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간 운영된 풍력발전단지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노후화된 풍력발전기가 안전사고의 근본 원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풍력발전기가 오래되었다고 무조건 위험한 것은 아니다.

사건 현장은 땅에서 80m 떨어진 고공이다. 풍력발전기의 심장, 즉 발전기와 제어장치 등 핵심 부품이 들어가 있는 박스 형태의 나셀(Nacelle)과 40m 크기의 거대한 날개(블레이드)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이곳에서 작업 중이던 노동자 세 명이 사망했다. 경북경찰청 중대재해수사계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현장이 상공에 있기 때문에 접근하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 고공에 올라가 감식을 할 수 없어서 경찰과 노동청, 업체(발전사)가 현장을 어떻게 (땅으로) 내려놓을지를 두고 계속 논의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사건이 일어난 지 열흘째인 4월1일, 현장은 여전히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하늘 위에 있다. 사망 원인을 밝힐 수 있는 현장 검시도 시작하지 못했다.
그날 일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미스터리’라고 말했다. 3월23일, 유지·보수 업체 소속 작업자 세 명이 경북 영덕군 영덕읍 창포리에 위치한 풍력발전단지를 찾았다. 한 명은 정규직 노동자이고, 다른 두 명은 기간제 계약직 노동자로 모두 40~50대였다. 일반적으로 풍력발전은 가을과 겨울 등 바람이 많이 불어 발전량이 많은 계절에는 보수 작업을 거의 하지 않는다. “수리 작업에 사용하는 재료도 추운 날에는 딱딱하게 굳어 쓸 수가 없다(보수업체 ㄱ씨).” 1년 중 6개월이 비수기다. 정규직 직원보다 계약직 노동자가 흔하다.
세 사람이 방문한 39.6MW 규모의 영덕 풍력발전단지는 2004년 최초로 준공됐으며 발전기 총 24기를 운영한다. 통상 설계수명인 20여 년을 넘긴 이곳에서는 2월2일, 21호 발전기의 기둥(타워)이 꺾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순간 최대 초속은 12.4m/s로 가동 중지 기준인 20m/s에는 미치지 않았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거대한 구조물이 균형을 잃고 종이 빨대처럼 접히며 도로 위에 쓰러지는 모습이 공개됐다. 인근 마을 주민들 사이에 불안감이 퍼졌다. 정확한 사고 원인도 알 수 없었다.
타워 꺾임 사고가 발생한 이후 2월 중 보름여간 특별안전점검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발전기 6기에서 블레이드 미세균열 수리와 블레이드 관련 부품 교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3월23일 화재 사건 당일, 세 작업자는 미세균열이 발견된 19호기의 블레이드를 수리하기 위해 투입되었다.
통상 세 사람이 한 팀을 이룬다. 블레이드를 3시 혹은 9시 방향으로 수평 고정하고, 두 사람은 하네스에 연결한 안전줄(로프)에 의지해 균열이 생긴 블레이드를 고친다. 나머지 한 사람은 나셀에서 로프를 연결한 고정 앵커를 살피며 작업을 지원한다. 블레이드 균열 수리는 표면을 도장(페인트칠)하는 비교적 간단한 작업에 그칠 때도 있지만, 낙뢰나 강한 비바람에 의해 손상이 심한 경우에는 블레이드 내부에 사람이 직접 들어가기도 한다. 손상된 부분에 유리섬유(Glass fiber)를 여러 겹 쌓아, 주제(base)와 이를 굳히는 경화제를 섞은 에폭시로 돌처럼 단단히 고정하는 공정 등을 한다.
