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을 명분으로 폐지했던 지구당이 사실상 부활한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비례대표 광역의원 수도 30명가량 늘어날 전망이다. 지방선거 선거구 획정 법정 시한 마지막 날인 17일 별다른 공론화 과정 없이 이뤄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합의의 결과다.
두 당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원내대표, 원내운영수석부대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간사가 참여하는 이른바 ‘3+3 회동’을 통한 협상 등을 거쳐 이런 내용을 발표했다. 여야는 합의에 이어 80분만에 정개특위 소위를 열어 일사천리로 관련 법안을 의결했다.
이번 합의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대목은 각 정당의 시·도당 하부 조직의 원활한 운영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당원협의회 또는 지역위원회에 사무소 1개를 둘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을 포함시킨 것이다. 현행법은 정당이 국회의원 지역구 등에 당원협의회를 둘 수 있도록 했지만 이를 위한 사무소는 둘 수 없게 규정하고 있다. 사무소는 시·도당까지만 가능하다. 하지만 현역 의원의 경우 지역구 내에 후원회 사무소를 둘 수 있다. 여기가 사실상 지구당에 준하는 당협 사무실 기능을 해왔다. 원외 지역위원장·당협위원장은 이 길이 막히면서 원내와의 형평성 논란이 있어왔다. 2024년 당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주장하며 논쟁이 일었으나 곧 수그러들었다.
이번엔 여야 간 공개 논의가 없었는데 합의문에 등장했다. ‘난데 없는 지구당 부활’이란 얘기가 나오는 까닭이다. 과거 지구당은 위원장이 직접 사무소를 운영하고 후원금을 모금하며 불법 정치 자금의 온상으로 악용됐단 비판을 받았다. 그러다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에서 불법 대선 자금을 트럭으로 받은 이른바 ‘차떼기 사건’이 터진 뒤 정치 개혁 차원에서 2004년 지구당은 전격 폐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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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떼기 사건’으로 없앤 지구당…22년 만에 되살렸다
정개특위 민주당 간사인 윤건영 의원은 “지역사무소 운영만 허용할 뿐 모금 관련 규정은 변경하지 않아 지구당 부활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민주당 원외지역위원장협의회는 성명을 통해 “22년 만에 지구당이 사실상 부활하는 역사 전환점”이라고 환영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1995년 관련 조항 신설 후 30년 가량 유지된 시·도의원(광역의원) 비례대표 정수 비율(현행 10%)을 14%로 올리기로 합의한 것도 논란이 커지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추정에 따르면, 이 비율이 14%로 오르면 4년 전 선거 기준 93명이었던 광역의회 비례대표 의원 수는 120여 명으로 30명가량 더 늘어나게 된다.
지난해 기준 전국 광역의원 평균 연봉(약 6600만원)을 대입하면, 늘어나는 의원 30명의 인건비로 매년 약 20억원이 소요될 전망이다. 여기에 의원 2인당 1명씩 배치되는 정책지원관 등을 고려하면 연간 30억원 가량의 세금이 추가로 투입된다. 이 때문에 지방자치단체 재정 독립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공청회나 공론화 과정 없이 의원 수만 늘리는 것이 재정 부담만 가중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 개혁 법안에 여야가 합의한 의미가 있겠지만, 학계와 유권자 등 이해관계자와 충분한 공론화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졸속으로 이뤄진 합의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한 여야는 일부 기초의원 선거에 적용된 중·대선거구제를 광역의원 선거에도 처음으로 시범 도입하기로 했다. 시·도의원 선거는 그동안 1인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로만 운영돼 왔다. 대상 지역은 광주 동-남갑, 북갑, 북을, 광산을 등 총 4곳이다. 윤건영 의원은 광주 지역에서만 4곳을 선정한 데 대해 “전남·광주 통합을 계기로 시·도의원에 4석의 중대선거구제 정원이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시·군·구의원(기초의원) 선거에 대한 중·대선거구제 시범 실시 지역도 확대된다. 2022년 지방선거 당시 서울·경기 등 11곳에서 실시한 시범 지역에 16곳을 추가 지정해 총 27개 선거구로 늘리기로 했다.
앞서 시·도의원 비례대표 비율을 30%로 높이고, 2인 선거구제 폐지 등을 촉구하며 농성해 온 야4당(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은 합의문 발표 직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돈 정치, 지구당 부활, 기득권 야합 규탄한다”고 반발했다. 서왕진 조국혁신당 원내대표는 “거대 양당은 끝내 정치 개혁 대신 기득권 수호를 위한 밀실 야합을 선택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밖에 여야는 올해 1월 인구 대비 상하 50%를 기준으로 광역·기초의원 선거구를 획정했다. 선거구 획정은 법정 시한을 여러 차례 넘겨 완료된 것이다. 공직선거법상 기초의원 선거구 획정은 지난해 12월 3일(선거 6개월 전), 광역의원 선거구 획정은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지난 2월 19일까지가 당초 시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