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대구가 떠올랐다. 국민의힘이 공천 논란으로 내홍을 겪는 사이, 김부겸 전 총리가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나흘간, 대구시 곳곳을 돌며 민심을 읽었다.“어떻게 보면 대구 사람은 바보라예.” 4월9일 대구시 동성로에서 만난 택시 운전사 정송수씨(64)의 말이다. “매번 구관이 명관이라고, 국민의힘이라 하면 다 뽑아줬다는 거 아입니까. 그러다 보니 국민의힘 정치인들이 대구에 이렇게 신경을 좀 안 쓰지 않았나···.” 정씨는 대구 사람들이 배신감을 많이 느끼고 있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6·3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대구가 떠올랐다. 국민의힘의 낮은 지지율에도 ‘보수의 심장’이라는 대구만은 무리 없이 수성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여론조사 지지율 1위와 2위를 달리던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주호영 의원이 3월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예비경선에서 컷오프되고, 정계를 은퇴했던 김부겸 전 총리가 “저의 마지막 소명”이라며 3월30일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시사IN〉은 4월5일부터 8일까지 나흘간, 이번 지선에서 ‘가장 알 수 없는’ 지역이 된 대구를 찾았다. 대구시 최대 번화가인 동성로부터 대구 민심의 전통적 척도라 할 서문시장까지 시내 곳곳에서 10대부터 70대까지 대구 시민 30여 명의 목소리를 들었다. “대구 디비지나?”라는 한국 정치의 오래된 농담은 과거처럼 다시 그저 농담으로 남게 될까, 아니면 현실이 될까.
4월6일 월요일 오전, 대구 최대 규모의 시장으로 보수 정치인들이 즐겨 찾던 중구 서문시장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40년간 칼제비와 납작만두를 팔아온 양애란씨(60대)는 “확실히 이번 지방선거는 대구에 이목이 쏠린 것 같다. 안 그래도 며칠 전에 방송국에서도 취재 왔다”라고 말했다. 양씨는 “예전과 달리 김부겸 쪽으로 향하는 분위기가 있다. 김부겸이 옛날에 대구 수성구 의원일 때 잘하긴 잘했다”라면서도 “그래도 선거 막판 가서는 안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서는 “참 안타깝다. 대구시장 후보로 어느 한 사람을 밀어주면 좋을 텐데, 정치인들이 다 자기 욕심을 채우고 있지 않나? 따끔하게 한마디 해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서문시장에서 신발 가게를 운영하는 김동국씨(70대)도 국민의힘에 대한 답답함을 털어놓았다. “여론조사 보면 대구시장 후보로 이진숙 지지율이 제일 높았다. 내가 봐도 이진숙이 대구시장으론 제일 낫다. 걸프전 때 목숨 걸고 취재한 기자 출신 아닌가. 그런 사람이 진짜 정치를 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컷오프시키다니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장동혁이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 내세우려고 그런 것 같다.”
먹고살 길 요원한 대구 김씨는 “지금 대구 경기가 심각하게 안 좋다. 30년째 서문시장을 봐왔는데 이렇게 손님이 없는 경우는 없었다. 음식 파는 가게야 장사가 좀 되지, 공산품 파는 좌판은 일제히 장사 안 된다. 그나마 사람들 지나가는 바깥쪽만 점포가 차 있고, 건물 안쪽은 텅 빈 상태다”라고 말했다. 김씨와 대화를 나누는 30분 내내 신발을 산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그는 대구 경기가 나빠진 이유에 대해 “대구에 큰 기업이 없다. 일할 자리가 없으니, 청년들이 자꾸 서울·수도권으로 가고 장사도 안 되는 거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동국씨는 “민주당은 안 된다”라고 덧붙였다. “나랏빚이 1100조원인데 민주당 정부가 저렇게 국민 세금 써서 돈을 함부로 풀고 있지 않나. 민주당이 대구시장 잡아서는 안 된다.” 김씨 옆에 앉아 있던 이상종씨(60대) 역시 민주당에 부정적이었다. “경기가 어려운데 국민의힘은 민심을 못 읽고 있으니, 대구·경북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라면서도 “김부겸은 정치 은퇴한다고 이미 대구 집 팔고 서울로 가지 않았나. 사람들이 그게 오점이라 하더라. 자기 고향을 버린 셈이다”라고 비판했다.
