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항공유에 붙는 유류할증료를 5월부터 큰 폭 올리기로 했다. 미국 장거리 노선 왕복에 할증료 113달러가 붙는다. 4월(60달러)의 두배, 전쟁 직전(20달러)과 비교하면 다섯배 이상 높아졌다. 정부가 정한 상한선(1~33단계) 중 최고 단계로의 인상인데, 항공사들은 더 올려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가까운 일본행 할증료는 기본 운임보다 높은 경우까지 생길 수 있다니, 이쯤 되면 비행기표를 산 건지, 기름값을 치른 건지 헷갈릴 정도다.
항공유는 자동차보다 훨씬 극한 환경에서 버텨야 한다. 기온이 섭씨 영하 40~50도인 고도 10㎞ 상공에서 얼지 않도록 특수 정제 과정을 거친다. 수분과 부식을 막고 정전기로 인한 폭발을 방지하기 위해 각종 첨가물과 배합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원유값이 오르면 정제 비용이 비싼 항공유는 가장 먼저, 가장 크게 값이 뛴다. 현재 원유가(배럴당 100달러 기준) 대비 약 30~40달러 비싸다. 항공유는 국제 시장에서 전량 달러로 거래된다. 지금처럼 1500원대 고환율 상황에선 국내 항공사 구매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역설적이게도 한국은 전세계에서 항공유를 가장 잘 만들고,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 중 하나다. 전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최첨단의 대규모 정제 설비를 갖춘 덕분이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 공군기의 주요 연료로도 사용된다. 한 해(2025년 기준)에만 80억달러(약 12조원)를 수출한다. 전체 석유제품 수출액의 18%를 차지하는 효자 상품이다.
한국산 항공유는 미국 서부,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싱가포르 등이 주요 고객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 산유국이지만 정제 시설은 주로 동부와 멕시코만 연안에 몰려 있다. 동부의 기름을 서부로 보내는 것보다 한국에서 배로 싣고 오는 게 싸고 빠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채산성 문제로 자국 내 정유 공장들을 대부분 폐쇄했다. 수입 의존도가 90%를 넘는데, 1~2위 수입국이 한국이다. 일본은 최근 엔저로 관광객이 몰리는데 항공유 부족으로 증편이 여의치 않자 한국산 수입량 확보에 필사적이라고 한다. 이 정도면 한국도 태평양 지역의 ‘항공유 허브’로서 나름의 지정학적 무기를 쥐고 있달까.
전쟁 이후, 각국이 에너지 비축과 수출 통제를 강화하고 대체 공급선을 찾느라 여념이 없다. 전세계 공급망은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있다. 각자도생에 연연하다 신뢰를 잃는 건 하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