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너 마리아 릴케,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 지음 최성웅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살면서 고민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많은 이들이 자기 삶에서 결핍과 허무함을 느끼기에 상담가들의 그 많은 고민 타파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방송되는 것일 테다. 회사 동료 때문에 퇴사를 고민할 때에도, 일을 하면서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괴로울 때에도, 심지어 일과 가정생활 모두가 지나치게 평온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조차 우리는 내 삶이 어딘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닐지 불안해한다. 난해한 질문에도 명확한 해법을 내놓는 멘토들이 토크콘서트형 강연에서 자주 언급하는 것이 바로 릴케의 명언인데, 삶의 고독과 고통에 있어 많은 잠언을 남긴 릴케의 글과 유명한 시구의 상당수는 바로 이 책에서 비롯됐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그리고 젊은 시인이 보 낸 편지>는 릴케가 무명의 시인 지망생 카푸스와 주고받은 서한집이다. 카푸스는 릴케에게 매번 자신을 지배하는 각종 고민과 혼탁한 상황에 대해 털어놓는다. 물론 매우 구체적으로 “제발 답을 달라”고 매달리진 않는다. 그 역시 문학가였기에 어떠한 책들을 읽고 있으며 어떠한 시를 사랑하는지 열정적으로 고백한다. 그는 존경하는 시인이자 선생인 릴케가 너그러운 호의를 베풀어 자신에게 매번 긴 답장을 써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만큼 감사함을 표현하는 카푸스에게 릴케는 답장을 쓸 때마다 ‘친애하는 카푸스씨의 편지를 읽는 것은 저에게도 더없이 큰 기쁨’이라며 두 사람이 동등한 관계임을 주지시킨다. 릴케의 편지에 담긴 지혜롭고 따뜻한 문장은 예술가를 꿈꾸는 지망생뿐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자신의 모습이 무엇인지 잊은 채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모든 이에게 무한한 위로가 된다. 가족을 사랑하지만 가족과 함께 있을 때 고독함을 느낀다는 카푸스의 지나는 푸념에 릴케는 이렇게 답한다. “가까운 이들이 멀게 느껴진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당신 주변이 넓어지기 시작했다는 방증입니다. 그러니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자신만의 성장에 기뻐하십시오. 동시에 뒤에 남은 이들에게는 관대해지고 그들 앞에서 확고하고 침착하게 행동하십시오.”(59쪽) 또한 릴케는 “문제 자체를 하나의 밀폐된 방이나 매우 낯선 말로 쓰인 책처럼 사랑해보십시오. 삶에서 영위할 수 없으므로 결코 주어지지 못할 해답을 찾고자 애쓰지 마십시오. 모든 것은 삶 속에서 영위해야 합니다. 지금의 문제를, 삶에서 영위하시기 바랍니다”(54쪽)라고 답하기도 한다. 그 어떤 문제든 엄숙하지 않게, 다만 당신을 믿고 그 문제들을 삶에서 끌어안고 인내심을 가지고 받아들이라는 릴케의 고귀한 문장들에 밑줄 치다 보면 순간 사위가 고요해지는 것을 느낀다. 머릿속을 지배하는 불필요한 소음을 일순에 사라지게 할 순 없지만, 릴케의 편지를 공들여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성숙해지는 듯하다.
그러니 슬플 때면 스스로 고독한 채로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왜냐하면 미래는 언뜻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 보이는 ‘마비된’ 순간에 우리에게 들어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고요한 순간은 우리 바깥에서 일어나는 시끄럽고 우발적인 사건들보다 훨씬 더 우리 삶에 다가와 있습니다. 1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