4월6일 오후 대구시 수성구 신매시장. 이곳에서 만난 시민들의 얘기는 오전에 찾은 서문시장과는 또 달랐다. 수성구는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의 현재 지역구이자, 2016년 총선에서 김부겸 전 총리를 당선시킨 지역이기도 하다. 신매시장의 한 채소 가게 사장 박은주씨(64)는 “이 동네가 워낙에 빨간 당을 민다”라면서도 “뚜껑은 열어봐야 알겠지만, 이번에는 근소한 차이로 김부겸이 당선될 것 같다. 이재명 대통령이 요즘 잘하고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15년째 옷 가게를 운영 중인 박후남씨(57)는 “수성구는 김부겸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다. 이 동네가 원래 김부겸의 전 지역구 아닌가. 그때 참 잘했다. 시장 지하 주차장도 그때 설치됐다. 이번에도 잘할 거라 본다”라고 말했다. 족발집 사장인 박상욱씨(60) 역시 “김부겸이 수성구에서는 한 게 많으니까 아무래도 좀 유력하지 않나. 게다가 요즘은 젊은 친구들도 그렇고 예전과 달리 생각이 많이 바뀐 것 같다”라고 답했다. 박씨에게 지역구 국회의원인 주호영 의원의 대구시장 당선 가능성을 묻자 “대구시장이 되기엔 좀 약하지 않나 싶다”라고 말했다.
이곳에서도 대구 경기가 심각하게 나쁘다는 이야기는 빠지지 않고 나왔다. 아파트촌에 자리한 신매시장은 오후 3~5시께에도 한산했다. 시장에서 만난 조미경씨(57)는 “청년들이 대구에서 먹고살기 너무 힘들어졌다”라고 말했다. “포항에 포스코가 있듯 큰 지역마다 대기업이 있는데 대구에는 없다. 저도 애들 키우는 처지에서 청년들이 먹고살 길이 너무 없으니 걱정이다. 정치인들이 나서서 민간 대기업을 유치해야 하지 않겠나.” 앞서 만난 옷 가게 사장 박후남씨 역시 “여기서 15년간 장사를 했는데 큰길에 임대 나온 건 올해 처음 봤다. 오히려 코로나 때가 경기가 나았다. 돈을 막 풀어서 사람들이 공짜 돈 쓰러 나왔으니까. 요즘엔 장사가 진짜 안 된다”라고 말했다.
청년들의 생각은 어떨까. 중구에 있는 동성로는 대구시 최대 번화가로 젊은이들이 다수 모이는 곳이다. 4월7일 저녁 동성로 교보문고 건물 뒤편에서 만난 이소희씨(19)는 “대구에 청년이 일할 만한 일자리가 없다. 알바는 많은데 시급 같은 근무조건이 좋지 않다. 노동청에 신고해도 대처가 미흡하다. 서울은 알바 자리도 임금을 제대로 주고 노동청 대응이 확실하지 않나. 이럴 바엔 다들 서울로 가서 먹고사는 게 낫다고 보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김부겸 전 총리가 대구시장에 당선되긴 어렵다고 봤다. “저는 지지하지 않았지만, 대구에서는 지난 대선 때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에게 투표한 사람이 50%가 넘었다. 사람들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인근에서 만난 추은석씨(가명·24)와 권도연씨(19)는 각각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를 찍겠다”라고 답했다. 이유를 묻자 두 사람 다 입을 닫았다.
