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이끌고 백두대간 15구간 종주
"근래 젊은 사람들이 주축이 돼서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팀은 정말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아요. 하더라도 기존 산악회에서 운영하는 35~45구간에 참여하는 정도죠. 그게 아쉬워서 이번에 백두대간팀을 꾸렸습니다. 모두 MZ세대예요. 막내가 1997년생이죠. 저희는 15구간으로 끊어서 갑니다. 한 번에 60~70km씩 무박으로 걷는 겁니다. 그거 아세요? 원래 대간 팀은 하면 할수록 사람이 하나 둘 빠지잖아요. 저희는 오히려 할수록 늘어나고 있어요. 이런 장거리 종주는 진입장벽도 높고 좀 살벌하기 마련인데 저흰 즐기고 다 같이 으.으. 하며 힘내는 분위기를 만들었거든요."
약 700km인 백두대간의 완주 난도는 한 번에 얼마나 걷느냐에 달려 있다. 단연 일시종주가 가장 어려운데 보통 50일 내외로 계획한다. 직장을 다니는 일반인이 그 정도 시간을 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구간으로 끊어서 가야 한다. 일반적으로 35~45구간이다. 그 정도면 산술적으로도 하룻동안 산행하기 적당하다. 이보다 더 적게 끊으면 한 번에 걸어야 하는 양이 늘어나고, 밤을 새워 걷는 무박산행을 해야 한다. 주말만으로 부족해 금요일 껴서 일요일까지 꼬박 2박3일을 걸어야 되기도 한다.
그런 백두대간 구간종주를 15구간으로 나눠 하는 팀이 있다. 물론 이보다 더 적은 10구간, 5구간에 일시종주를 한 팀이나 개인은 여럿 있어 왔다. 대부분 등산경력이 풍부하고 이미 백두대간을 완주해 본 경험이 있거나 그런 사람의 인솔을 따르는 케이스다.
다만 이 팀은 좀 독특하다. 대부분 등산경력이 짧은 MZ세대로 구성돼 있다. 종주꿈나무 산악회의 신형수씨가 이끄는 대간팀이다. 심지어 신씨 스스로도 이번이 백두대간 초행이다.
살 빼려 러닝 클럽인줄 알고 산악회 가입
신형수씨는 전남 고흥 출생이다. 고등학교는 순천, 대학교는 서울에서 다녔다. 그리고 다시 고흥으로 갔다가, 서울로 올라와 현재까지 살고 있다. 간단히 정리한 행적이지만, 그 행간엔 좌절과 시련이 있다.
"전공이 법학이었습니다. 고시 공부를 좀 오래했어요. 오래했는데 결국 잘 안 됐죠.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고향으로 내려가서 시간을 보냈죠. 그러다가 기회가 생겨서 다시 서울로 와서 자리를 잡고 일하고 있습니다."
인생을 걸고 한 공부였기에 좌절감이 컸다. 왜소하고 약한 몸은 공부하느라 관리를 전혀 하지 못해 어느덧 80kg이 넘는 비만 상태로 변해 있었다. 그래도 새로운 회사에 자리를 잡으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마음가짐을 다질 수 있었다. 일단 살부터 빼고 싶었다. 2021년, 코로나가 한창일 때다. 등산과 러닝이 유행이었다. 산은 너무 힘들고 어려워 보여서 일단 러닝부터 쉬엄쉬엄 뛰면서 몸을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러닝이 연관검색어에 있는 인터넷 모임에 가입했다. 그땐 아직 SNS에 서툴 때라 연관검색어만 봤는데, 정작 모임의 이름이 '2030산악회'인 건 못 봤다.
"첫 산이 인왕산이었어요. 그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야간등산이었어요. 야경도 참 예뻤고 운동 효과도 꽤 잘 나는 것 같아서 이후로 쭉 같이 다녔죠. 수락산, 불암산, 도봉산, 북한산 등 서울 근교 산을 1년 동안 부지런히 올랐어요."
산이 잘 맞는 체질이었다. 꾸준히 산을 다니니 금방 살도 빠졌고 산을 오래 탈 수 있는 몸이 됐다. 그러다 친구로부터 더 힘들고 도전적인 산행을 하는 세계가 있다는 걸 듣게 됐다. 그게 한창 활동을 시작한 종주꿈나무였다. 젊은 MZ세대들이 주축인 장거리 산악회다.
