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민스키의 <이향인> 출간…참여자보단 타고난 관찰자로 새롭게 부각
“비소속성은 결함이 아니다”…자책하던 사람들에 위로의 메시지 건네

“사람들은 대부분 저를 보고 ‘E’(외향적)라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느끼지 않아요. MBTI 검사를 해봤더니, ‘E’와 ‘I’(내향적)가 동점이더라고요. 제 성격 특성을 설명하려면 늘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었어요.”
미취학 아이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해온 A씨(40)가 자기 성격 특성에 대해 말했다. A씨는 자녀 또래 아이들의 부모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지만, 친목 모임에 나갈 필요는 못 느낀다고 했다. 그는 인터넷 ‘맘카페’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퍼지는 유행이나 육아 정보에도 둔감한 편이다. 회사에선 프레젠테이션이나 행사 사회 같은 업무를 맡아 잘 해내지만, 회사 사람들과 따로 모일 만큼 소속감을 느끼진 않는다. A씨는 “엄마는 저에게 ‘사람에게 관심이 없어 냉정하다’고 하는데, 정말 친하고 가깝고 편한 가족이나 친구들 사이에서는 강한 소속감을 느낀다”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는 게 힘들고, 그 안에서 주고받는 얘기에서 의미를 못 찾을 뿐”이라고 했다.
대학 때부터 스키 동아리 활동을 해온 B씨(42)는 동아리 모임에 잘 안 가지만 역할을 맡으면 사양하지 않고 모임에도 잘 참석한다고 했다. B씨는 “저를 포함해 4명 이상 만나는 건 에너지를 많이 쏟아야 해서 힘들고, 피상적인 정보를 주고받는 대화를 하는 것도 힘들다”고 했다. 어떤 모임에서든 ‘관찰자’처럼 있는 걸 선호한다는 B씨는 유행을 쉽게 따르지는 않지만 “세상일에는 관심이 많아서 유행이 무엇인지, 사람들이 왜 그런 걸 좋아하는지 궁금해하는 편”이라고 했다.
현대인들은 흔히 카를 융이 제시한 외향인(Extrovert·외부에서 에너지를 공급받음)과 내향인(Introvert·내부에서 에너지를 공급받음) 개념으로 사람 성격을 유형화한다. 미국의 임상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라미 카민스키는 에너지를 받는 방향이 밖으로도 안으로도 향하지 않는 사람, ‘이향인(otrovert)’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A씨와 B씨의 성격 특성은 이향인에 가깝다.
지난 3월 25일 국내 번역 출간된 책 <이향인>(21세기북스)은 스스로 이향인이라고 정의한 카민스키가 40년간 진료실 안팎에서 만난 이향인들의 특성을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이 주요 서점 인문분야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고, 유튜브에서도 이향인 관련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이향인 개념을 접한 사람들은 이향인이 특별한 존재라서 주목한다기보다, 자기 자신과 타인을 설명하고 이해할 하나의 언어가 생긴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카민스키에 따르면 이향인은 인간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크게 겪지는 않는다. 공감 능력이나 친화력도 좋다. 그런데 공동체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 ‘비소속감’이 이향인을 설명하는 가장 주요한 키워드다. 공동체 안에서 역할이 주어지면 곧잘 수행하지만, ‘스몰토크’를 하며 친해지는 대규모 모임보다는 일대일이나 소수와의 관계를 더 잘 이끌어간다. 이향인들은 참여자보다는 관찰자의 위치에 있길 선호하고, 관행을 따르지 않아서 대중적 유행에 관심이 별로 없다. 자신을 돌보는 일이 중요하지만 자기 생일을 챙기는 것은 중요하지 않게 여긴다. 집단적 사고보다는 독창적인 사고를 하는 경향이 있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것은 내향인과 비슷하다. 그런데 혼자 있을 때의 고독이 내향인에게는 타인으로부터 분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이향인은 자기 자신과의 강한 결속을 의미한다. 또 이향인은 주변 환경에 관심이 높으면서 일대일 관계에서는 소진되는 게 적은 특성이 내향인과 다르다.
