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저자집 근처 도서관 옆에는 어린이 놀이터가 한 세트처럼 붙어있다. 어린이 열람실 한쪽 벽면은 애플 매장처럼 초대형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바깥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이와 나란히 앉아서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면 미끄럼틀을 타는 어린이들이 여럿 보인다. 도서관을 이용한 후 으레 놀이터에 가는 걸 코스처럼 여기는 아이가 일어나서 문을 열고 열 발짝쯤 떼면 푹신한 우레탄 바닥이 나온다. 부리나케 뛰어가는 아이는 뒤통수조차 신이 나 있다.
어느 날, 놀이터 방향의 창문에 이런 경고문이 붙었다. 굵은 고딕의 글자가 에이포 용지 사이즈의 한 면을 꽉 채우고 있었다.
‘유리창에 돌을 던지지 않아요.’
오며 가며 그 글자를 마주쳤다. 고개가 자꾸만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며칠 후 집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새로운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공동 주택 예절을 지켜달라는 제목 밑에 적힌 주의사항 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창문 밖으로 물건을 던지지 않아요.’
아. 언젠가부터 유행이 된 것 같다. ‘하면 안 돼요’ 하지 못하고 ‘하지 않아요’라고 하는 흐물흐물한 화법이.
에이아이(AI) 프롬프팅을 최근 주로 강의하는 친구가 이직 소식을 전해와 축하할 겸 오랜만에 만났다. 온라인 강좌를 열면 십분도 지나지 않아 수백명이 신청해서 이런 분위기가 얼떨떨하다고 했다. 에이아이를 자유자재로 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업무 역량이 극단적으로 나는 풍경을 목도하며 공포를 느낀다고도. 업계와 기술의 변화가 너무 빨라서 이를 따라잡으려 고군분투하다 보니 업무를 효율적으로 하게 되었는데도 근무 시간은 더 많아졌으며 특히 수면 시간이 줄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떠오른 아이러니가 있어 전해주었다.
“나영석 피디 인터뷰에서 들은 이야기랑 연결되는 것 같아. 방송 편집이 디지털로 바뀌면서 처음엔 신세계라고, 일이 줄어들겠다고 좋아했는데 오히려 전보다 야근을 더 많이 하게 됐대. 예전에는 촬영본이 열개쯤 있었는데 디지털로 바뀌면서 백개 이상 늘어서.”
친구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눈 밑이 다소 거무스름했지만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맞아. 비슷해. 이젠 나만 좀 더 부지런하면 다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삶의 전성기를 지나는 중인 사람 특유의 번뜩이는 눈을 응시하다 내가 물었다.
“에이아이를 잘 쓰려면 이렇게 하라고 요즘 네가 특히 강조하는 게 뭐야?”
친구는 머뭇거림이 없었다. 오래 생각했고 여러번 반복했기에 입에 붙어버린 듯했다.
“제한과 제약. 그게 핵심이야. 모호하게 지시를 하니까 자꾸 원치 않던 결과물이 나오거든. 이걸 하라고 시키는 만큼이나 어떤 건 필요 없는지 분명하게 말해야 돼. 이건 안 되고 이건 빼고, 그렇게 명확한 부정문을 잘 써야 한다고 항상 말하지. 근데 사람들이 그걸 잘 못 해.”
친구는 덧붙였다. 평소 언어 습관이 프롬프팅을 할 때도 그대로 쓰이는 것 같다고.
다시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 경고문을 떠올린다. 듣는 사람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하는 것에 더 집중한 것 같았던, 완곡하다 못해 무디게 읽히는 그 경고문. 그 문구를 다시 써 본다. ‘유리창에 돌을 던지지 않아요’가 아니라 ‘유리창에 돌을 던지면 안 돼요’로. ‘창문 밖으로 물건을 던지지 않아요’ 대신 ‘창문 밖으로 물건을 던지면 안 돼요’라고.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는 행위는 의지와 도덕이 아닌 법과 규칙의 영역이니까.
예컨대 “고기를 먹으면 안 돼요”라고 말하는 이는 종교나 의학을 근거로 금기를 체화한 사람이다. 반면 “고기를 먹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이는 채식 등의 신념으로 자발성이 있는 사람이다. ‘하지 않는다’는 말에는 하려면 할 수 있지만 애써 옳음을 택한다는 어감이 깃들어 있다. 둘의 계기는 전혀 다른 곳에서 시작한다.
나는 아이에게 ‘안 돼’라고 해야 할 때, 이유를 처음 한번만 설명하고 이후 건조하게 지시한다. 그건 내가 납득시켜줘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저 지켜야 하는 규칙의 문제여서다. 비행기 승무원들도 비상 상황이 되면 반말과 큰소리로 명령을 내린다. 그게 규정이다. 재빠르게 탈출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차분한 존댓말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
전세계인이 난기류를 만나 이리저리 흔들리며 두려워하고 있다. 명분 없는 전쟁으로 죄 없는 생명이 너무 많이 스러져갔다. 벌거벗은 임금님의 탐욕 때문에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 그러고 보면 자기 귀한 줄만 아는 악당들은 이걸 제일 모르는 것 같다. ‘하지 않는다’와 ‘하면 안 된다’의 거대한 차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