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부 차장

금융시장이 기형적인 ‘역설적 상황’에 빠졌다. 금융 당국이 가계부채 증가율을 예년보다 현저히 낮은 1.5%로 묶어버리는 방안을 발표한 이후부터다. ‘부동산 투기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감안하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80%까지 낮추겠다는 목표는 명분이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는 ‘비대칭성’이 실수요자 등 평범한 서민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시중은행의 영업점 풍경은 극명하게 갈린다. 자금 여력이 충분한 대기업이나 우량 중소기업에게는 저금리 대출을 제안하며 ‘모시기 경쟁’이 분주하다. 가계대출 총량 규제로 새로운 수익원 모색이 시급한 은행들의 고육책이다.
반면 가계대출은 한마디로 ‘빙하기’에 가깝다. 지난 17일부터 시작된 다주택자 만기연장 금지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1.5% 가이드라인도 실제로는 1% 내외로 더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다. 5대 시중은행(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목표가 평균 1% 정도로 가정하면 1년간 최대로 늘릴 수 있는 규모는 6조 4493억 원에 불과하다. 한 달 5374억 원 꼴로 5개 은행 평균으로 1000억 원 남짓에 불과하다. 사실상 ‘문턱 통제’에 가깝다.
그 결과 기준금리 동결 상황 속에서도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 상단은 연 7%를 돌파한 상태다. 기업에게는 ‘봄바람’이 불지만 서민들에게는 ‘겨울바람’이 아직 불고 있는 금리의 역설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배분 방식도 문제다. 은행이 월별·분기별로 한도를 까다롭게 관리하면 이는 결국 고신용자 위주로 대출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당장 생계자금이 급한 서민이나 내 집 마련을 꿈꿨던 실수요자들의 금융 접근성이 크게 악화되는 것이다. 이미 ‘10·15부동산대책’으로 주담대 한도가 줄어든 상황에 대출까지 사실상 ‘선착순’에 가깝게 이뤄질 경우 저신용자 실수요자들은 대부업이나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릴 우려도 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터넷전문은행들에서는 이른바 대출 ‘풍선 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이마저도 고신용자 중심으로 정책 취지와 거리가 멀다.
부동산에 쏠린 과도한 유동성을 회수하고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추구하는 것은 옳은 방향이다. 하지만 정책의 정당성이 수단의 가혹함에 앞서서는 안 될 것이다. 수치 맞추기식 규제는 결국 가장 약한 서민들부터 피해를 입는 구조를 낳기 때문이다.
정부와 금융사들은 ‘숫자’에 집중하기보다는 7%대 고금리를 감당해야 하는 차주들의 ‘비명’에 귀를 기울어야 할 것이다. 규제에 있어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입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내 집 마련을 위한 ‘사다리’가 되어야 하는 금융이 기업·자산가·고신용자에 집중되는 구조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실수요자를 ‘절벽’에서 끌어올릴 정교한 보완책을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