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정열 |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장
새벽 3시, 삐리릭, 삐리릭, 삐리릭. 지난 1년간 내 새벽을 깨우던 알람 소리다. 2024년과 2025년, 총 1년7개월 동안 매주 이틀 이상 울리던 이 알람 소리가 꺼진 것은 불과 얼마 전이다. 2024년 5월3일 춘천문화방송(MBC)과 첫 상견례를 시작으로 전국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는 전국 15개 지역 문화방송과 단체교섭을 시작했다. 전국 지역사가 모두 별도 법인인 문화방송은 지역사별로 따로 단체협약을 해야 한다. 초기업 단위 노조인 방송작가지부의 지부장은 1명, 교섭해야 하는 곳은 대구, 부산, 대전, 여수, 목포, 제주, 강원영동 등 전국 지역사 15곳. 그 말은 지부장인 내가 모두 교섭을 위해 다녀야 한다는 의미다.
그나마 교통편이 나은 대전이나 부산 정도는 그럭저럭 다닐 만하지만, 호남과 충청, 강원, 제주로 가야 할 때면 사정이 녹록지 않다. 버스도, 기차도 여의치 않아 자차로 가야 하고, 대부분 오전에 잡히는 교섭 시간에 맞추려면 적어도 새벽 3시에는 일어나 새벽을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엄마를 둔 열한살과 다섯살 아이는 아침마다 엄마의 손길 없는 아침을 견뎌야 했다.

다시 한번 말하면 방송작가지부는 초기업 단위 노조다. 조합원 수 약 300명에 사업장 수는 방송사와 외주제작사를 포함해 100곳이 넘는다. 그러나 이 숫자는 결코 ‘규모’로 작동하지 않는다. 게다가 현장에서 작가들은 오랜 기간 ‘을’의 위치에 머물러 있었고, 단 한번도 노동자로서 법적 보호를 받아 보지 못해서 정당한 것임에도 요구하는 법도 주장하는 법도 그 방법을 몰랐다. 나 또한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교섭 자리에서 교섭 당사자로서 어떻게 하는 것이 맞는지조차 모른 채 교섭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긴장의 연속이었고, 사쪽과 신경전에서 밀리고 또 밀어붙이는 일은 진을 빼는 일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교섭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초기업 단위 노조인 방송작가지부는 지부장 이하 운영위까지 전임 조합원이 없다. 나는 물론, 교섭에 동행했던 영남지회장도 모두 생업을 이어가며 교섭을 해야 했다. 생방송, 녹화, 원고 집필, 자막 확인까지 제작 업무를 그대로 수행하며 교섭까지 해내야 했던 우리는 새벽에도 밤낮에도 일하고, 운전하면서도 전화로 업무를 보며, 필요할 땐 언제 어디서든 차를 멈추고 노트북을 펴고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언제 어느 때 잡힐지 모르는 교섭 일정으로 인해 녹화에 불참해야 했고, 생방송에 빠져야 했고, 필요한 회의 시간에 참석할 수 없는 날도 허다했다. 20년 넘게 동료들과 쌓은 신뢰를 곶감 빼 먹듯 빼 먹으며 교섭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늦은 밤 홀로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이게 뭐 하는 짓일까? 내가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드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나를 믿고 있는 조합원들을 외면하기 어려웠다. 지역 문화방송 작가들의 경력은 평균 10년 이상. 그러나 4주 내내 방송이 송출되어도 월급으로 따지면 평균 170만원이 되지 않았다. 나도 지역에서 일하는 작가였고 그들이 처한 여건이나 처우가 얼마나 힘든지를 너무나도 잘 알기에 포기할 수가 없었다.
때로는 협박도 하고 때로는 부탁도 하며 15개 방송사와 지난한 교섭을 벌여오다 2025년 5월16일, 마침내 목포문화방송과 첫 협약을 맺었고 이후 같은 해 12월31일 춘천문화방송을 끝으로 전국 지역 문화방송과 첫 교섭을 마무리했다. 교섭을 통해 작가들은 계약서를 체결하고, 결방료를 받게 되었으며, 짧게는 수년 길게는 20년 이상 꿈쩍하지 않았던 원고료도 일정 부분 오르게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해, 서로의 경험을 모으고 기준을 만들면서 이뤄낸 15개 지역사와 맺은 협약. 되돌아보면 완성이라기보다 ‘도달’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이제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지만 우리는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걸었고, 이전에는 없었던 기준을 세웠고, 무엇보다 작가들이 ‘말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쉬운 적은 없었다. 앞으로도 쉽지 않겠지만, 나는 그리고 우리는 계속해서 걸어가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