이향인은 집단에 대한 ‘온순한 저항’을 통해 내적 자유로움을 확보한다. 모임에 참석했다가 조용히 자리를 뜬다거나, 모임에서 관망하는 태도 등을 보인다. 이런 특성 때문에 이향인은 “냉정하다”, “조직에 어울리지 못한다”, “잘난 체한다” 등의 부정적 평가를 받기도 한다.
카민스키는 이향인 특성 일반을 이야기하지만, 개인주의가 강한 미국과 집단문화가 큰 한국에서 이향인의 모습은 조금 다를 수 있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아주대 교수는 한국적인 상황에서의 이향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집회할 때 앞에 서는 사람, 뒤에 서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그걸 구경하는 사람이 꼭 있잖아요.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집회에 동의하면서 관찰하는 방식으로 참여하는 거예요. 오히려 이런 사람들이 집회가 추구하는, 또는 집회의 결과로 나온 변화를 더 오래 유지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어요. 프로야구가 흥행하는데 기여하는 게 야구선수만 있는 게 아니라 관객이 있잖아요. 어떤 조직에 자기 모든 것을 투영하기에는 자기 생활방식과 맞지 않지만, 그림의 배경처럼 있으면서 자기 관심을 나눠주는 사람들이 이향인에 가깝다고 할 수 있죠. 이들이 중심에 있지는 않지만, 공동체의 변화나 유지에 필요한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봐야죠.”
내향인이 사회화를 통해 외향인의 행동 특성을 보이거나, 외향인이 사회에서 부정적 경험을 축적한 후 내향인 행동 특성을 보이는 경우를 이향인이라고 하는 건 아닐까. 김 교수는 “타고난 성격 특성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며 “이향인은 ‘타고난 관찰자’”라고 말했다. 이어 “이향인인 아이가 새로운 곳에 이사한다면, 집에만 있지도 않고 일단 놀이터에 간 다음, 그렇다고 바로 친구들에게 인사를 건네지도 않고 주위를 돌며 슬슬 관찰하는 모습을 보인다”며 “관찰 능력이 좋다 보니 경험이 쌓일수록 외향인과 내향인의 행동적 특성을 관찰하고 학습해서 적정한 비율로 자기화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카민스키는 이향인들이 자신과 깊고 충만한 관계를 맺는 법을 알고 있는 데다 관찰자이자 공감 능력이 높기 때문에 고독과 분열로 가득 찬 현대사회에서 오히려 잘 살아가고 다른 이들에게 방향을 제시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다만 이향인인 아이가 이런 특성을 결함으로 느끼는 가정에서 자라거나 사회 환경으로부터 압박을 받는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카민스키는 이향인 아이들을 다른 아이들과 비슷하게 고치려고 할 때 정서적으로 패배감을 느끼거나 무기력을 학습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A씨와 B씨는 <이향인>에 수록된 ‘이향인 테스트’에서 이향인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았다. A씨는 이향인 특성을 알고 “스스로 성격에 대해 사회가 정의하는 부분에 들어맞지 않아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었는데 이해가 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B씨는 “‘인간은 혼자 못 살아’ 하면서 외향적인 성격을 최고라고 여기는 사회에서 ‘만들어진 E’들은 누구인지 설명해주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 4월 3일 유튜브 ‘책과삶’ 계정에 김경일 교수와 김재원 전 아나운서가 <이향인> 책을 토대로 이향인에 대해 소개하는 콘텐츠가 올라왔다. 조회수 85만여회에, 댓글 1300여개가 달렸다. 앞서 뇌과학자 장동선 궁금한뇌연구소 대표가 운영하는 유튜브 계정에 지난 3월 12일 올라온 <이향인> 책 관련 콘텐츠도 조회수 34만여회에 댓글 약 800개가 달렸다.