주제와 경화제를 혼합하면 액체 상태의 에폭시가 고체가 되면서 뜨거운 열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화재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을까? 업계 관계자마다 말이 달랐다. ‘조금 뜨거울 뿐’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수리·보수업체 ‘자라윈드’의 박승희 대표는 “주제와 경화제를 혼합할 때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면서 고열이 생긴다. 이때 혼합 비율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거나 혼합물 양이 매우 많을 경우, 흡사 전기차 배터리의 ‘열폭주’ 현상처럼 순식간에 고열이 발생하면서 화재로 이어질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유해 분진이 많은 밀폐된 블레이드 공간 특성상, 사소한 변수도 재난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
그 외에도 의심되는 화재 원인들이 있다. 에폭시를 연마(샌딩)할 때 발생하는 마찰열이 발화원이 됐을 수도, 에폭시 공정 중 발생하는 유해가스가 농축되어 내부에서 폭발했을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한번 불이 붙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기 쉽다는 점이다. 풍력터빈에는 플라스틱 성분인 유리섬유 강화수지, PVC 폼인 발포 단열재, 전선 등 가연성 물질이 많이 사용되고, 나셀에는 기계 부품 및 윤활에 필요한 대량의 오일이 있어 2차 화재를 일으키기도 쉽다. 게다가 발전기 꼭대기에서 불이 날 경우 소방 작업 자체가 쉽지 않다.
사고 당일, 소방 당국에 신고가 들어온 시각은 오후 1시11분경. 한 사람은 발전기 아래에 쓰러져 있었고, 두 사람은 블레이드 내부에서 발견됐다. 위급 상황 시 사용할 수 있는 대피용 하강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지만 사용한 흔적은 없었다. 이를 사용할 수 없을 만큼 불길이 빠르게 번졌거나 하강기 이용에 대한 안전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소방법 규제를 받지 않는 단순 ‘구조물’


보수업체 관계자 ㄱ씨는 해당 발전기가 한 달여간 작동하지 않아 잔류 전력이 없는 “완전히 시동이 꺼진 차량” 같은 상태였다는 점을 중요하게 봤다. 전기적 결함까지 배제하고 나면 “사고 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더욱 알 수가 없다. 화재 원인은 완전히 물음표”라는 것이다.
2월 타워 꺾임 사고 이후 영덕 풍력발전단지의 발전기들은 멈춰 있던 상태다. 그해 6월, 발전사는 해외 안전 인증기관의 진단을 받아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받기도 했다. 운영사인 영덕풍력발전 관계자는 〈시사IN〉과 한 통화에서 “해당 안전 인증 결과를 언론에 공개할 순 없지만, 경찰에 관련 서류를 제출했으며 그 외에도 조사를 돕기 위해 성실히 협력하고 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풍력발전기 화재는 드문 일이 아니다. 2023년 국제 학술지 〈헬리용(Heliyon)〉에 게재된 ‘풍력터빈의 화재 위험 평가 및 화재 방지 조치(Fire risk assessments and fire protection measures for wind turbines)’ 연구논문에 인용된, 풍력발전기 사고 데이터 기관 CWIF(Caithness Windfarm Information Forum)의 통계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23년 3월까지 보고된 풍력발전기 사고는 3287건으로 연평균 143건 수준이다. 사고 원인의 15%가 화재인데, 이는 블레이드 고장(19%)에 이어 두 번째로 흔한 사고 원인이다. 화재는 주로 낙뢰, 전기설비 고장, 기계 결함, 유지보수 작업 과정에서 발생한다.
2023년 미국 뉴욕주 렉스빌에 설치된 풍력발전단지에서는 낙뢰로 인해 블레이드 하나에 불이 났다. 그 과정에서 불타는 조각들이 121m 높이에 있는 나셀에 옮겨붙으며 터빈이 완전히 파손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화재로 터빈 내부의 유리섬유 등 오염물질이 주변 숲과 농경지, 마을까지 날아가 2차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같은 해 독일에서는 발전기 기계 고장 탓에, 덴마크에서는 전기회로 고장으로 화재가 났으며,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서는 유지보수 작업을 하던 중 전기 고장으로 화재가 발생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 폭염 때문에 자동 안전 시스템이 중단된 상태여서 사건은 여러 의문을 남겼다. 유지보수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고는 사람이 개입되어 화재의 발화원이 될 만한 변수가 많다. 이번 영덕 풍력발전 사고도 마찬가지다 .
해당 논문에 따르면 현재 유럽에는 풍력터빈에 대한 화재 예방 조치를 명시적으로 규정한 일반 지침이 없다. 다만, 유럽연합의 기계 및 장비 전반에 대한 안전 요건 지침(Directive 2006/42/EC)이나 풍력발전기의 화재 감지·진압 설비 및 모니터링 장치에 대한 구체적 기준을 제시한 유럽 소방협회연합의 화재방호조치(CFPA-E Guideline No 22:2022 F), 미국 화재방지협회가 만든 풍력터빈 안전 권장 사항(NFPA 850) 등이 업계 내에 통용된다.
