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 알레르기 반응→아나필락시스 쇼크→급성 췌장염/잘 드러나지 않는 췌장염에 각별히 주의해야

아나필락시스 쇼크는 응급 상황이다. 약물, 음식, 벌의 독침 등에 노출된 뒤 몇 시간 안에 급격한 알레르기 반응이 온몸에 일어나 호흡 곤란, 혈압 저하, 의식 불명 등을 일으키는 과민성 쇼크다.
치질을 앓던 50대 여성이 치질 연고를 항문 주변에 바른 뒤, 아나필락시스 쇼크를 일으키고 급성 췌장염이 발생한 사례가 학계에 보고됐다. 벨기에 루뱅대 연구팀은 58세 여성 치질(외치핵) 환자가 치질 연고(트리애널, TriAnal)를 항문에 바른 지 약 30분 만에 갑자기 상복부 통증, 설사 증상을 보여 응급실에 실려왔다고 밝혔다. 당시 이 환자는 아나필락스 쇼크를 일으켜 혈압이 뚝 떨어지고 맥박이 빨라졌고 호흡 곤란과 함께 온몸이 가려운 두드러기 증상을 보였다.
연구팀은 즉시 과민성 쇼크에 대한 응급 처치약인 에피네프린과 스테로이드를 투여했으나, 심각한 저혈압 상태(혈압 71/48 mmHg로 유지)가 사라지지 않았다. 환자는 중환자실로 옮겨져 혈압상승제(승압제) 처방과 수액 요법을 받았다. 혈액 검사와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 결과, 알레르기 반응의 지표인 트립타제 수치가 25.7 µg/L(정상 8.4 미만)로 치솟아 아나필락시스의 메커니즘이 확인됐다. 췌장 효소인 리파아제 수치도 420 U/L(정상 8~78)로 크게 높아져 있었다.
복부 CT 촬영 결과, 췌장 몸통 부위가 붓고 주변 지방 조직에 염증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급성 부종성 췌장염'에 해당한다. 연구팀은 쇼크로 인한 저혈압(허혈)과 알레르기 매개 물질의 방출에 따른 염증 때문에 이 환자의 췌장이 손상됐을 것으로 분석했다. 연구팀은 환자에게 급성 췌장염 진단을 내리고, 혈역학적인 치료법을 적용했다. 다행히 환자는 하루 만에 리파아제 수치가 정상을 되찾았고, 증상이 호전돼 다음 날 중환자실에서 퇴원했다.
연구팀은 이 같은 내용의 사례 연구 결과(Acute Pancreatitis Associated With Anaphylactic Shock: A Case Report and Literature Review)를 최근 국제 의학학술지 《큐레우스(Cureus)》에 발표했다.
보통 췌장염은 음주나 담석 때문에 발생하지만,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이 췌장까지 손상시킬 수 있음을 이 사례는 보여준다. 환자가 아나필락시스 쇼크를 일으킨 상황에서는 복통이 일시적이거나 다른 심각한 증상에 가려질 수 있어 '숨겨진 췌장염' 진단을 놓치기 쉽다.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 환자에게 소화기 증상이나 원인이 뚜렷하지 않은 효소 수치의 상승이 나타나면 췌장 손상 가능성을 의심해볼 수 있다.
알레르기 반응이 췌장염을 일으키는 데는 크게 두 가지 메커니즘이 작용한다. 첫째, 아나필락시스 쇼크로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췌장에 혈액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는 '허혈성 손상'이다. 둘째, 알레르기 반응 때 분비되는 히스타민 등 여러 면역 매개 물질이 췌장 미세혈관의 투과성을 높이며 이 때문에 부종과 염증이 발생한다.
이런 급성 췌장염은 사람에 따라 일반적인 췌장염과 증상이 다를 수 있다. 이 사례 환자처럼 처음에 복통이 나타났다가 쇼크 증상이 심해지면서 통증이 금방 사라지는 경우도 있고, 복통 없이 혈액 검사나 영상 의학적 검사로만 발견되기도 한다. 의료진의 세심한 관찰이 필요한 까닭이다.
이런 환자에 대해서는 쇼크 상태를 빨리 가라앉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에피네프린 투여, 충분한 수액 공급, 혈압 상승제 처방 등으로 췌장 등 주요 장기의 혈류를 신속히 회복시키면 췌장 수치도 비교적 빠르게 정상을 회복할 수 있다.
[자주 묻는 질문]
Q1. 평소에 잘 바르던 연고인데도 갑자기 아나필락시스 쇼크가 올 수 있나요?
A1. 네, 가능합니다. 아나필락시스는 특정 성분에 반복 노출되면서 면역 체계가 과민하게 반응하는 과정(감작 과정)을 거쳐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히 리도카인 같은 국소 마취제나 연고 내 첨가제 성분은 예전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더라도, 어느 순간 급격한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사용 후 두드러기나 호흡 곤란이 오면 즉시 투여를 중단해야 합니다.
Q2. 술을 전혀 안 마시는 사람도 아나필락시스만으로 췌장염이 생기나요?
A2. 그렇습니다. 췌장염의 약 20%는 원인이 불분명한 '특발성'으로 분류됩니다. 이번 사례처럼 쇼크의 일종인 심각한 혈압 저하가 발생하면 장기로 가는 혈액이 막혀 췌장 세포가 괴사하거나 부어올라 허혈성 췌장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는 음주 여부와 상관없이 발생하는 신체 시스템의 연쇄 반응입니다.
Q3. 아나필락시스로 인한 췌장염은 완치가 가능한가요?
A3. 일반적인 담석성·알코올성 췌장염에 비해 원인인 쇼크 상태만 빠르게 없애면 회복 속도가 빠릅니다. 이번 사례의 환자도 수액 요법과 혈압 상승제 투여로 혈압을 정상화하자 24시간 만에 췌장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다만 진단 시기를 놓쳐 장기 허혈 상태가 지속되면 심각한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초기의 빠른 대응이 매우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