이들 콘텐츠에는 “공감되는 내용이 굉장히 많아서 신기했다. 일대일(관계)에 강해서 완전 외향이라는 오해 엄청 많이 받기도 하고 어딘가 소속되고 싶다는 욕구도 없어서 스스로 공동체 의식이 결여된 건가 걱정한 적도 있다”(@gdf*******), “내 생일보다 남의 생일 챙기는 거 좋아하고, 뒤에서 조용히 서포트 하는 거 좋고. 마치 저의 정체성을 찾은 것 같아 기뻤다. 앞으로 저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된 것 같다”(@sun***********) 등 이향인 특성에 공감하는 내용의 댓글이 많이 달렸다.

출판사 21세기북스의 인문서가팀 한이슬 매니저는 “<이향인>을 읽은 독자들의 반응을 보면, 그동안 ‘내가 이상한 건가’, ‘왜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묘하게 불편함을 느끼는 걸까’ 하며 오랫동안 자책해온 독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는 언어를 얻는 ‘명명(命名)의 해방감’을 느꼈다고 말한다”고 했다. 한 매니저는 “‘비소속성은 결함이 아니다’라는 책의 메시지가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한국 독자들에게 위로를 전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온라인서점 예스24에 따르면 <이향인>은 4월 둘째 주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7위, 인문분야 2위에 올랐다. 4월 셋째 주까지 보면 종합 순위 20위권, 인문분야 5위권 내 자리한다. 교보문고에서도 비슷한 순위를 기록 중이다. 저자가 국내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고, 이향인 개념도 생소하다는 점에서 <이향인>은 이례적 관심을 받고 있다. 예스24 관계자는 “이 책의 인기는 자신의 성향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려는 독자들의 니즈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며 “MBTI 검사(16가지 성격 유형 검사), HSP 테스트(얼마나 감각·정서 자극에 민감한지 평가하는 도구) 등 다양한 성격·성향 테스트가 확산하면서 ‘나를 알고 나에게 맞게 살아가려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관상, 혈액형, 별자리 등으로 성격·성향 특성을 짐작하는 오랜 유행부터 최근의 MBTI 검사나 HSP 테스트, ‘에겐·테토’ 구분까지 사람들은 성격·성향 유형을 파악하는 데 관심이 많다. 이를 두고 과학적 근거 여부, 마케팅 수단으로 남용되는 문제 등에 대한 비판도 공존한다. 사람들은 이런 테스트를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도구로서 쓴다. ‘이향인’이라는 새로운 개념에 대한 관심도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한이슬 매니저는 “출판계에서는 과거 ‘위로’와 ‘힐링’에 집중한 심리서적이 관심을 모았다가 최근에는 자신의 심리적 기제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정의, 실질적 삶의 태도를 변화시키려는 방향으로 독자들의 관심이 이동하고 있다”며 “코로나19 이후 고독, 관계 피로, 번아웃 담론이 지속되면서 자기 이해를 다룬 책들에 대한 수요가 구조적으로 높아진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고 했다. 김경일 교수는 “문화심리학자들은 한국인 특성으로 ‘세상의 중심은 나’라는 ‘주체성’이 강하다고 말한다. 마치 영화가 ‘주인공이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것’으로 전개되는 것처럼, 자기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고 싶어하는 욕구가 크기 때문에 성격 유형에 관해서도 관심이 많은 것”이라고 했다.
사람을 외향인, 내향인 등 2분법으로 나눌 수 없듯이 이향인을 추가해 3분법으로 딱 자를 수도 없다. 김 교수는 “이향인이라는 개념도 사람을 이해하는 편의를 위한 것일 뿐”이라며 “이향적 특성이 상대적으로 강하다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향적인 특성을 지닌 사람들이 그동안 자신과 맞지 않는 (집단생활) 방법이 강요돼 고통스러웠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이 개념을 반기는 경우가 많다”며 “다만 ‘내가 그동안 힘든 이유가 이거였어’ 하고 그치는 게 아니라 자기 성격 특성으로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는 좋은 방법을 고민하고, 그로써 자기 자신도 편해지면 더 좋을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