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논설위원1805년 12월,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은 오늘날 체코 지역인 아우스터리츠에서 전투를 치렀다. 아우스터리츠 전투다. 이 전투는 ‘세 황제의 전투’로 불린다. 프랑스 제1제국의 나폴레옹,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1세가 모두 참전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은 기만 전술을 펼쳤다. 일부러 전력을 약화된 것처럼 보이게 해 적을 유인했다.오스트리아-러시아 연합군은 대패했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군사적 천재성을 만천하에 입증했다. 프랑스는 유럽의 패권국으로 급부상했다.
나폴레옹은 이 승리를 ‘영원히 기억될 기념물’로 남기고자 했다. 그는 개선문 건립을 명령했다. 그러나 공사는 순탄치 않았다. 나폴레옹의 몰락과 정권 교체 속에서 공사는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다가 1836년이 되어서야 완공됐다. 파리 중심가에 있는 ‘에투알(Etoile·별) 개선문’이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자신의 영광을 기리는 이 문을 생전에 보지 못했다.
그로부터 거의 두 세기가 흐른 지금, ‘또 하나의 개선문’이 선보일 예정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진하는 미국판 개선문이다. 미국 건국 250주년이 명분이다. 개선문이 들어설 위치는 워싱턴DC 링컨 기념관과 알링턴 국립묘지 사이의 교통섬인 ‘메모리얼 서클’이다.
당초 이 개선문은 미국 건국 연도(1776년)를 상징해 76피트(약 23m)로 높이로 설계됐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프랑스 에투알 개선문(약 164피트·50m)보다 더 높아야 한다고 주장, 결국 건국 250주년을 기념하는 250피트(약 76m) 높이로 확정됐다. 주변 링컨기념관 높이의 두 배가 넘는다.
디자인도 한층 화려해졌다. 개선문 상부에는 자유의 여신상처럼 횃불을 들고 관을 쓴 날개 달린 인물상이 자리하며, 양옆에는 날개를 펼친 두 마리 독수리 조각상이 배치된다. 하단부에는 네 마리의 사자상이 개선문을 지키는 형상으로 놓인다. 모든 조각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선호하는 금박으로 마감된다.
개선문 양쪽 상단에는 ‘신 아래 하나의 나라(One Nation Under God)’, ‘모두를 위한 자유와 정의(Liberty and Justice for All)’라는 문구가 각각 새겨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아름답고 환상적인 개선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반대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개선문 건립을 제안했던 건축 평론가 케이츠비 리는 기고를 통해 “개선문이 60피트(약 18m)를 넘지 않는 축제형 구조물이어야 하며, 현재 구상처럼 과도한 규모는 부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베트남전 참전용사 단체들은 개선문이 링컨 기념관과 알링턴 국립묘지 사이의 조망을 가로막을 것이라며 건설 중단 소송을 제기했다. 불투명한 재원 조달까지 겹치며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외신의 시선도 싸늘하다. 프랑스 르몽드는 ‘미국식 거대주의의 산물’이라고 비판했고, 영국 BBC는 “지나치게 과시적인데다 워싱턴의 역사적 경관을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개선문’은 그저 과시와 집착의 산물로 비춰진다. 가뜩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가 흔들리는 와중에, 뜬금없이 초대형 개선문을 짓겠다는 발상 자체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이다. 무엇을 기념할 것인에 대한 고민도 보이지 않는다.
잘못 세워진 개선문은 조롱거리만 될 뿐이다. 미국의 개선문은 영광이 아니라 ‘집칙과 과욕’만 남길 것이다. 지금 트럼프에 필요한 것은 건축이 아니라 ‘성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