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팀이 자석 내부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진동인 '스핀파(Spin wave)'를 활용해 복잡한 전자회로 없이도 신호 주파수를 제어하는 원리를 규명했다. 전력 소모와 발열을 획기적으로 줄인 차세대 저전력 반도체나 뉴로모픽 컴퓨팅, 양자통신 분야 등에서 활용이 기대된다.
KAIST는 김갑진 물리학과 교수팀이 전자 대신 스핀파를 활용해 주파수를 순간적으로 변환하는 원리를 규명했다고 19일 밝혔다. 연구결과는 지난달 12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공개됐다.
전자기기는 음전하(-)를 띤 작은 입자인 전자가 이동하며 작동한다. 전자가 이동할 때 물질 내부의 원자와 충돌해 발생하는 열과 에너지 손실이 근본적인 한계다. 과학자들은 전자의 자기적 성질인 스핀(spin)에 주목한다. 크기와 방향을 가진 물리량으로 전자처럼 직접 움직이지 않고도 정보를 저장하거나 전달할 수 있다.
연구팀은 머리카락보다 얇은 자성 물질을 여러 겹 쌓아 만든 인공 반강자성체(SAF)로 전자기파 신호의 주파수를 제어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SAF 내부의 스핀파는 '음향 모드'와 '광학 모드'라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연구팀이 아주 작은 안테나로 SAF에 전자기파 신호를 보내 스핀파를 만들고 외부 전력과 자기장 세기를 조절하며 스핀파의 전파 특성을 정밀하게 측정하자 특정 지점에서 신호의 주파수가 급격히 변했다.
구체적으로 스핀파의 기본 단위인 마그논이 하나에서 둘로 나뉘거나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 '삼중-마그논 상호작용' 과정에서 주파수가 급변하는 '모드 점프'가 일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마그논은 자성체의 스핀 배열이 집단적으로 움직이면서 생기는 파동을 나타낸 준입자다. 준입자는 엄밀하게 입자는 아니지만 여러 입자가 상호작용해 나타내는 집단적인 움직임을 입자처럼 다루는 개념이다.
연구팀은 모드 점프로 주파수를 5기가헤르츠(GHz, 주파수의 단위) 이상 급격히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라디오 주파수 다이얼을 천천히 돌리는 것이 아니라 버튼을 눌러 완전히 다른 채널로 전환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기존 전자 소자에서는 복잡한 회로를 통해 주파수를 변환해야 했다. 모드 점프는 단순 전력 조절만으로 수 GHz 범위의 주파수를 변환할 수 있어 소자 소형화 및 에너지 효율 측면에서 가능성을 제시한다.
규명된 현상은 켜짐(1)과 꺼짐(0)을 구분하는 스위치처럼 사용할 수 있어 새로운 방식의 반도체나 인간의 뇌를 모방한 뉴로모픽 컴퓨팅 기술에 활용될 수 있다.
연구 성과는 초저전력 컴퓨팅, 고속 신호 처리, 스핀을 활용한 차세대 반도체인 스핀트로닉스 소자 등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 교수는 "이론으로만 제시됐던 자석의 진동을 이용한 정보처리 원리를 실제 나노 소자에서 구현하고 제어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며 "전자 대신 스핀파를 활용하는 새로운 정보처리 패러다임의 발전에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참고 자료>
- doi.org/10.1038/s41467-026-70298-2