반면 경북대학교에 재학 중인 이석희씨(32)는 “이번에는 김부겸 전 총리가 대구시장에 당선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는 윤석열이 뭘 잘못했느냐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았는데, (윤석열이) 탄핵당한 데다 난장판이 된 국민의힘 모습을 보면서 일부는 돌아섰을 거다. 게다가 이재명 정부가 굉장히 실용적이지 않나. 이 정부와 함께라면 민주당 출신 시장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젊은 친구들이 좀 있다.” 이씨는 “대구가 지역 소득은 높지 않은데 신세계백화점 대구점 매출은 전국 백화점 중 10위권 안에 든다. 있는 사람만 계속 배를 불리는 기형적인 도시다. 이제는 (양질의 일자리를 줄 수 있는) 민간 기업체가 많이 들어와야 청년들이 떠나지 않을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민주당 시장이 영향력 발휘한다면…”‘지역 경제’와 ‘김부겸’. 대구 현지에서 만난 시민들과 대화 내용은 이 두 가지 키워드로 모아졌다. 침체 일로를 겪는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이번에는 다른 선택(김부겸 지지)을 해야 한다는 주장과 ‘그렇다고 민주당을 찍을 수 있나’라는 정서가 맞부딪쳤다. 그에 비해 국민의힘 후보들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옅게 분포했다.
4월8일 새벽, 김부겸 전 총리가 정청래 민주당 대표 등과 함께 대구시 북구의 매천시장을 찾았다. 정청래 대표는 이날 오전 대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열리는 현장 최고위원회를 위해 대구를 방문한 참이었다. 매천시장은 2022년 기준 공영 도매시장 가운데 전국 3위의 거래 규모(연간 약 1조2000억원)를 기록하는 곳이다. 각종 농산물을 판매하는 경매사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울려 퍼졌다. 시장을 방문한 상인과 배달 기사들은 김 전 총리와 정 대표 일행을 힐끔거리며 지나갔다.
“괜히 와서 일도 못하게 하노”라고 불만을 표출하던 배달 기사 심수용씨(가명·40대)는 김부겸이 될 것 같냐는 질문에는 뜻밖에도 “될 것 같다”라고 답했다. 심씨는 “민심이 돌아섰다. 홍준표 전 시장이니 뭐니 다 도망가뿔고 대구에 발전이 없지 않나. 가족이 공무원인데, 공무원들이 그렇게 말한다고 한다. 홍준표가 똥 싸놓고 도망가버렸다고”라고 말했다. 이곳에 물건을 떼러 왔다는 상인 김성호씨(59)는 김부겸 전 총리가 경매장을 오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말했다. “국민의힘 하는 거 보면 너무 못한다. 김부겸은 잘하지 않나. 지금 주변 사람들도 많이 돌아섰다.” 김씨는 대구시장 출마를 고집하는 국민의힘 이진숙 전 위원장에 대해서는 “이진숙은 싫다. 그런 사람이 대구를 우예 보고 여기 와서 한자리 해먹으려고 하나”라고 말했다.
이날 김부겸 전 총리는 목장갑과 파란색 조끼를 착용한 채 직접 딸기 상자를 나르고 배추 하역 작업을 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트럭 위에 올라 일을 하는 이들을 보며 직원들은 “허리를 더 숙여야지!” “일을 참 못하네”라고 장난스럽게 소리쳤다. 한 직원은 “힘들 때는 오지도 않고 선거할 때만 오는 게 맞나. 평상시에도 와서 살펴봐야 하는 거 아니냐”라며 옆 사람에게 속삭이기도 했다. 김 전 총리와 정청래 대표가 배추를 나르는 모습을 지켜보던 직원 김성숙씨(가명·62)는 “배추 나르는 일은 잘 못하지만, 이번에는 김부겸이 될 것 같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대구가 워낙 빨간 당을 지지하지만 분위기가 달라졌다. 배달 기사와 상인들이 여기 모여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곤 하는데, 빨간 당에서 파란 당으로 많이 넘어왔다. 이재명 대통령이 일을 잘하지 않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습이 보인다는 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