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기로 했습니다〉(김신지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짐승일기〉(김지승 지음, 난다 펴냄)‘5년 다이어리’는 페이지마다 맨 위에 날짜가 쓰여 있다. 아래로는 빈칸 다섯 개 옆에 연도를 쓸 수 있게 구성돼 있다. “올해 1월1일부터 한 장씩 넘겨가며 12월31일까지 일기를 쓴 후, 다시 앞으로 돌아와 지난해 1월1일에 쓴 일기 바로 아래 새 일기를 쓸 수 있는 구조”다. 김신지 작가가 쓴 〈기록하기로 했습니다〉(휴머니스트, 2021)를 읽다가 존재를 알게 됐다. “오늘의 내가 무사히 하루를 살아냈으니, 미래의 나도 부디 괜찮기를 바란다고 안부를 묻는 일이기도 합니다”라는 문장에 밑줄을 긋다가 어쩐지 기도하는 마음이 되었다. 나도 몰랐던 내 안의 ‘생의 의지’가 낯설었다.
미래라니. 그런 것이 내게도 있을까. 내가 감히 그것을 믿어도 될까. 2025년 6월1일 5년 다이어리를 시작했다. 두 번째 유방암 수술을 마치고 퇴원한 지 2주 되던 때였다. 5년 전 첫 번째 수술을 받을 때와 달리, 나는 수술 이외의 의학적 처치(항암·방사선 등)를 받지 않기로 동거인과의 충분한 논의 끝에 결심한 터였다. 병원에서 집에 돌아와 5년 다이어리의 좁은 줄간격 사이로 오랜만에 손글씨를 써 넣으며 낑낑대고 있으니 동거인이 무슨 노트인지 궁금해했다. “일단 5년은 더 살아보려고”라고 답하며 킥킥댔더니 그가 이렇게 답했다. “몇 권 더 사야겠네.”
2025년은 그 이전과는 달랐다. 오랜만에 취재팀에 복귀하며 나는 다소 들떠 있었다. 그해 2월 건강보험공단에서 ‘암 산정특례 적용기간 종료 안내’를 받았다. 마치 완치 판정서 같아서 그 문자를 보고 또 봤다. 암처럼 고액의 비용과 장기간의 치료가 요구되는 질병의 경우 환자는 산정특례 제도에 따라 5년간 5%의 진료비만 부담하면 된다. 3개월마다 맞아야 했던 주사제 졸라덱스는 49만3841원이지만, 산정특례 대상자는 2만5992원에 맞을 수 있다. 먹는 항암제인 타목시펜은 3개월치를 처방받고 2500원만 냈다. 나는 내 목숨을 공동체에 빚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산정특례 제도가 없었다면 계속 치료받을 수 있었을까?
5년은 암 환자에게 중요한 숫자다. 암 치료 후 재발 및 전이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시기가 ‘통계적으로’ 5년 이내다. 그래서 5년간 재발이나 전이가 없으면 관해(Remission) 판정을 받는다. 관해는 완치와는 다른 말이지만, 환자에게는 완치나 다름없는 말이기도 하다. 완치는 언제나 유예된 약속이고, 나는 암과 사는 일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물론 그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유방암 환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흠모해 마지 않는 작가인 수전 손태그, 오드리 로드, 아니 에르노와 공통점이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들 역시 모두 유방암 환자였다.
〈그해 봄의 불확실성〉 〈어떻게 지내요?〉 같은 작품으로 국내에 알려져 있는 미국의 소설가 시그리드 누네즈는 2년 남짓 수전 손태그와 함께 살았다. 수전이 마흔셋, 그가 스물다섯일 때였다. 당시 유방암으로 절제술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수전은 병치레하느라 답장하지 못한 편지가 쌓여서 처리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편집자 몇 명의 추천으로 시그리드 누네즈가 그 일을 맡게 되었고, 시그리드는 그의 아들 데이비드 리프와 곧 연인 사이가 되었다. ‘수전 손택을 회상하며’라는 부제가 붙은 〈우리가 사는 방식〉(코쿤북스, 2021)은 그 시간을 추억하며 쓴 책이다.