친구 따라 시작한 장거리…시작부터 100km
처음 입회하자마자 따라간 산행이 강남 16산 연속 산행이었다. 100km가 넘는 고난도 산행이었다. 살은 좀 빠졌지만 아직 군살이 좀 붙어 있었던 데다 산에서 길을 찾는 법도 제대로 몰랐다. 5명이 같이 갔는데 밤이 되자 비가 쏟아졌다. 바로 앞도 잘 보이지 않는 극한 환경에서 이정표를 찾아서 마지막 산까지 오르고 내려왔다. 뒤돌아보니 혼자였다. 모두 첫 도전이었는데 홀로 완주했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 자신감이 확 늘었어요.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강북 16산, 불수사도북, 불수사도북 왕복 등 어렵다는 길들을 폭풍처럼 주파하기 시작했죠. 특히 불수사도북을 많이 했어요. 20번이나 완주했죠. 그러다 두 번 왕복하는, 4회전까지도 해냈어요. 이 모든 걸 5개월 만에 했죠."
불수사도북 4회전은 2023년 3월에 배봉기씨와 둘이서 했다. 총 82시간이 걸렸다. 중간에 모텔이나 찜질방에서 자는 것도 고려해 봤는데 아무래도 반칙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관뒀다. 대신 길바닥에서 잤다. 휴식시간은 총 10~15시간. 산행 기록 앱에는 192km, 누적고도는 1만 2,000m라고 기록됐다.
"왕복을 마쳤을 땐 정말 집에 가고 싶었어요. 사실 불수사도북은 길도 좋은 편이고 뭘 사먹을 수 있는 곳도 많아서 편한 편에 속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도심이 가까워서 치밀어 오르는 도망치고 싶은 욕구와 싸우는 게 훨씬 힘듭니다. 그래서 왕복하고 원래는 찜질방에서 좀 쉬고 씻고 그러려고 했는데 일단 들어가면 다시 못 나올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일단 3회전까지 하고 쉬자고 했죠. 그러면 아까워서라도 4회전을 성공할 것 같았죠. 통틀어서 그때 눈앞에 찜질방을 두고 돌아서는 그 걸음이 가장 무거웠어요."
그 이후로도 매주 100km 이상의 거센 산행을 미친 듯이 몰아붙였다. 12대 종주는 물론 인접한 3개 국립공원을 이어 붙여서 한 번에 걷는 180~285km 거리의 호남, 월악, 지리 국공연산과 영남알프스무한태극 220km, 청평환종주 105km, 부산 11산 110km, 설악무한환종주 개통산행 88km 등을 완주했다. 지맥도 탔다. 남해지맥 60km, 거제지맥 60km, 고흥지맥 104km 등이다.
"가장 어려웠던 건 그간 산지컬 기사에서도 늘 언급되듯 역시 호남국공연산이었어요. 하지만 그땐 이끌어준 호야(박송이씨)님이 워낙 치밀하게 계획해 둔 덕에 완주할 수 있었어요. 지리국공연산은 재작년 추석에 했는데 추석인데도 불구하고 최고 기온이 37℃에 달할 정도로 끔찍하게 더워서 고생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도 완주했어요. 그게 두 번째 도전이었어요. 처음엔 발목을 삐었거든요. 그러고도 120km를 걸었는데 종국엔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더라고요."
포기하지 않는 내 자신 확인하려 장거리 걸어
많은 사람을 따라서 장거리 종주를 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을 이끌게 됐다. 그렇게 하나, 둘 종주들이 쌓이면서 나름의 원칙이 생겼다. 컨디션이 안 좋아지면 주저 없이 중도이탈해야 한다는 것이다.
"몸을 망치면서까지 산을 오르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부상이 오면 정신적으로도 망가지고, 산이 미워지고, 본인도 싫어지게 됩니다. 운동이란 몸과 마음을 성장시키려고 하는 건데 장거리 종주를 하면서 둘 다 망가지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저는 물론 장거리긴 하지만 최단기록 같은 걸 욕심내면서 페이스를 높여 몰아붙이는 식으로 산행하지는 않아요. 항상 느리더라도 천천히 다니죠."
