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 곳곳에서 산불은 일상이다. 건수보다는 건당 피해 면적이 걱정스럽다. 기후변화 시대에 폭염이 늘면서, 산불을 키우는 가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3월22일, 조용하던 일요일 오후. 초등학생 자녀의 자전거 연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갑자기 헬리콥터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빨간 물체를 단 채 머리 위를 낮게 날더니 몇 번이나 왕복 비행을 했다. 평소 헬리콥터를 거의 볼 수 없는 동네인데 별스럽다고 생각했다. 한참 뒤 휴대전화를 보니 인근 산에 불이 났다는 안전 안내문자가 와 있었다. 다행히 초반에 진압해 큰 문제는 없다고 했다.
3월23일 오후, 이번에는 한창 일하던 중 속보가 떴다. 경북 영덕의 풍력발전단지에서 풍력발전기에 불이 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이 불이 산에 옮겨붙어 확산하고 있다고 했다. 산불이 원래 이렇게 잦았나. 산림청 ‘실시간 산불 정보’에 들어가 봤다. 일단 놀란 건 당일 발생한 산불이 한 건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7건이라고 떴다. 북쪽 비무장지대부터 남쪽 통영까지 지역도 다양했다. 이미 진화한 산불은 세 건이었고, 아직 진화 중인 산불이 네 건이었다. 영덕 산불은 한창 진화 중이었다.
도심에 사는 사람은 뉴스에서나 산불을 접한다. 하지만 겨울과 봄 사이에 산불은 국토 곳곳에서 일상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3월23일까지 발생한 산불은 총 206건이다. 3월23일은 올해의 82번째 날이니, 하루 평균 2.5회 산불이 발생했다는 뜻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산불 건수 역시 223건으로 비슷했다. 올해의 경우 대부분 초기 대응 과정에서 진화했기에 본격적인 산불로 번지지 않았지만, 일곱 건은 산불 1단계 또는 2단계로 규모가 커지면서 본격적인 피해를 냈다. 3월22일 직접 체감한 산불은 규모가 작아서인지 기록에 나오지도 않았다. 헬리콥터가 불을 끄러 요란하게 오갔는데도 그렇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작은 산불까지 치면 실제 산불 횟수는 더 많다는 뜻이다.
산림청의 ‘10년간 산불 발생 현황’ 통계를 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경향을 볼 수 있다. 최근 10년 사이 산불 발생 건수는 큰 패턴을 찾기 어렵다. 매년 200~700여 건 사이를 오르내리는데 시간에 따라 늘거나 주는 경향은 보이지 않는다. 평균을 내면 연 500여 건이고, 2000년대 이후로는 줄곧 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피해 면적은 조금 걱정스럽다. 보기에 따라 증가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1970년대 이후 10년 단위로 나눠 발생 현황을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2020년대의 피해 면적은 과거 어느 때보다 압도적으로 크다. 물론 2025년 3월, 경북을 중심으로 국토 남서부에서 역대 최대 규모로 발생했던 산불의 영향이 크다. 서울 면적의 1.7배에 해당하는 10만 헥타르(㏊) 이상의 숲이 불에 탔고 사망자 30여 명을 발생시켰다. 특히 지난해 3월22일 경북 의성에서 발생해 동쪽으로 동해안까지 일주일 이상 번진 산불은, 국내에서 단일 산불로는 가장 넓은 면적에 피해를 입혔다. 이 산불 하나가 거의 10만㏊의 산을 태웠다. 전 세계적으로도 주목받아서 올해 3월23일 세계 기상의 날을 맞아 세계기상기구(WMO)가 펴낸 ‘2025 지구 기후 현황 보고서’에 ‘2025년 전 지구에 영향을 끼친 대표적 극한 기상 및 기후 현상’ 16건 중 하나로 언급됐다. 산불로는 1월 미국 캘리포니아 산불 외에 유일하게 거론됐다.

