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는 선거관리가 큰 쟁점이 될 전망이다. 공화당과 트럼프 정부는 2020년 대선 재수사와 선거법 개정 시도를 통해 선거 과정 전반에 대한 불신과 혼란을 노리고 있다.“불법적으로 투표한 수백만 명을 제외하면 대중 투표에서도 승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선거인단 승리로 자신이 당선된 2016년 선거에서도 대중 투표수가 상대 후보보다 280만 표 적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2018년에는 공화당이 하원의원 선거에서 패배하자 “어떤 사람들이 모자를 바꿔 쓰고 다시 투표한다”라면서 불법 투표 가능성을 언급했다. 트럼프는 2020년 대통령선거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를 따르는 시위대가 의사당을 점거하는 폭동 사태가 벌어졌다.
트럼프는 패배를 모르는, 아니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리고 2024년 진짜 승리로 다시 돌아온 트럼프의 앞에는 올해 중간선거와 2년 뒤 대통령선거가 남아 있다. 올해 초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대선 선거 관리자들을 언급하며 “곧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해 기소될 것이다”라고 불을 지폈다. 이에 호응하며 연방수사국은 1월에 2020년 대선 격전지 조지아주의 풀턴 선거관리위원회에서 160상자 분량의 자료를 압수했고, 또 다른 격전지였던 애리조나주 매리코파의 선거 자료를 확보하고 조사를 시작했다.
연방수사국의 수사 개시와 더불어 지난 2월 연방 하원에서 ‘미국 유권자 자격 보호법(SAVE America Act, 이하 ‘선거법’)’이 공화당 주도로 통과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법에 서명하기 전에는 어떤 법안에도 서명하지 않겠다’라면서 최우선 순위 법안임을 강조한다.
트럼프는 선거법 개정안을 “시민권 증명, 유권자 신분증, 우편투표 금지”로 설명한다. 즉, 현재 50개 주 각각 달리 정한 유권자 등록, 신분 증명, 투표 방법 등을 연방정부 기준에 맞춰 통일하고자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민등록번호를 기준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유권자 정보를 관리하는 우리나라 기준에서는 당연한 내용이지만, 미국의 선거에선 완전히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미국은 대선을 포함해 모든 선거를 주별 선거관리위원회가 책임지고, 유권자 명부도 각 주에서만 보유하고 있다. 반면 유권자 기준인 시민권 정보는 연방정부에서만 관리하고 있고, 유권자 명부의 시민권 확인 과정과 절차도 주별로 천차만별이다.
선거법 개정안은 각 주의 유권자 명부를 연방정부에 제출하면 정부가 직접 시민권 유무를 확인해주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트럼프 정부가 전국의 유권자 명부를 확보해 공화당에 유리하게 활용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품고 있다. 더욱 심각한 내용은 유권자 신분증 확인 의무화 조항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미국 시민 대부분이 소지한 운전면허증으로는 더 이상 투표할 수 없으며, 50%가량만 발급받은 여권이나 따로 신청이 필요한 출생증명서로 신분 증명이 대체된다. 여권 신규 발급은 165달러(약 25만원), 출생증명서는 최소 15달러(약 2만2000원)의 비용이 드는 데다 기간도 3주 넘게 걸려 유권자 등록의 큰 방해 요소가 된다.
브레넌 정의 센터는 미국 시민의 9%에 해당하는 약 2130만명이 신분 증명 서류를 구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밝혔다. 특히 여권을 발급받지 않은 저소득층과 유색인종, 결혼해서 남편의 성으로 이름을 변경한 여성들이 적절한 서류를 갖추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뿐만 아니다. 이 센터의 연구에 따르면 우편투표가 금지되면 유권자의 16%가 투표를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인 척 슈머는 이에 대해 “공화당에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이 큰, 투표 자격 있는 유권자들을 선거에서 배제하는 시스템이다”라고 비판했다.
선거법 밀어붙이고 투표소엔 ICE 올 수도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법이 개정되면 “공화당의 중간선거 승리를 보장할 것이다”라고 솔직하게 본심을 밝혔다. 민주당은 이 법안에 반대하지만 하원 투표 과정에서 이탈표가 발생했고, 일부 민주당원도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어 고민이 깊은 상황이다. 지난해 퓨리서치 센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성인 83%가 ‘투표할 때 연방정부가 발급한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 제시 의무화’에 동의했다. 시민권 서류 및 우편투표 방안은 찬반이 팽팽했지만, 선거관리에 대한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민주당 지지자는 “유권자 등록할 때 시민권자 여부를 (내가) 체크만 해서 제출하는데 주정부에서 다시 확인하는지는 의문”이라며 선거관리 전반에 투명성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선거관리의 불투명성과 별개로, 트럼프의 주장과 같은 부정투표가 광범위하게 이뤄지지는 않았다. 보수 성향의 헤리티지 재단은 부정투표 사례를 축적하고 있는데, 비시민권자가 유권자로 등록해 투표를 시도한 사례는 지난 50년간 단 41건에 그쳤다. 그리고 연방의회 조사에서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의 부정투표 건수는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연방수사국의 2020년 대선 재수사, 선거법 개정 시도를 통해 트럼프 정부는 선거 과정에 대한 불신과 혼란을 노리고 있다. 일련의 시도로 선거 과정에서 연방정부의 통제력을 강화하고, 공화당과 트럼프 정부에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것이다.
2020년 대선 투표 전에 트럼프는 지지자들에게 부정투표를 언급하며 “투표소에 가서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라고 행동을 촉구했다. 총기 휴대와 노출이 허용된 주에서는 권총과 무전기를 찬 지지자들이 투표를 위해 줄을 선 유권자들에게 질문하는 등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사병’으로 불리는 이민세관단속국(ICE)이 선거관리에 투입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민 단속 요원이 투표소 주변에 없을 거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라면서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대통령이 직접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상황에서 11월 중간선거는 선거관리가 가장 큰 쟁점이 될 전망이다. 트럼프는 〈로이터〉와 한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이룬 업적을 생각하면, 선거를 치를 필요조차 없다”라고 말해 중간선거 자체를 취소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백악관은 대통령의 말이 ‘농담’이라고 해명했지만, 민주주의적 절차가 아니라 “승리”만을 원했던 대통령의 말을 그냥 농담으로 흘려듣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