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희 논설위원
2016년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하고 싸워왔던 김현진씨가 세상을 등졌다. 김씨의 변호를 맡았던 이은의 변호사는 지난 17일 페이스북에 “짧았지만 빛나고 뜨거웠던 98년생 김현진님의 작별을 전한다”며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알렸다.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른다. 다만, 과거를 잊고 살려 했으나 너무 힘에 부쳤을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 2023년 11월 가해자인 시인 박진성씨가 실형을 선고받은 뒤 경향신문과 인터뷰했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시인을 꿈꿨던 김씨는 시 강습으로 알게 된 박씨로부터 여러 차례 언어 성폭력을 당했다. 당시 김씨는 17세 고등학생이었다. “거리를 걸으며 손잡자” “애인 안 받아주면 자살한다”, 어린 학생에게 박씨가 보낸 메시지는 무도한 것이었다. 김씨는 문단 내 성폭력 미투 운동이 일어나던 2016년 10월 트위터에 ‘박씨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박씨는 사실이 폭로되자 반성은커녕 ‘무고’라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소셜미디어에 “무고는 중대 범죄” “실명을 폭로하지 않는 조건으로 김씨가 돈을 요구했다” 등의 글을 게시하고 ‘가짜 미투’라는 오명을 뒤집어씌웠다. 김씨의 주민등록증과 실명을 온라인에 공개하기도 했다. ‘98년생 김현진’이라는 호칭은 고인을 조롱하는 혐오의 상징처럼 소비됐다.
‘유명 시인’의 힘은 셌다. 가해자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할 때, 문단과 지식인 사회는 가해자의 서사에 동조했다. 박씨가 자살을 암시하고 잠적할 때마다 유명인들이 그를 ‘무고 희생자’로 감쌌다. 가해자가 2차 가해를 지속할 수 있게 한 배경이었다.
김씨는 장기간 2차 가해에 시달리다 박씨를 고소했고, 2024년 징역 1년8개월의 실형이 확정됐다. ‘98년생 김현진’이 7년을 버틴 끝에야, 자신을 사회적 감옥에서 풀어달라고 호소하던 ‘78년생 박진성’이 수감된 것이다.
김씨는 마지막까지도 수많은 ‘김현진들’과의 연대를 멈추지 않았다. 이 변호사는 “그가 낸 용기에 아주 많은 여성들이 함께 손잡고 직진해 사필귀정을 일구었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에 그의 영혼은 만신창이가 됐던 모양이다. 그 시간이 미안하다. 그가 꿈꿨던 ‘빛나고 뜨거운 삶’은 우리 사회가 갚아야 할 부채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