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순택의 풍경동물]
갈매기는 정녕 자유로울까.
바다 하면 갈매기, 갈매기 하면 자유라는 공식은 언제 어떤 연유로 생겨났을까.
1970년 미국에서 발표된 리처드 바크의 소설 ‘갈매기의 꿈’이 그런 공식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 출간 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판매기록을 뛰어넘고, 지금까지 전세계 40여 개 언어로 번역돼 4천만 부 이상 팔렸다고 하니 그럴 법하지 않은가. 때는 바야흐로 히피문화가 미국 젊은이들을 뒤흔들던 시기였다. 히피 정신은 곧 자유.
조너선 리빙스턴은 값지고 의미 있는 삶을 위해 평범한 삶을 거부한다. 돌아온 건 따돌림과 추방. 그러나 진정 소중한 것은 타협이나 절충이 아닌, 부단한 꿈의 추구였다. 조너선은 엄마에게 항변한다. “나는 하늘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알고 싶을 뿐이에요. 그게 다예요!” 이렇게 외치는 조너선은 사람이 아니라 갈매기다. 완벽한 비행을 위해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인다. 그 안에서 자유의 참뜻을 깨닫는다. 지금도 사랑받는 한마디,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
19세기 러시아문학의 거장 안톤 체호프의 희곡 ‘갈매기’에서도 열정과 사랑, 자유와 속박은 중요한 열쇳말이다. 자유롭게 날아가는 갈매기와 죽어(여)버린 갈매기가 소품이자 상징으로 등장한다. 젊은 극작가 트레플레프, 그의 엄마이자 유명 배우 아르카디나, 트레플레프가 사랑하는 신인 여배우 니나, 아르카디나의 애인이자 유명 소설가 트리고린, 트레플레프를 짝사랑하는 마샤와 여러 인물이 얽히고설키는 사랑과 질투 속에서 파멸을 향해 달려간다.(러시아문학은 달려가며 읽어야지 쉬엄쉬엄 읽으면 곤란하다. 그랬다간 발음도 어려운 등장인물들 이름 탓에 몇 번이고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를 반복해야 하니까.)
유명 배우인 엄마는 아들의 신작을 비웃고, 사랑하는 니나는 엄마의 애인이자 유명 소설가인 트리고린에게 빠져든다. 니나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트리고린에게 묻는다. “유명하다는 건 어떤 느낌인가요.” 질투심에 사로잡힌 트레플레프는 자유롭게 날아가던 갈매기를 쏘아 죽인다. 사체를 니나에게 건네며 사랑을 갈구한다. 죽은 갈매기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니나는 트리고린에게로 떠나고, 상처받고, 결국 돌아온다. 둘은 재회하지만 다시 사랑하기엔 늦었다. 트레플레프는 갈매기를 쏘았던 총으로 자신을 쏜다. 박제된 갈매기가 트리고린에게 전달된다. 삶이란, 19세기 러시아에서도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이렇게나 아프고 지리멸렬하다.
바크의 갈매기가 자유와 꿈을 향해 날았다면, 체호프의 갈매기는 좌절과 파멸을 향해 날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갈매기는 오늘도 창공을 난다. 닭만큼 큰데도, 무게는 훨씬 가볍다. 나는 새와 날지 못하는 새 사이에 몸무게라는 깊은 강이 흐른다. 수시로 똥을 싸는데, 심지어 날면서 싸고, 먹으면서도 싼다. 똥오줌 못 가리는 버릇은 닭과 똑같다. 날아가는 녀석들 아래 있다가 똥벼락을 맞으면 생선 비린내가 진동한다. 삶만큼이나 비릿하다.
사진·글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