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구치 지로 | 일본 호세이대 법학과 교수
미국·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 데 대해 전세계의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방미 때, 일본 국민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페르시아만에 자위대 파견을 요청할지에 주목했다. 당시 미국은 일본에 명시적으로 파견 요구를 하지 않았다. 되레 이후 다카이치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위대 파견을 약속하고 싶어 했지만, 측근들의 강력한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다카이치 총리가 해당 기사 내용을 부인하고 있어 진실은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정부 핵심 관계자들이 자위대 파견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인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여기서 쟁점이 되는 것은 일본 헌법 제9조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뒤, 일본에선 미국 중심의 점령군 주도로 새 헌법이 만들어졌다. 핵심은 ‘전쟁을 포기하고 군사력을 보유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9조였다. 이 조항의 원래 의미는 일본이 ‘천황(일왕)제’를 유지하되, 전쟁 이전 ‘대일본 제국’ 때와 달리 국제사회에 군사적 위협이 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 냉전이 시작됐고, 일본은 미국 중심의 군사동맹에 편입됐다. 일본의 안보정책은 새 헌법이 추구하려던 평화주의에서 멀어져갔다. 그나마 이때만 해도 헌법 9조가 무의미하진 않았다. 헌법에 따라 자위대는 오로지 일본을 ‘지키는 목적’으로만 존재하는 것, 전쟁을 위한 파병은 허용되지 않았다. 자민당 정부가 이렇게 헌법을 해석해온 것이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 때 군대를 파견했던 한국과 달리 일본은 미국 통치 아래 있던 오키나와를 빼고 전쟁과 엮이지 않았다. 헌법의 평화주의가 일본을 국제분쟁과 멀어지게 하는 근거로 활용됐다. 이런 의미에서 자민당 정부 역시 평화주의의 혜택을 누린 것이다.
냉전 시기 뒤, 일본에선 헌법 9조의 의미와 유효성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타국에서 침략과 학살이 일어났을 때, 책임자가 명백하고 국제사회가 질서 회복에 나섰는데 일본만 헌법 9조를 ‘방패’ 삼아 관여를 거부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당시 국민적 합의가 형성됐고 자위대의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이 시작됐다. 아울러 중국·러시아가 군사력을 동원해 국제질서를 흔들자, 자민당 정부는 미-일 동맹을 통해 자위대 역할 확대 노선을 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다카이치 총리의 ‘아첨 외교’도 이런 연장선 위에 있다. 미국-이란 전쟁에서 세계 최강국인 미국은 합리성을 결여한 군사력 행사로 전세계에 큰 피해를 주고 있다. 일본 역시 이번 전쟁에 관한 입장을 고민해야 한다. 이때 헌법 9조는 미국의 어리석은 전쟁과 일정 거리를 두는 걸 정당화하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전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세계인들이 새삼 인식하게 될 텐데, 일본에는 ‘군사력은 문제 해결 수단이 아닌 비극을 만드는 것’이라는 일본 헌법의 이념을 호소할 책무가 있다. 물론 이상적 주장만으로는 안 되고,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국가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수단을 재검토해 독자 방위를 유지한다는 게 대전제다. 이를 바탕으로 초강대국의 막무가내 행동에 휘둘릴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는 한국, 동남아 국가,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과 협력이 필요하다. 또 중국과 대화를 지속해 아시아 평화 유지에 대한 의지도 보여줘야 한다.
지난 2월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압승을 거둔 뒤, 국회에서 개헌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자민당이 주장하는 개헌이 단순히 헌법 9조의 ‘평화를 위한 제약’을 없애고 미국과 군사적 일체화를 도모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망국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