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손자병법’으로 본 국힘 최후 비책] ‘셀프 물갈이’로 혁신 주도한 김용태 전 의원● 2018년 조강특위 위원장 시절 스스로 ‘인적쇄신’ 명단 올려
● 경제 침체 막기 위한 추경, 원조는 이명박 정부
● 이재명 추경, 포퓰리즘 비판할게 아니라 더 크게 치자
● 21대 총선서도 재난지원금, 민주당 도덕성 비판하다 패배
● 반객위주(反客爲主): 민주당 어젠다를 선점하라
● 차시환혼(借屍還魂): 사라진 보수당 명성 빌려서라도 유능 증명
● 다수 유권자에 유리한 정책·대안 내놓아야 선거 승리
● 영남 의원 우대해선 민심에 반응할 수 없어“국가재정을 푸는 일을 ‘민주당의 포퓰리즘’이라고 비판만 해서는 집권과 거리가 멀어진다. 유권자가 경기부양책을 원한다면 민주당보다 더 효과적으로 재정을 사용해 경기를 부양할 방법을 제시해야지 비판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김용태(58) 전 국민의힘 의원이 4월 10일 ‘신동아’와 인터뷰하면서 내놓은 국민의힘 위기 타개 방안이다. 그가 내놓은 방안을 손자병법 삼십육계에서 찾자면 ‘반객위주(反客爲主)’라 볼 수 있다. 반객위주는 손님이 주인 노릇을 한다는 의미다. 적에게 휘둘리던 수동적 위치에서 벗어나 주도권을 쥐는 전략이다. 야당인 국민의힘이 정부와 여당 비판이라는 수동적 위치에서 벗어나 재정정책에 대안을 제시하는 등 주도적 위치를 점하라는 지적이다.
김 전 의원에게 국민의힘 위기 타개 방안을 물은 것은 그가 보수정당 험지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김 전 의원은 2008년 18대 총선에서 서울 양천을에 출마. 이곳에서만 내리 3선을 했다. 양천을은 2003년 재보선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보수정당에 의석을 내주지 않은 지역이었다. 김 전 의원은 이곳에서 국회의원이 됐고,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이 참패한 2016년 20대 총선에서도 지역구를 지켜냈다. 2018년 자유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위원장 시절에는 자신을 ‘인적쇄신’ 명단에 올려 쇄신을 주도했다. 이른바 ‘셀프 물갈이’로 자신을 희생하며 당 혁신을 이끈 것이다.
유권자가 원한다면 추경에도 적극 나서야
보수정당이 재정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자는 주장을 한다니 어색하다.“이미 보수정당 집권기에 재정을 풀어 경기를 부양해 본 경험이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기였던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를 떠올려 보자.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던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은 경기침체 대응을 위해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를 동시에 추진했다. 당시는 과도한 재정정책이라는 비판이 컸다. 사상 최대의 적자 예산 편성이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나. 미국과 유럽이 금융위기로 고생하는 동안 한국은 빠르게 경기침체에서 탈출했다.”
이재명 정부도 국가재정을 사용해 경기부양에 나서고 있다.“그래서 유권자들이 이 대통령과 여당을 지지하는 것이다. 경기가 침체되려고 하면 재정을 풀어서라도 이를 막아야 한다. 경기침체기에 돌입하면 이를 고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집권을 원하는 당이라면 이 같은 상황에 재정을 쓰는 일을 막아선 안 된다.”
국민의힘은 재정건전성 문제를 지적하며 이재명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포퓰리즘이라 비판한다.“대책을 이야기하지 않고 정부나 여당의 정책을 비판만 하는 당은 집권하기 어렵다. 국민의힘은 이미 2020년 21대 총선 대패로 이를 잘 알고 있다.”
2020년 총선 패배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당시는 코로나19 정국이었다. 전 세계적 재앙이 발생했으니 정권심판론이 불거질 것이라 생각했다. 2020년 초까지만 해도 압승을 자신했을 정도다. 당시 당 지도부는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 대책을 비판하면 승기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당시 정부가 코로나 유행 초창기에 중국인의 입국을 막지 못했고, 결국 한국에까지 코로나가 퍼졌다는 주장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재난지원금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코로나에 대응했다. 이 지원금에 대해서도 포퓰리즘 예산이라 비판했다. 이것이 패착이었다. 전국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코로나로 인해 궤멸적 타격을 받고 있었다. 정부는 이들을 돕기 위해 긴급 예산을 편성해 대응하는데 야당은 이를 비판만 했다. 민심과 정반대로 움직인 셈이다.”