시그리드 누네즈에게 수전 손태그는 ‘부끄러워하기’를 거부한 사람이었다. 수전은 가까운 이들에게 셔츠를 들어올려 가슴 절개 흉터를 보여주곤 했다. “대단하지 않아? 흉측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냥 삭제된 거랑 똑같아”라고 말하면서. ‘빌어먹을’ 가슴을 가지고 살면서 좋았던 기억은 거의 없지만 나 역시 수술 이후 상처를 볼 때마다 내가 제법 대견하다고 느낀다. 혹은 그렇게 느끼려고 노력한다. ‘와, 내가 이걸 견뎠어’라고 감탄하면서. 유방암 치료 과정에서 가장 쉬운 일이었던 외과 수술이 남긴 자국은 몸에 남은 ‘병의 증거’라 계속 내가 환자임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러한 증거를 양쪽 가슴 모두에 지닌 사람이 되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돼
‘아픈 몸’이 집과 병원이 아닌 곳에서 공적인 활동을 할 때, 대화는 자주 금기로 흐른다. 왜 이렇게 하지 말라는 게 많을까? 나 역시 환자가 아닐 때는 아픈 사람들에게 비슷한 말을 해왔다. “괜찮냐”라는 의미 없는 질문이 걱정인 줄 알았다. 건강한 사람도 건강하지 않은 사람도 모든 문제에서 괜찮거나, 괜찮지 않을 수 없는데. 하지만 모두에게는 아직 살아 있기 때문에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먹고사는 기초적인 일은 말할 것도 없다. 몸은 나빠지기만 할 것이고, 다음은 쉽게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아픈 몸으로 살면서 알게 된 모든 것은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돼.
5년 전 치료 과정에서 적어둔 메모를 들춰보려다 황급히 덮는다. 나는 그 메모들을 여전히 제대로 보지 못한다. 마치 종이가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다. 당시 찍은 사진들을 ‘n년 전 오늘’이라며 사진 애플리케이션이 띄워줄 때면 몇 번이고 처음처럼 놀란다. 참혹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내 얼굴이 낯설다. 지나고 보니 더 이해할 수 없다. 이렇게 아팠는데 어떻게 안 죽었을까. 그리고 그 시간들을 통과해온 오늘, 나는 지금의 몸 상태를 설명할 말을 쉽게 고르지 못한다. 아픈데 안 아프다? 회복 중이다? 모든 말이 다 틀렸다. 나를 설명할 정확한 언어가 없다는 사실은 사람을 외로움 속에 처박는다.
김지승 작가의 〈짐승일기〉(난다, 2022)는 고통을 언어화하려는 시도에서 자꾸만 미끄러지고 마는 경험이 담긴 기록이다. 소외감 속에서 방황하던 때, 언젠가 머물렀던 절의 주지 스님이 보낸 편지에서 김지승 작가는 ‘볼 관(觀)’ 자를 건져낸다. “불교에서 ‘관’은 지혜로 경계를 비추어 본다는 의미이다. 관심은 마음을 그리 보며 바르게 살핀다는 의미가 되겠지. 앞으로 세상을 잘 관하여 길 잃지 말고, 인연이 닿거든 또 보자.”
병이랑 싸우기 싫고(‘투병’), 병을 다스리고 싶지도 않으며(‘치병’), 그렇다고 ‘반려병’이라고 부르기에 내 경험은 너무 무거웠다. 그런데 김지승 작가가 찾아낸 ‘관병(觀病)’이라는 말이 내 시야를 또렷하게 만들었다. “부족한 지혜로 병의 경계를 바르게 살펴보는 게 맞지, 옳지 지금 그러고 있지. 헤아리고 살피며 관계하는 대상이니 관병이기도 하지.”
2025년 여름의 일기장은 자주 ‘아프다’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그러나 그런 무력함 속에서도 그 짧은 기록 덕분에 아름다운 날들이 있음을 떠올린다. 동거인이 꽃을 사왔다고 적은 어느 날, 무슨 날이냐고 묻는 내게 동거인은 “너 안 씻은 날”이라고 답했다. 우리는 실없이 한참 웃었다고도 적혀 있다. 나는 앞으로 ‘5년 다이어리’ 몇 권을 더 쓸 수 있을까. 관병 중에 쓴 일기를 들춰보다 보면 조금 더 이 병과 잘 지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