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의 암벽, 여길 오르려면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긴장감이 감돈다. 숨소리만 들리는 고요함이 느껴진다. 이 엄청난 집중의 현장에서 시끄러운 록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파격, 그 자체다. 하지만 이 의외의 선택이 등반을 돕는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클라이머들에게 록 비트는 단순한 음악이 아니다. 중력을 이겨내게 하는 뜨거운 연료이자 완벽한 등반을 위한 하나의 장비다.
알렉스 호놀드: 속도 빠른 록 비트는 페이스메이커
지난 1월, 알렉스 호놀드Alex Honnold가 대만의 초고층 빌딩 '타이베이 101'을 아무 안전장비 없이 1시간 31분 만에 올라 화제가 됐다. 이 과정은 넷플릭스에서 '스카이스크래퍼Skyscraper'라는 이름으로 생중계됐다. 당시 그의 귀에는 록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등반 후 인터뷰에서 "주로 밴드 툴TOOL의 노래를 들었다"고 밝히며, 스포티파이에 'T101'이라는 이름의 플레이리스트를 직접 공개했다.
호놀드는 자연 바위를 오를 때도 음악을 즐긴다. 록 음악에 대한 그의 사랑은 오래됐다. 2008년 미국 자이언국립공원의 '문라이트 버트레스(5.12d)'를 프리솔로로 오를 때도 록 음악으로 가득찬 25곡의 리스트를 공개한 적이 있다.
그는 음악을 '페이스메이커'로 쓴다고 밝혔다. 속도 빠른 록 비트를 하나의 청각적 장비로 여기는 셈이다. 호놀드는 "플레이리스트 곡의 길이를 정확히 알고 있다"며 곡의 진행 속도에 따라 등반 속도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프리 솔로>의 배경인 엘 캐피탄 '프리라이더(5.12d)' 등반 때는 이어폰을 끼지 않았다. 감독이 그의 숨소리를 생생하게 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수년 동안 이어진 훈련 과정에서 음악을 반복해 들으며 몸의 리듬을 익혔다. 영화 속 정적은 수천 번 반복된 록 비트 위에서 만들어진 결과다.
아담 온드라: 등반 전 야성을 깨우다
호놀드 외에도 록 음악을 즐겨듣는 암벽등반가가 있을까? 여기 또 한 명의 음악광이 있다. 현존 최강의 체코 스포츠 클라이머 아담 온드라Adam Ondra다. 그는 등반 전 텐션을 높이기 위해 미국의 록 밴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음악을 듣는다. 온드라는 "강한 비트로 몸을 예열하면 어려운 구간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과감하게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록 음악은 등반 직전 두려움을 떨쳐내고 몸의 반응 속도를 끌어올리는 하나의 '스위치'인 셈이다.
그의 음악 사랑은 직접 노래를 만드는 데까지 이어졌다. 2021년 프랑스의 고난도 루트 '라 바프(5.14d)'를 완등한 후, 이를 기념하는 동명의 곡을 만들어 유튜브와 스포티파이에 공개했다. '라 바프La Baffe'는 프랑스어로 '따귀'를 뜻한다. 홀드를 낚아채는 역동적인 동작 때문에 루트에 붙은 이름이다. 노래는 록보다는 묵직한 베이스가 깔린 '트랩Trap' 스타일의 힙합 곡이다.
페이스메이커 vs 마인드컨트롤
두 거장이 음악을 쓰는 방식은 다르다. 호놀드는 등반 중에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리듬을 유지하는 '페이스메이커'로 활용한다. 반면 온드라는 등반 직전 워밍업이나 마인드 컨트롤을 위해 음악을 듣는다. 실제 벽 위에서는 빌레이어와 소통해야 하기에 이어폰을 벗는다. 암벽 위에서의 록은 소통할 파트너가 없는 프리솔로 등반가, 호놀드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음악, 아웃도어 문화가 되다
아웃도어에 음악을 더해 콘텐츠를 제공하는 브랜드들이 등장하고 있다. 브랜드 성격에 맞춰 음악을 골라 플레이리스트를 제안하며 브랜드만의 문화를 전한다.
케일: 사적인 경험을 공유하다
국내 브랜드 케일이 공개하는 '트레일 믹스'가 대표적이다. 매번 바뀌는 큐레이터들이 자연에서 느낀 개인적인 감정을 음악으로 전한다. 등산, 러닝, 백패킹 등 상황에 딱 맞는 곡들을 골라 스포티파이에 업로드한다.
블랙다이아몬드: 선수가 듣는 것이 곧 장비다
소속 선수들의 플레이리스트를 모아 공유한다. "선수가 듣는 것이 곧 장비다Athlete Driven"라는 생각으로, 선수들이 실제 훈련 중에 듣는 곡들을 그대로 올린다. 집중력을 높여 주는 강렬한 록 음악 위주다. 이들에게 음악은 등반의 효율을 높여 주는 또 하나의 도구다.
FACT! 록 음악의 효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날리다
강렬한 사운드는 부정적인 감정을 밖으로 배출하는 통로가 된다. 연구에 따르면 헤비메탈 등 록 음악은 분노와 스트레스를 발산시켜 감상 후 마음을 더 평온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육체적 에너지를 깨우다
빠르고 강한 비트는 잠자던 몸에 시동을 거는 역할을 한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심박수가 높아지고 근육을 예열해 운동 능력을 끌어올린다. 또 뇌가 피로감을 덜 느끼게 해 평소보다 더 과감한 움직임을 가능하게 한다.
월간산 4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