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에서 반려로, 반려 다음 우리는 함께 사는 존재를 무어라 부르게 될까요. 우리는 모두 ‘임시적’ 존재입니다. 나 아닌 존재를, 존재가 존재를 보듬는 순간들을 모았습니다.봄 햇살이 좋아서 볕 좋은 목마다 고양이가 일광욕을 한다. 이맘때 산골 오지의 ‘다래나무집(처가에 큰 다래나무가 있어 붙은 별명이다)’은 장독대가 장관이다. 고양이들은 저마다 장독을 하나씩 차지한 채 제각각 일광욕을 하고 까무룩 낮잠을 잔다. 고양이들이 툭하면 항아리를 점령하는 바람에 다래나무집에서는 언제부턴가 장독대를 ‘냥독대’로 부르게 되었다. 냥독대야말로 고양이들의 취향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점프를 하면 쉽게 올라갈 수 있는 적당한 높이에다 햇볕을 받으면 장독 뚜껑(소래기)이 뜨끈한 온돌 역할을 해준다.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고양이들은 이곳에 올라 엉덩이 찜질을 하고, 체온 조절을 해가며 식빵까지 굽는다.
비가 내린 뒤에는 냥독대에 올라 물을 마시는 고양이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오목한 소래기에 고인 ‘감로수’를 녀석들이 그냥 지나칠 리 없다. 겨울에도 고양이들은 눈이 녹기를 기다렸다가 이른바 납설수(臘雪水, 눈 녹은 물)를 마시러 장독에 오르곤 한다. 고양이가 냥독대를 즐겨 찾는 이유 중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점도 있다. 장독대 주변에는 자작나무 세 그루와 벚나무, 감나무가 한 그루씩 서 있다. 이 나무에는 수시로 새들이 날아와 찍찍꼬꼬 수다를 떤다. 그럼 또 고양이들은 나무에서 가까운 항아리로 한 마리씩 올라와 캬르르 캭캭, 채터링(사냥감을 향해 내는 특유의 소리)을 한다. 한번은 고양이 여덟 마리가 장독대 맨 앞줄에 일렬로 앉아 새 구경을 하는 장면을 만난 적도 있다.
운 좋게 나는 이런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곤 했는데, 어떤 분은 이것이 믿기지 않는지 연출이거나 조작이라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고양이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고양이가 이렇게 나란히 앉아봐, 한다고 응 알았어 하면서 순순히 협조할 녀석들이 아니란 걸 잘 알 터이다. 그건 고양이 조련사가 와도 어려운 일이다. 고양이는 풍경처럼 정지해 있지도, 인물처럼 기다려주지도 않는다. 아무리 재주가 좋은 사진가도 고양이 앞에서는 재능을 다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결국 냥독대 사진은 새와 나무가 연출한 것이며, 때마침 고양이가 거기 있었고, 우연히 그 옆에 있던 내가 셔터를 눌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10여 년 전, 일본의 한 잡지에서 청탁을 받아 ‘한국의 고양이들’이란 제목으로 기사를 쓴 적이 있다. 당시 편집자에 따르면 일본 독자들이 가장 관심을 보인 사진이 장독대와 고양이가 어우러진 풍경이었다. 4년 전 타이완에서 열린 〈세계고양이박람회〉 사진전에서도 주최 측이 가장 먼저 요청한 사진이 냥독대 사진이었다. 아무래도 그들의 눈에 장독대와 고양이는 색다른 이국적 풍경일 테고, 우리에게는 고향의 정서가 더해진 푸근하고 정감 있는 풍경일 것이다.
이맘때 다래나무집 냥독대는 벚꽃이 어우러져 운치를 더한다. 말 그대로 꽃피는 냥독대 풍경이다. 장독대와 고양이는 언제나 묘한 어울림을 준다. 꽃이 피면 피는 대로, 눈이 오면 오는 대로, 가을에는 단풍 배경이 좋았고, 여름에는 녹음이 우거져 좋았다. 고양이들의 자연친화적 캣타워이자 빵굼터이고, 놀이터이며 약수터인 냥독대. 가끔은 그 위에서 고양이들이 우다다를 하는 바람에 소래기가 몇 개 깨지기도 했지만, 다래나무집 식구들은 깨진 소래기보다 언제나 고양이가 다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