당시 당내 분위기는 어땠나.“선거 초기만 해도 승기를 잡았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서울 구로을 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던 나는 대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현장에서 만난 유권자들은 정부의 코로나 대응에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2020년 6월 김종인 비대위가 결성되며 더 많은 추경을 하더라도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그때는 이미 늦었다. 이미 유권자들은 코로나 사태를 해결하려는 정부 여당과 이를 비판하는 야당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2024년 22대 총선 패배도 마찬가지다. 당시 민주당에선 이재명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만 공천한다는 ‘비명횡사’ 공천 파동이 터졌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우리가 도덕적 우위를 점했다는 인식이 퍼졌다. 역시 이길 수 있다는 낙관론이 퍼졌다. 하지만 이때에도 유권자들은 어떤 당이 도덕적 우위를 점했는지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다.”
영남 의원 우대하면 민심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없다
그때 유권자들은 어디에 관심이 있었다고 보는가.“유권자들은 당장 자신 삶의 괴로움을 덜어줄 정책에 관심이 있다. 22대 총선을 전후해서는 물가가 유권자들을 괴롭혔다. 농산물을 시작으로 물가가 3%가량 급등했다. 국민의힘은 그때 여당이었다. 여당은 이 같은 민생 문제를 해결할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당시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도덕적 결함을 지적하는 일에 집중했다. 설상가상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고 나서자 의료대란이 불거졌다. 정권에 대한 비판론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도였다.”
선거를 앞두고 물가를 잡기 위한 추경 등의 논의는 없었나.“나는 2023년부터 집중적으로 추경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로나 때 빚을 낸 자영업자들이 이를 갚아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때 정부가 나서서 이들의 빚 중 이자를 탕감해 준다는 등의 정책을 쓴다면 2024년 총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하지만 당시 정부 정책기조가 재정건전성 확보라 추경에는 실패했다.”
6·3지방선거를 앞두고 현 정부는 이미 적극적 재정정책으로 경기를 부양하려 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더 큰 규모의 추경을 주장하는 등 여당보다 한발 더 나아간 모습을 보여야 한다. 보수정당이라고 해서 추경을 주장하지 못할 것은 없다. 이미 2008년에 성공한 선례도 있다. 이를 강조하며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김 전 의원이 지적한 부분은 삼십육계의 ‘차시환혼(借屍還魂)’과 맞닿아 있다. 차시환혼은 시체를 빌려 혼을 되돌린다는 의미로 과거에 유명했으나 지금은 사라진 것의 명성에 의지해 목적을 이루는 계책이다. 2008년 여당이던 국민의힘(당시는 한나라당)이 재정정책으로 성과를 냈던 것을 강조해야 한다는 의미다.
현재 국민의힘 지도부가 적극적 추경 주장 등 민생에 발맞춘 행보를 보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지금의 지도부는 유권자의 마음을 읽는 데 절실하지 않다. 영남 의원들이 당 주도권을 쥐고 있는데, 이들은 공천이 지상 목표다. 당연히 강성 당원이 원하는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강성 당원이 원하는 목소리만 내다보니 자연히 민심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반면 민주당은 당 지도부 의원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수도권 의원이다. 국민의힘보다는 민심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구조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왜 영남 의원으로 채워진 것인가.“호남 지역 의원을 홀대한 민주당과 달리 국민의힘은 영남 지역 의원을 우대했다. 민주당은 호남 지역 의원을 비인기 상임위에 주로 배치했다. 당선이 쉬운 지역 의원보다는 어려운 지역에서 당선된 의원을 챙기겠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가장 인기 있는 상임위인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구성만 봐도 그렇다. 현재 예결위 명단을 보면 호남 출신 민주당 의원은 많지 않다. 호남지역보다는 수도권·영남권 의원을 주로 배치한다. 국민의힘은 반대다. 한나라당 시절부터 영남 인사를 주요 상임위에 배치했다.”
실제로 현재 예결위 위원 중 민주당은 비호남 의원이, 국민의힘은 영남 의원이 많다. 민주당 예결위 위원 28명 중 5명(박희승, 안도걸, 윤준병, 정진욱, 조계원)이 호남에서 당선됐다. 국민의힘은 18명의 예결위 위원 중 9명(배준영, 조은희, 조정훈, 한기호, 강승규, 박덕흠, 장동혁, 김위상, 조배숙)을 제외한 9명의 의원이 영남에서 당선됐다. 이 중 조은희 의원과 한기호 의원은 각각 지역구가 서초갑과 강원 춘천·철원·화천·양구을로 보수정당 지지세가 높은 지역이다.
김 전 의원은 “이외에도 민주당이 정치 신인을 수급하는 방식도 국민의힘보다 집권에 더 최적화돼 있다”고 덧붙였다.
인생 2모작 꿈꾸는 정치 신인, 당에는 도움 안 돼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인력 수급 방식이 다른가.“민주당은 시민운동가, 대학 운동권 등 젊은 정치인을 수급할 인재풀이 있다. 이들 중 일부는 기초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국회의원 보좌진이 되는 사람도 있다. 비교적 젊은 나이부터 정치권에 몸담으며 민심을 읽는 방식을 배운다. 이들 중 일부는 구청장 선거에 나가 당선되거나 국회의원이 되기도 한다. 정원오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대표적 예다. 이에 반해 국민의힘은 인생 2모작을 꿈꾸는 성공한 관료, 법조인, 기업인을 섭외한다. 이들은 자신의 분야엔 전문가지만 정치엔 밝지 않다. 그런데도 전문가를 모시는 구조다 보니 이들에게 비교적 쉬운 지역구를 내주게 된다.”
