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이 주목한 이 주의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 이야기에서 여운을 음미해보세요.최근 이주노동자를 돕던 한 활동가가 변호사법·노무사법·행정사법 위반 혐의로 한국공인노무사회로부터 고발당했다. 사건의 주인공은
김이찬 지구인의정류장 소장(61)이다. ‘이주노동자의 고용주’도 아닌 공인노무사회가 시민 활동가를 직접 겨냥한 이번 일은 이례적이다. 각하 결정을 통지받고 일주일이 지난 3월25일, 김 소장은 여전히 “이 모든 일이 나쁜 꿈 같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김 소장이 대체 무슨 일을 했길래 노무사회의 표적이 됐을까? 사실 그의 과거는 ‘활동가’와 거리가 멀다. 사무실 책장에 꽂힌 비디오테이프와 CD가 그의 전직을 말해준다. 그는 드라마를 만들던 한 케이블 방송사의 PD 출신으로, 다큐멘터리 감독을 꿈꾸던 영상 제작자였다. 이주노동자와의 인연은 1999년께 길 위에서 우연히 시작됐다.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고국의 민주화를 외치던 미얀마 노동자들을 목격한 그는, 그 장면에 매료되어 이들의 이야기를 92분짜리 다큐멘터리로 담아냈다. 제목은 〈데모크라시 예더봉〉, 미얀마어로 ‘민주주의 만세’다.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이후 활동가들을 따라 임금 체불 현장을 취재하고 기록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이주노동자를 향한 그의 마음도 깊어졌다.
대안 미디어에 뜻이 있던 김 소장은 2009년 안산에서 지구인의정류장이라는 비디오 교실을 열었다. “당시 레거시 미디어는 이주노동자를 ‘극단적으로 불쌍하고, 극단적으로 위험한 일을 하는 존재’로 소비했다. 그러나 이들도 직접 전하고 싶은 서사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당시 안산에 살던 네팔·캄보디아·필리핀·스리랑카·우간다·케냐 등 다양한 국적의 노동자들이 지구인의정류장에 찾아와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했다. 이들은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 보여줄, 한국에서의 일과를 영상으로 남겼다.
평화롭던 비디오 교실이 전환점을 맞이한 건 2011년 어느 날이었다. 강원도 양구에서 여권을 빼앗긴 채 강제 노동에 시달리던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12명이 집단 탈출해 이곳을 찾아온 것이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노동자가 이유 없이 작업장을 이탈하면 불법체류자로 분류된다. 김 소장은 이들을 대신해 관할 노동청과 고용센터에 드나들며 이들의 탈출이 정당했음을 해명했다. 이 사건이 캄보디아 노동자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도움이나 휴식이 필요한 이들이 하나둘 ‘정류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거절하지 못한 사연이 쌓여 십수 년이 흐르고, 비디오 교실은 어느덧 쉼터로 거듭났다. 현재 지구인의정류장에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15명이 머무르고 있다. 여성 이주노동자를 위한 쉼터는 다른 공간에 따로 마련했다. 페이스북으로 쏟아지는 이주노동자들의 상담에 응하고, 독학으로 익힌 캄보디아어로 한국어를 못하는 노동자를 대신해 문서를 번역해주는 게 김 소장의 주된 일과다. 인터뷰 당일에도 깻잎 밭에서 일하는 한 이주노동자가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공인자격증도 없이 이런 일을 한다는 이유로 한국공인노무사회로부터 고발당한 김 소장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신청서를 작성하고 제출하는 일이 노무사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어떤 할머니가 못하면 그 딸이 할 수 있고, 주민센터 직원이 대신할 수도 있다. 보수를 받은 적도 없다. 이 과정에 어떤 불법성이 있나.”
김 소장은 ‘고발인’이었던 한국공인노무사회에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차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 현재 제조업이나 농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의 노동환경은 여전히 위험하다. 장시간 근무하고 낮은 임금을 받는다. 이들의 노동시간을 제대로 측정하고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장치를 만든다면, 그와 관련된 데이터를 얼마든지 제공하겠다. 둘째, 이주노동자의 돌연사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달라. 이주노동자 안전 예방 네트워크를 마련해주면 좋겠다. 그 대신 이를 보수 없이 공익적으로 해보자.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리스크를 안고도 이주노동자를 돕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 소장은 대답했다. “국적 불문 지구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