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진 편집부장
글로벌특별법 이달 초 또 좌절
대통령 말 한마디에 원점으로
세계 각국, 중앙집권 탈피 노력
한국은 세계 흐름에서 역주행
중앙만 바라보는 기형적 구조서
실질적 지방자치 법안에 초점을2년 전 다뤘던 주제를, 지금 또 다룰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부산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이하 글로벌특별법)’ 얘기다.
지난달 박형준 부산시장의 삭발 투쟁과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의 등장 이후 하루 만에 국회 행안위 법안소위를 통과할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다. ‘공은 내 것’이라던 정치인들의 발언은 기분 좋게 묻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은 높았고, ‘숙려’라는 이름의 방관은 길었다. 이달 초 글로벌특별법 통과는 그렇게 또 좌절됐다. 여야가 합의한 법이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으로 올스톱됐다. 이 대통령이 글로벌특별법을 두고 ‘타 지역과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포퓰리즘적’ 입법 사례로 거론한 것은 지방자치의 본질을 오독한 결과다. 지역균형발전은 모든 지역에 똑같은 양의 사탕을 나눠주는 산술적 평등이 아니다. 각 지역이 가진 고유의 경쟁력을 극대화해 국가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전략적 선택이어야 한다.
여야가 뜻을 모은 글로벌특별법은 단순히 지역에 건물 몇 채 더 짓겠다는 개발 사업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짓누르는 수도권 일극주의에 균열을 내고, 지역이 스스로 생존 전략을 짤 수 있게 해 달라는 ‘주권 선언’에 가깝다. 부산이 ‘글로벌 허브’라는 이름 아래 요구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라 동남권 경제축을 살려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국가적 동맥경화를 뚫어내겠다는 고육지책이란 말이다.
사실 글로벌특별법은 당초 ‘~해야 한다’는 강행 규정으로 설계됐던 핵심 조항들이 21대 국회 폐기 후 22대 개원과 동시에 재발의를 앞두고 중앙부처와의 협의 과정에서 ‘~할 수 있다’는 임의 규정으로 후퇴하면서 지역의 거센 반발을 낳은 바 있다. 재정 투입이 전제되지 않은 ‘허울뿐인 껍데기’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하지만 지역은 내심 기대했다. 글로벌특별법을 통해 국제 물류·금융 중심의 자유 비즈니스 도시로 육성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라도 마련되면 부산도 또하나의 글로벌 경제축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껍데기’ 법안이 2년간 표류할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최근 박 시장과 박완수 경남도지사가 추진하는 행정통합 역시 정부의 ‘5극 3특’과 다른 것 같아도 결국 궤를 같이 한다. 정부의 ‘5극 3특’ 밑그림 위에 부산·경남의 행정통합이라는 집을 지어 실질적 ‘지방 자치’를 이끌어내자는 것이다.
세계 여러 나라는 이미 지역 불균형의 위험을 경험하고 대안을 마련해 체질을 개선하고 있다. 프랑스는 1982년 ‘지방자치단체의 자유와 권리에 관한 법’과 이듬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지방자치단체 간 권한배분법’을 제정해 각 지방에 재정·교육·도시계획 권한을 이양해 독립적인 산업 클러스터 구축에 성공했다. 독일 역시 연방기본법에 근거해 동등한 생활 조건 조성을 목표로 한 재정조정제도를 마련한 데 이어 7년간 논의 끝에 2020년 새로운 재정조정제도를 도입하는 등 지역 간 재정 운용을 형평성 있게 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다. 영국의 행보도 빼놓을 수 없다. 런던 중심 국가였던 영국도 2014년 그레이터맨체스터 권한 이양 협정을 통해 그레이터 맨체스터에 보건·복지 예산 집행권을 완전히 넘겼다. 이후 그레이터맨체스터내의 불평등이 잉글랜드의 나머지 지역에 비해 줄어들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현실은 이 같은 세계의 흐름에서 역주행하고 있다. 수도권이 모든 자원을 블랙홀처럼 흡수하고 있는 와중에도 정부는 여전히 중앙 승인을 전제로 한 ‘무늬만 특별법’을 내민다. 정부가 “해주면 좋고, 안 해줘도 그만”이라는 식의 안일한 태도로 지방의 절규를 무시하는 사이 부산의 시계는 멈췄다.
글로벌특별법을 비롯해 지역균형발전을 토대로 한 여러 법안을 요구하는 부산의 외침은 지역 이기주의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지역의 사활이 걸린 가덕신공항도, 북극항로 개척도 중앙의 입만 바라봐야 하는 기형적인 구조를 바꾸자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세계 여러 국가들이 수도 중심 체제에서 벗어나 지역을 살려냈듯 우리에게도 결단이 필요한 때가 왔다는 ‘알람’이기도 하다. 진정한 지방자치는 중앙이 배포하는 예산 리스트가 아니라 지역이 스스로 법과 제도를 설계할 수 있는 통로를 여는 것에서 비롯된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 법안들이 선거용 ‘표심 잡기’ 불쏘시개로 쓰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 유야무야되거나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 폐기된다면 지방소멸은 가속화할 것이다. 부산이 요구하는 것은 예산 몇 푼이 아니다. 정책 결정을 할 시간, 실패할 자유, 그리고 다시 일어설 권리다. 그것이야말로 한국 민주주의를 살리는 마지막 기회다. 정치권은 부산의 분노가 ‘나중에’라는 말로 잠재울 수 있는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는 것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