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라는 동굴을 박차고 나와 마주한, 눈이 시릴 만큼 반짝이는 찰나의 행복【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멎지 않는다는 뜻의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라는 말이 있습니다. 본래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효도를 다하지 못한 슬픔을 이르는 '풍수지탄(風樹之嘆)'의 구절에서 나온 말이지요. 하지만 요즘 제 일상을 설명하는 가장 정직하고도 확실한 은유가 담긴 문장이 아닌가 생각해 보곤 합니다. 저는 그저 평온하게 일상의 궤도 안에 머물고 싶었으나, '상황'이라는 이름의 바람은 저를 잠시도 가만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난 한 달은 제게 그 어느 때보다 거센 바람의 계절이었습니다. 지구 반대편의 전쟁 소식은 건조한 활자를 넘어 제가 발 딛고 선 일상의 한복판으로 폭탄같이 날아들었습니다. 평소 제가 지키려고 애쓰던 루틴은 산산조각이 났고,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은 업무를 시시각각 숨 가쁘게 몰아세웠습니다. 가슴이 갑갑해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머릿속은 압력밥솥 같이 뜨거운 증기로 가득 차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달아올랐고, 금요일 밤늦은 야근을 마치고 사무실 불을 끄며 나설 때 제 상태는 그야말로 '완전한 이그조스티드(Exhausted, 기진맥진한)'였습니다. 퇴근길, 제 마음속에는 오직 하나의 간절한 소망뿐이었습니다.
'적어도 토요일 아침 만큼은 세상이 나를 잊어주었으면.'
세상이 무너져도 늦잠을 자야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침대라는 이름의 요새 속으로 깊이 침잠했습니다. 시끄러운 세상과 떨어져 완벽히 고요한 나만의 동굴에 숨어 있고 싶었지요. 하지만 인생이라는 시나리오는 언제나 가장 취약한 순간에 뜻밖의 전개를 준비해두곤 합니다.
토요일 아침, 거실 너머로 고3 작은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엄마, 나 강남 학원까지 좀 태워다 줘."
분.명.히. 작은아이는 제가 아닌 아내를 호출했습니다. 천만다행이라 생각하며 이불을 쑥 끌어올립니다. 입시 성공의 3요소 중 하나가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아빠의 무관심'이라 했던가요. 저는 세 번째 요소를 가장 충실히 이행하는 아빠가 되고 싶었습니다. '입시는 엄마와 아이의 영역이지, 아빠는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이 도와주는 거야'라고 합리화하며 다시 잠으로 빠져드려던 찰나였습니다.
"여보, 같이 가자. 바람도 좀 쐴 겸. 혼자 다녀오기엔 돌아오는 길이 너무 심심할 것 같아."
저희 집안 '최고 존엄(最高尊嚴)'님의 '권유'—라고 쓰고 '명령'이라 읽습니다—를 무시하고 무사를 바랄 수는 없습니다. 아내 말을 잘 들어야 늙어서 밥이라도 굶지 않는다는 말은 인생의 금과옥조(金科玉條)니까요. 비록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저는 토요일 아침의 평온함과 노후의 평안함을 맞바꾸기로 합니다. 지극히 합리적이고 합당한, 그래야만 하는 복종입니다.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조수석에 엉덩이를 걸치고 안전벨트를 맬 때까지만 해도 제 몸과 마음은 막 꺼낸 젖은 이불같이 축축하고 무거웠습니다. 의식은 여전히 침대 위를 부유하고 있었고, 눈꺼풀은 중력의 법칙에 충실했습니다. 그런데 차가 지하 주차장의 어스름을 벗어나 지상으로 나오는 순간, 저는 어떤 이질적인 감각에 눈을 떴습니다.
엇! 날씨가... 지독할 정도로 좋았습니다!
 토요일 아침, '최고 존엄'의 특명으로 나선 길에서 마주한 지독하게 눈부신 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