사실 그도 조금 '내로남불'이긴 하다. 남에겐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스스로는 영 그러지 않는다. 앞서 봤듯 발목이 삐어도 120km를 걷는다. 불수사도북 4회전도 발목을 살짝 삐고 쥐가 났었지만 완주했다. 장수트레일레이스 100마일도 갈비뼈가 부러진 상태에서 완주했고, 울주나인피크 대회도 허벅지가 찢어지고 꼬리뼈가 부러졌는데 완주했다. 설악산에서도 넘어질 때 스틱이 부러지면서 손을 짚었다가 어깨가 빠졌는데 혼자 끼워 넣고 끝까지 걸었다. "처음엔 전혀 걸을 수 없는 몸 상태는 아니고 천천히 걸을 수 있는 상태여서 '할 수 있는 만큼만 걷자'는 정도로 가다 보니 완주했다"고 했지만, 설명이 부족했다. 조금 더 캐묻자 털어놓기 망설였던 본심이 나왔다.
"스스로한텐 조금 다른 기준인 게 맞긴 한 것 같아요. 여러 이유가 있는데, 고백하자면 고시 공부를 하면서 자존감이 굉장히 낮아졌어요. 저는 원래 포기를 잘하던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정말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시험에 붙지 못했으니 좀 힘들었죠. 주변에도 공부하다가 포기하고 마음이 망가지는 사람들이 꽤 여럿 있었어요. 그래서 어쩌면 포기하지 않는 제 자신을 재확인하기 위해 채찍질하듯 더 걷는 걸 수도 있는 것 같아요. 힘든 상황을 극복하고 끝까지 목표를 달성하면 예전에 포기했던 나보다 몸과 마음이 조금은 더 건강해졌다고 느끼게 되거든요."
MZ세대 이끌고 백두대간을 가다
그렇게 산에 미친 듯이 몰입하고 나니 문득 정말 중요한 것 하나를 놓치고 있는 것 같다는 찜찜함이 느껴졌다. 전국 방방곡곡의 장거리 코스를 섭렵하고 다녔는데, 그 중심에 고고하게 흐르는 가장 큰 산줄기는 시도한 적이 없었다. 바로 백두대간.
"아무래도 모임 안에서 백두대간은 늘 한 번쯤 걷고 싶다는 얘기가 계속 나왔어요. 그런데 워낙 장거리 프로젝트라 우리끼리 해보자는 얘긴 나오지 않았죠. 그래서 다른 장거리 전문 산악회 선배들이 백두대간을 시작한다고 하면 종종 마음에 맞는 몇 명만 따라가는 식으로 했었어요."
이번엔 남의 등을 따르지 않고 우리 스스로가 앞서보자고 뜻을 모았다. 하지만 정작 진짜 할 사람을 모으니 11~12명밖에 되지 않았다. 버스를 대절하려면 적어도 20명은 필요했다.
"다른 사람들은 1년만 더 기다리면서 모집해서 가자고 했는데 어차피 지금 아니면 못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단 숙제처럼 완주란 부담을 짊어지우지 않도록 그냥 백두대간이긴 한데 꼭 다 완주할 필요는 없고 한 구간 할 건데 와보란 식으로 홍보했어요. 굿즈도 만들고 단체티도 만들었죠. 와펜도 만들었고요."
그렇게 시작된 백두대간, 사람의 심리란 오묘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주하겠다고 야심차게 마음먹은 사람들은 오히려 하나, 둘 그만뒀다. 한 번이라도 개인 일정으로 불참하게 되면 아예 그만두게 됐다. 되레 백두대간 구간종주란 걸 맛만 보자는 식으로 가볍게 온 사람들은 재밌다고 자꾸자꾸 왔다. 포기해도 그만이라는 마음 비움의 힘이 그렇게 컸다. 그래서 처음 백두대간 가자는 말에는 10명 남짓 모였는데 지금은 40명이 넘게 오고 있다. 원래 이런 장거리, 장기간 구간 종주 프로젝트는 처음에 많은 사람이 모였다가 점점 총인원이 줄어드는 게 보통인데 기분 좋은 역주행을 한 셈이다.
