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처세대의 비명
“효(孝)의 본질은 자기희생이 아니라 사랑과 존중입니다.”
정순둘(사진)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4050세대가 겪는 고통의 본질은 인식과 현실의 괴리”라며 이같이 말했다. 정 교수는 부모 부양 인식 변화와 중장년 돌봄 정책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전문가로 대통령 직속 ‘함께 만드는 돌봄 사회’ 특별위원장 등을 지냈다. 정 교수는 “머리로는 ‘나만의 책임이 아니다’고 인식하면서도 몸은 여전히 혼자 감당하고 있는 게 지금 4050의 현실”이라며 “이 괴리가 마처세대를 정신적·경제적 벼랑으로 밀어내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Q : ‘부모 부양은 자녀 몫’이란 인식이 빠르게 줄고 있는데 현실은 왜 따라오지 못하나.
A : “내 책임이 아니라고 말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4050세대 입장에선 막상 내 부모가 쓰러지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혼자 끙끙 앓다 결국 직장을 그만두거나 스스로 무너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문제는 국가 시스템이 이런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통합돌봄이 시작됐지만 예산의 한계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혼자 독박’에 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


Q : 효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했는데.
A : “효가 잘못 각인돼 있다. 부모를 향한 사랑과 존중이 효의 본질인데, 어느 순간 자기 자신을 완전히 희생해야만 효도라는 왜곡된 관념이 자리 잡았다. 하다 하다 안 될 때 사회적 돌봄을 선택하는 건 불효가 아니다. 사전에 가족들끼리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도 필요하다. 요양에 대한 준비도 임종에 대한 준비처럼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한다.”


Q : 현금 지원보다 시간적인 유연성 확보가 더 절실한 복지라고 강조했는데.
A : “예상치 못한 가족의 질병에 부닥쳤을 때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전혀 마련돼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노부모 돌봄 휴가 개념은 아예 없다시피 하고, 설령 제도가 있다 해도 휴직 기간의 임금 보전이 없으면 실질적으로 쓸 수가 없다. 쉬긴 했는데 생계가 막막해지면 결국 아무도 못 쓰는 제도가 된다. 휴가를 낼 수 있는 권리만큼 그 기간의 소득을 어떻게 보전할지가 함께 논의돼야 한다.”


Q : 국가의 역할은 어떻게 확대돼야 하나.
A : “솔직해져야 한다. 국가가 돌봄을 다 책임지겠다는 말도 예산 없인 공허하다. 의료보험도, 장기요양도 결국 재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중요한 건 ‘중장년 복지’라는 프레임이 아니라 생애 주기 전체를 아우르는 접근이다. 청년도, 중년도, 노인도 각자의 시기에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 연령으로 잘라 특정 세대에게만 복지를 집중하는 방식은 이제 바꿔야 한다. 어떤 시기에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미리 알려주는 ‘내비게이터’ 역할을 국가와 지역사회가 함께 맡아야 한다.”


Q : 마처세대에게 지금 꼭 필요한 것은.
A : “나를 돌볼 권리다. 이 세대는 위로는 부모, 아래로는 자녀를 위해 자신을 소진해 왔다. 중년의 위기를 단순한 고통으로 볼 게 아니라 자아를 다시 묻는 ‘수퍼 사춘기’로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경제적 자립 못지않게 가족 외에 나를 지지해줄 커뮤니티와 사회적 관계망도 챙겨야 할 때다. 그런 시각의 전환이 있을 때 인생 2막의 돌파구도 비로소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