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들]넘쳐나는 봄을 나눌 때 비로소 완성되는 도시농부의 시간―인천 계양 편

남쪽 해가 아파트에 가려진 음지 밭. 겨울 같은 봄 추위에도 제일 먼저 올라오는 녀석이 있으니, 바로 쑥과 미나리다. 자신만의 자연농을 정립한 조한규 선생은 쑥과 미나리, 맥류, 클로버처럼 추위에 잘 견디는 식물은 열이 높고, 저온에서도 뿌리의 활동이 활발해 냉해를 입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풀들을 흑설탕에 절이면 ‘천혜녹즙’이 되는데, 작물이 약해졌을 때 물에 희석해 영양제처럼 쓰면 병에 강한 식물을 기를 수 있다고 안내했다.
천혜녹즙까지 만들 열정은 없지만 올해는 평소보다 4월이 추워 별안간 쑥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밭에서 한참을 쪼그려 앉아 어린 쑥을 골라 캐내 코디얼(설탕·물과 함께 끓여 여과한 일종의 시럽)을 만들었다. 쑥 코디얼을 만들 때는 쑥 특유의 ‘흙맛’이 뽑히기 쉽다. 그래서 꼭 불 조절을 잘해야 한다. 물이 끓을 듯 말 듯 기포가 하나둘 ‘뽀글’ 하고 올라오는 딱 그 시점에서 더 나아가서는 안 된다. 그렇게 10분을 우려내 불을 끄고 설탕을 넣어 녹인 뒤 레몬즙을 조금 넣어 마무리하면 향긋한 쑥 향만 남길 수 있다.
이 코디얼을 콤부차에 발효해 농부시장 ‘마르쉐’에 들고 가 만나는 사람마다 나눠줬더니, 마시는 사람마다 술이라도 한잔 마신 양 ‘기분 좋아지는 맛’이라며 웃음을 날려준다. 요리사들에게도 겁 없이 한 잔씩 턱턱 내주자 맛있다는 덕담이 돌아온다.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모두 행복해지는 마법이다.
쑥이 맛있는 시기가 지남과 동시에 부추와 차이브가 앞다퉈 기세를 자랑한다. 차이브는 쪽파와 견주는 식물인데 줄기가 더 가늘다. 그리고 보라색 꽃이 필 뿐인데 쪽파보다는 관상용 화초처럼 더 예뻐 보인다는 매력이 있다. 예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한참 동안 바라만 봤는데 추운 4월이니까 차이브를 몽땅 베어 집으로 돌아간다.
차이브는 쪽파와 같은 구근식물이지만 구근을 뽑아서 휴면할 필요 없이 가끔 포기나눔만 하면 대대손손 번져나가니 편리하면서도 기쁨을 주는 식물이다. 쪽파만큼 쓰임이 많지 않아 고민이었는데 몽딴 벤 것이 300g쯤은 되니, 차이브버터를 만들었다. 버터 100g당 다진 차이브 12g의 비율로 만들어 그동안 신세 진 사람들을 찾아 손에 쥐여준다.
그러고도 200g쯤 남은 다진 차이브는 식품용 건조기에 돌려 다시 소분했다. 차이브는 허브이기 때문에 고명 정도로 쓰이니, 100g만 있어도 꽤 많은 양이다. 도시농부 12년차, 농사의 고수는 아니지만 작물을 잘 갈무리해놓고 아끼면 결국 한참 뒤에 ‘발굴’돼 퇴비통으로 돌아간다는 깨달음 정도는 있다. 유리병에 잘 넣어 포장해 요리사 친구에게 보냈다. 이 정도면 50인분 정도의 고명은 될 테니, 최대한 많은 이를 먹이는 조력자가 되기를 선택했다.
우리 밭의 미나리와 차이브는 3년 전 경기도 고양에서 농사짓는 ‘초록 손가락’ 안성선 농민에게 모종으로 선물받아 심은 것들이다. 3년째 미나리와 차이브로 봄을 맞이하다보니 나도 앞으로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꼭 다년생 봄 작물을 선물해야지 생각한다. 매년 봄이 되면 잊지 말고 내 생각을 해달라고 누구에게 ‘플러팅’해볼까.
글·사진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
 
*농사꾼들: 농사를 크게 작게 지으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지역이 다른 네 명의 필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