예컨대 유럽 소방협회연합의 가이드라인은 조기 화재 탐지 및 이상 감시 모니터링 시스템, 소화 설비 도입 등을 명시하고 있다.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유럽 보험사들이 설비 도입 여부를 업체의 준수 기준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유럽 내 많은 풍력발전기에는 이 같은 설비가 갖춰져 있다.
국내의 경우, 현행 전기안전관리법 및 시행령에 따라 풍력발전 설비는 3년 주기로 안전검사를 받는다. 한국전기안전공사가 수행하는 이 검사는 주로 전기 설비를 대상으로 하는 데다, 검사 인력이 전국에 45명에 불과해 검사 품질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게다가 풍력발전기는 소방시설법 적용을 받지 않는 구조물로 분류돼 있어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 대상에서 제외된다. 안전 관련 설비는 업체에서 자체적으로 판단해 마련하는 것이 전부다. ‘한국전기설비규정(KEC)’에서는 500kW 이상 풍력발전기의 경우, 나셀 내부에 화재가 발생하면 이를 감지하고 소화할 수 있는 ‘화재방호시설설비’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그 규정에 구체적인 기술 및 성능 기준이 제시되어 있지 않아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노후화된 풍력발전기가 문제?


풍력발전기가 설계수명을 넘겨 ‘노후화’된 것이 안전사고의 근본 원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번 사고가 일어난 풍력발전기도 통상 알려진 설계수명 20년을 넘긴 상태였다. 최근 사고를 계기로 노후화된 발전기를 폐기·해체하자는 주장도 있다. 최근 설계수명에 도달한 풍력발전기가 늘어나면서 전 세계적으로 풍력발전기 수명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고 있다.
오래된 풍력발전기가 꼭 위험한 것만은 아니다. 유럽에서 풍력발전 역사가 가장 오래된 덴마크의 경우, 지난해 삼쇠·미델그룬덴·뉘스테드 풍력발전단지 추가 운영을 승인했다. 세 곳 중 가장 오래된 미델그룬덴은 2000년에 건설됐다. 25년간 추가 운영을 승인받아 총 50년간 운영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됐다. 2003년에 완공된 뉘스테드는 2022년 발전기 1기의 타워가 무너지는 사고로 노후 발전기에 대한 우려를 일으킨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후 사고 원인을 분석해 문제점을 보강하고 안전조치를 강화함으로써 10년간 추가로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연장 운영을 위해 세 곳 모두 까다로운 검증 절차를 거쳤다. 핵심 부품들이 앞으로 몇 년을 더 버틸 수 있는지 하중 분석 데이터를 제출하고, 설계 당시에 상정했던 바람의 세기 등 환경 조건이 발전기가 운영되는 20여 년간 어떠했는지 비교해 기계적 피로도를 살폈다. 초음파 검사로 타워 등 기초 하부구조물의 균열과 부식 상태를 점검하고, 블레이드 수리 이력 등을 상세히 살피는 종합 영향평가서와 기술보고서를 덴마크 에너지청(DEA)에 제출했다.
발전기의 수명은 위험 예방과 관리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블레이드 수리 전문업체 ‘케이윈드’의 이성훈 연구소장은 “현장에서 보면 손상이 심한 상태로 운전하는 발전기가 많이 있다”라고 말했다. “해상이나 바람이 강한 지역에 세워진 발전기, 블레이드는 마모가 빠르게 일어나는데도 일괄적으로 3년에 한 번만 전기 안전 검사를 하면 안전 기준을 통과한다. 보통 유럽에서는 2년 주기로 블레이드 의무 검사를 하는데 한국은 점검 주기가 길어지고 강제성이 없어 발전사의 자체 매뉴얼에 따를 뿐이다.”
한국풍력산업협회 자료에 따르면 2030년에 20여 년의 설계수명을 넘기는 풍력발전기는 전체 885기 중 185기로, 약 20.9%에 이른다. 이들에 대한 효율적이고 안전한 위험 예방·관리책이 박한 과제로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