수도권 등 비교적 당선이 어려운 지역은 어떤 방식으로 공천했었나.“당선이 어려운 지역은 후보를 세우는 일조차 어렵다. 지금도 서울시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는 배현진 의원이 서울 지역 기초의원 후보를 구하기 어렵다고 하지 않나.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에도 수도권에서 기초의원 후보로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오죽 사람이 부족했으면 일부 지역에선 기초의원 후보로 나서면 당협위원장이 공천 심사비를 대신 내준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2018년 지방선거 이후 당 조직강화특별위원장을 맡으며 본인을 포함한 21명의 당협위원장을 교체했다.“김병준 비대위 시절 이야기인데 당의 체질을 바꾸는 동시에 국민에게 최소한의 진정성을 보이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비대위 이후 황교안 대표 체제가 되면서 인적 쇄신이 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은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국민의힘의 문제로 ‘철학의 부재’를 꼽았다.“나도 동의한다. 보수정당 의원들이 철학이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도 있다. 2017년 문 전 대통령은 예비타당성 조사 운용 지침을 고쳐 국책사업일 경우 예타를 면제하는 조항을 만들었다.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에 국책사업을 유치하기만 하면 예타를 면제받을 수 있으니 모두가 환영했다. 하지만 이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중요하게 여기는 보수정당이라면 동의할 수 없는 방침이었다. 최소한의 효율도 검증하지 않은 국책사업이 방만하게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보수정당 의원 중 나와 김종석 전 의원만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정부·여당의 중도 세력 규정, 반드시 막아야
현재 국민의힘에 가장 필요한 철학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리다. 정부가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려 한다면 이를 지적하고 비판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와 다툴 때도 마찬가지다. 추경, 노란봉투법 등 사안별로 비판하려 하지 말고 정부 정책의 기조가 시장경제 원리와 맞지 않다는 비판을 해야 한다. 김병준 비대위 체제에서는 ‘i노믹스’라는 담론을 펼쳤다.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야 할 사안과 그러지 않을 사안을 나눈 다음, 부적절한 개입에 대해서만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당을 대표할 만한 담론이 실종됐다.”
이후 2020년 김종인 비대위가 ‘약자와의 동행’을 내걸기도 했는데….“약자와의 동행은 선거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필요한 일종의 전술이다. 시장경제 원리를 강조하는 등 당 차원의 담론을 세웠다고 볼 수 없다.”
새로운 담론을 세워야 하는 시점인데 국민의힘은 당내 갈등으로 내홍이 커지는 모양새다.“모든 정당에는 항상 내홍이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절연, 한동훈 전 대표의 거취 등으로 싸우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나는 그런 일에 관심을 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에 선거에 이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6·3지방선거는 국민의힘이 이기기 어렵다는 진단이 지배적이다.“설사 어렵더라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끝까지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험지에서 후보로 나서서 힘쓰고 있는 동료들에 대한 예의다. 지도부도 주도권 다툼을 그만두고 선거에 집중해야 한다. 정치는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지를 두고 벌이는 싸움이다. 다수 유권자에게 유리하면서 시장경제 원리를 지킬 수 있는 정책을 내놓을 수 있다면 국민의힘에도 희망은 있다.”
김 전 의원은 또 “당내 일부 인사들은 이재명 정부가 정권 말미에 지지율이 떨어지면 국민의힘에도 기회가 올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들었다”며 “현 정부 지지율 하락만 기다리고 있다면 국민의힘에 미래는 없다”고 주장했다.
지지율 하락을 기다리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은 전략이라는 의미인가.“파도가 아무리 거세도 밀물과 썰물을 이기지 못한다. 이재명 정부의 지지율 하락이 있더라도 그것은 파도일 뿐이다. 지금 이재명 정부와 여당은 자신들을 중도 세력이라 규정하며 대다수 유권자의 마음을 살 정책을 고민한다. 유권자들이 정부와 여당을 중도 세력이라 인식하면 때는 늦었다. 정부 지지율이 등락할 수는 있어도 본인을 중도 지지층이라고 여기는 유권자는 민주당에 투표하게 된다. 국민의힘은 이를 막아야 한다.”
쉽지 않을 것 같다.“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유권자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집중하면 막을 수 있다. 당내 의원들도 지도부와 이견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가 있고, 그 방향이 유권자 다수의 의견과 일치한다면 지도부와 다투기도 해야 한다. 이 같은 의원이 늘어나면 당의 체질은 바뀌고 이기는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