올해는 1월부터 심상치 않았다


흔히 피해 면적 기준으로 100㏊ 이상일 경우 대형 산불, 1000㏊ 이상일 경우 초대형 산불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1만㏊ 이상의 매우 큰 산불이 갑자기 발생하는 사례가 최근 몇 년 사이에 늘고 있다. 지난해 경북에서 발생한 산불이 대표적이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이 산불 한 건은 1996년 이후 29년간 누적 산불 피해 면적보다 더 넓은 지역에 피해를 안겼다. 캐나다도 비슷하다. 2023년 산불이 유독 평소보다 월등히 넓은 면적을 태웠다. 단지 일회성 사건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2024~2025년 역시 2023년에 준하는 수준으로 넓은 면적을 태우며 지속적으로 큰 피해를 경험하고 있다. 캐나다 산불진화기관연합(CIFFC) 통계를 보면, 최근 산불 횟수는 1980년대에 비해 늘지 않았는데(오히려 줄었다) 피해 면적이 급격히 늘어났다. 산불 한 건당 피해 면적이 넓어졌다는 뜻이다.
지구 전체로는 극단적인 규모의 초대형 산불 발생 빈도와 강도가 증가했다는 연구도 있고, 반대로 이를 반박하는 결과도 있다. 확실한 것은, 과거에 없던 극단적 산불이 최근 수년 사이에 몇몇 사례를 통해 등장했고, 한국 역시 이를 체험한 나라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산불 상당수는 사람의 부주의로 발생한다. 하지만 피해를 키우는 것은 자연적 요인인 기후다. 특히 건조한 기상 환경이 영향을 미친다. 큰 산불이 이어진 지난해 3월은 강수량이 평소의 3분의 2 남짓에 불과했다. 산불이 집중된 대구·경북·경남 등지는 좀 더 건조해서 평소의 3분의 2에도 미치지 못했다. 올해 역시 지난해와 비슷하게 건조한 상태다. 3월23일 기준 국가가뭄정보포털에 따르면 전국 62개 관측소의 최근 3개월 누적 강수량 평균은 평년 대비 61.4% 수준에 불과하다. 그나마 2월 중순까진 45%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조금 개선된 상황이다.
올해는 1월부터 심상치 않았다. 1973년 이후 역대 두 번째로 강수량이 적은 1월을 보냈다. 기상청 기상자료개방포털에서 1973년 1월1일 이후 54년간의 일 강수량 데이터를 받아 분석해보았다. 전국 62개 관측소의 올해 1월 하루 평균 강수량은 0.13㎜에 불과했다. 월 단위로 환산하면 평균 4㎜ 남짓 내린 수준이다. 최근 30년(1991~2020년) 평균(약 26㎜)의 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그림 1〉 참조). 2월은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최근 30년 평균보다 한참 부족했다. 1, 2월 합쳐서는 역대 네 번째로 적었다. 게다가 1~2월 강수량 및 겨울 강수일 데이터를 보면 최근 수년 사이에는 평년보다 건조한 해가 많았다(〈그림 2〉 참조).

한국의 겨울과 봄은 원래 항상 대단히 건조한 계절이다. 연중 가장 산불에 취약한 환경이다. 정부도 이 사실을 잘 알아서 이 기간 산불관리에 총력을 기울인다. 올해도 1월20일부터 5월15일까지는 ‘산불조심기간’으로 지정돼 있다.
이제까지 이번 이야기에 기후변화는 언급하지 않았다. 조금만 특이한 기후현상(가뭄, 산불 발생 또는 증가)이 나타나도 모두 기후와 연관 짓는 주장이 많다. 하지만 이는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니 스트레스를 조심하자’고 하는 것만큼이나 공허하고 입증하기 힘든 이야기다. 관련이 없다는 게 아니라, 세밀하게 봐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하나 보자. 우선 가뭄.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가뭄 자체가 단독 재해가 아닌 경우가 많다. 폭염과 가뭄이 앞뒤로 이어지며 급격한 복합 재해를 형성할 때가 많다. 날씨가 덥더니 비까지 안 내려서 고생하기도 하고(폭염 뒤 가뭄), 반대로 비가 안 오더니 더위가 겹치기도 한다(가뭄 뒤 폭염). 예상욱 이화여대 교수팀이 지난 3월 초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면, 특이하게도 이 두 복합 재해 가운데 덥다가 비까지 사라지는(폭염 뒤 가뭄) 복합 재해가 2000년대 이후 급증했다. 지구 평균기온이 1℃ 상승할 때 복합 재해 발생이 8배까지 증가했다. 반면 ‘가뭄 뒤 폭염’ 유형은 증가 정도가 훨씬 완만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육지와 대기 사이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이 변한 것이 그 원인이다. 예를 들어 폭염이 발생하면 지표면이 뜨거워지고 토양이 건조해진다. 이는 토양 증발에 의한 냉각 효과를 줄이고 결국 지표 온도를 상승시킨다. 달궈진 땅은 다시 대기를 가열해 폭염을 심화시킨다. 이런 피드백 작용이 반복되며 폭염과 가뭄이 서로를 부추기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이 피드백이 산림의 영향 등으로 느슨했지만, 2000년대 이후 토지 이용 변화와 맞물려 훨씬 강하게 작동하고 있으며, 복합 재해도 늘고 있다.

기후만으로 발생하는 재해는 아니지만


폭염은 기후변화의 대표적 결과다. 기후변화 시대에 폭염이 늘고, 이것이 가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예상할 수 있다. 산불은 어떨까. 지난해 말 중국 과학원이 발표한 논문을 보면, 기후변화가 심화시킨 폭염과 가뭄 등 극한 기상현상이 산불의 빈도와 강도까지 변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지난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발생한 초대형 산불을 분석했다. 그 결과 극심한 가뭄은 이런 초대형 산불 확률을 75% 증가시켰고, 고온이 겹치면 210%까지 크게 높였다. 역설적인 부분은 가뭄 이전에 비가 많이 온 계절이 존재했던 것이 피해 규모가 커지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활발히 성장한 초목이, 건조한 계절에는 ‘불쏘시개’가 되어 화재 확률과 면적을 늘렸다.
변화무쌍한 한국의 계절을 떠올린다. 여름에 비가 집중된다. 한국의 여름비는 기후변화로 점점 빈도와 양이 늘고 있다. 이어 겨울과 봄에 극도로 건조한 날씨가 이어진다. 평년보다 더운 날은 증가하고 있고, 이는 복합 재해를 늘려 돌발 가뭄으로 이어지고 있다. 산불이 오직 기후만으로 발생하는 재해는 분명 아니다. 발생부터 진화, 평소 관리까지 사람이 개입할 여지가 많은 재해다. 하지만 기후위기 시대에 점점 관리하기 까다로운 재해가 되어가는 것만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