"분위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산행할 땐 늘 선두조와 후미조가 자연스럽게 나뉘는데 별다른 터치 없이 한 구간을 길게 타게 되면 두 조의 간격이 생각보다 굉장히 많이 벌어져요. 이러면 선두조는 완주를 하고 1초라도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은데 후미 기다리느라 힘들고, 또 후미는 자기 때문에 늦어진다고 생각해서 소외감도 들고 미안하고 방해만 된다 생각해서 다음 일정에 불참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시간표다. 백두대간 구간 중 특정 기점마다 통과 시간을 공지해 두고 선두는 딱 이만큼만 갈 것이라고 선을 그어뒀다. 그보다 먼저 나가는 사람은 불허한다. 단연 빨리 가고 싶은 사람은 있겠지만 그런 사람에겐 그러면 맘에 맞는 사람끼리 개인 일정으로 가라고 일렀다. 애초부터 이건 단체 산행이고 화합하는 분위기로 가려고 만든 계획이기 때문이라고 충분히 설명했다. 이런 분위기를 위해 그는 늘 탈진한 사람이 있으면 그의 배낭을 대신 들어주고 수십 km를 걷곤 했었다. 그렇게 15구간 중 10구간을 걸었고, 이제 5구간 남았다. 오는 7월 완주 목표다.
장거리 종주, 진입장벽을 낮추다
그런데 대체 왜 그렇게까지 백두대간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완주하고 싶은 걸까?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진입장벽이다. 코로나 시국에 등산을 시작하고, 장거리 종주란 세계에 입문하고 나서 느낀 건 묘한 분위기였다. 대부분 체력과 페이스가 맞는 사람들끼리만 산에 가는 게 맞는다고 여겼다. 그래서 100km 이상 산행 경험 없는 이는 '참석 금지' 같은 공지가 많았다.
"물론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방향성이긴 한데 페이스가 안 맞는 사람끼린 장거리 종주를 절대 할 수 없다는 데 동의하기 어려웠어요. 장거리 종주를 하는 사람들이 엄청 특별하다거나 그런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누구나 충분히 훈련하면 할 수 있어요. 만약 정말 특별한 사람이면 선수를 했겠죠. 그래서 저는 진입장벽을 낮추고 싶었어요. 누구나 함께 오래 걸으면서 장거리의 재미를 공유할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죠."
또 다른 하나는 어느 순간 '내가 해낸 게 아니다'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수십, 수백km의 길을 처음 걸었을 땐 그게 혼자서 해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게 아니었다. 앞에서 끌어준 사람이 있었고, 뒤에서 밀어준 이가 있었다. 꼭 실제 같이 걷지 않더라도 GPX 트랙을 남겨준 이도 분명 도움을 준 것이다. 내가 내딛은 한걸음은 남의 도움 없인 성립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총무도 도맡고 있고요. 예전엔 자기가 얼마나 밥을 먹든, 얼마나 시설을 이용하든 상관없이 일괄 회비를 걷고 남은 건 이월하고 그랬다는데 요즘엔 그런 문화가 아니잖아요? 누군 목욕탕을 가기 싫을 수 있고 밥도 적게 먹을 수 있죠. 그래서 일괄 회비로 안 하고 개인 정산을 일일이 했어요. 고문님 중 닉네임이 '박살'이란 분이 저를 '그렇게 하면 못 견딘다'며 혼냈죠. 그래도 지금은 적응돼서 어느 정도 잘 해내고 있어요."
사서 하는 고생이다. 그래도 즐겁다. 장거리 종주 산행은 단순히 힘든 걸 해냈다는 차원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향 고흥의 고흥지맥을 걸으면서 지금처럼 도로가 나고 차를 타기 전의 시공간을 봤다. 조상들은 이 산길을 걸으면서 부락을 만들고 문화를 만들었을 터다. 그렇게 걸으면서 능선 위에 앞서 걸은 이들의 삶의 애환과 역사를 상상력으로 덧칠했다. 종주는 발로 걷는 시간여행이다. 지금이야 키 큰 나무가 들어섰고 잡목이 우거졌다. 그러나 과거엔 똑같은 땅에서 나라를 지키려 피를 흘리며 전쟁을 벌였고, 누군가는 가정을 지키려 논밭을 일궜다. 그 시간이 포개진 길을 따라 걷는다. 그게 지금의 종주란 것이 그의 생각이다.
월간산 4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